정부가 사회적 고립을 전담하는 체계를 만들겠다고 밝힌 2026년 5월 13일, '고립'이라는 말은 한 사람의 마음 상태에서 공공 정책의 언어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날 보건복지부는 고독사 예방 협의회를 열어, 그동안 죽음 이후를 수습하는 데 머물렀던 정책을 고립이 깊어지기 전에 손을 내미는 쪽으로 넓히는 방향을 논의했습니다.
논의된 안은 제법 구체적입니다. 보건복지부 제1차관을 사회적 고립 전담차관으로 지정하고, 기존 고독사 예방 협의회를 사회적 고립 예방 위원회로 확대·개편하는 방안이 함께 제시됐습니다. 다만 이는 아직 추진·논의 단계로, 이미 시행된 제도가 아니라 앞으로의 설계도에 가깝습니다.
제도의 그릇도 바꾸려 합니다. 정부는 현행 고독사 예방법을 사회적 고립 예방까지 포괄하는 법으로 전부개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사회적 고립 위험군과 국민 인식을 파악하는 실태조사와 범정부 5개년 기본계획 수립을 예고했습니다. 지원 대상도 고독사 위험군에서 사회적 고립 위험군 전반으로 넓히는 방향입니다.
왜 지금일까요. 숫자가 먼저 답합니다. 2024년 고독사 사망자는 3,924명으로, 2023년 3,661명보다 263명, 7.2% 늘었습니다. 인구 10만 명당 고독사 사망자는 7.2명에서 7.7명으로 올랐습니다. 최근 5년 동안 그래프는 거의 매년 위를 향했습니다.
누가 외롭게 떠났는지도 통계는 말합니다. 2024년 고독사 사망자의 81.7%가 남성이었고, 연령대로는 60대가 32.4%, 50대가 30.5%로 가장 많았습니다. 중장년 남성에게 위험이 쏠려 있습니다. 흔히 고립을 노년의 일로 떠올리지만, 숫자는 일하던 세대의 한가운데를 가리킵니다.
더 눈여겨볼 변화는 '누가 죽음을 발견하는가'입니다. 2020년과 2024년을 비교하면 가족이 발견한 비중은 34.8%에서 26.6%로, 지인은 14.5%에서 7.1%로 줄었습니다. 반대로 임대인 등이 발견한 비중은 28.4%에서 43.1%로, 보건복지서비스 종사자는 1.7%에서 7.7%로 늘었습니다. 가까운 관계망이 옅어진 자리를, 행정과 공공이 뒤늦게 메우고 있는 셈입니다.
노리나 허츠의 『고립의 시대』는 바로 이 지점에서 읽을 만합니다. 허츠는 외로움을 '혼자 있음'이라는 개인의 상태가 아니라, 일터의 분절과 사람을 밀어내는 도시 설계, 스마트폰과 플랫폼, 감시 경제, 그리고 경제적 불평등이 함께 만들어낸 사회적 조건으로 봅니다. 외로움은 성격이 아니라 구조의 산물이라는 것입니다.
이 렌즈를 끼면 5월 13일의 전환이 다르게 보입니다. '죽음 이후 발견'에서 '고립 이전 연결'로 무게를 옮기는 일은, 고립을 개인의 불운이나 의지의 문제로 두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책의 질문을 빌리면, 문제는 누가 약한가가 아니라 사회가 어떤 연결을 만들지 못했는가입니다.
고립이 한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도 분명합니다. 2025년 5~6월 전국 초등 4학년부터 고등 3학년 8,764명을 조사한 결과, 늘 외로움을 느낀다는 응답이 4.1%, 늘 고립돼 있다고 느낀다는 응답이 1.3%였습니다. 고민을 털어놓을 상대가 없다는 응답은 8.9%, 위기 상황에서 도움받을 사람이 없다는 응답은 9.0%였습니다. 관계의 안전망이 어린 세대에서도 얇아지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국제 사회의 시선도 같은 방향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25년 6월 사회적 연결에 관한 보고서를 내고, 고립과 외로움을 개인의 기분이 아니라 건강과 복지, 사회 전체에 영향을 주는 문제로 다뤘습니다. 고립은 이제 공중보건의 의제가 됐습니다.
그래서 관건은 실행의 결입니다. 2026년 고독사 예방 시행계획에는 8개 중앙부처와 17개 시·도가 참여하며, 위험군 발굴과 연결 강화, 생애주기별 서비스 연계·지원, 정책 기반 구축이라는 4대 전략이 담겼습니다. 서울시는 300평 규모의 '서울 잇다 플레이스'를, 부산시는 고립·은둔 가구의 거점인 '마음점빵'을 올해 5개소까지 시범 운영할 예정입니다. 거점과 구호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빈칸이 그 사이에 있습니다.
『고립의 시대』가 건네는 기준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정책의 성패는 좋은 문구가 아니라, 동네에서 사람을 실제로 잇는 연결자, 그리고 주거·고용·돌봄·정신건강 서비스가 서로 맞물리는 정도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고립을 개인의 몫으로 남겨두는 한, 그 청구서는 결국 다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돌아옵니다. 연결을 만드는 일이 복지의 곁가지가 아니라 한가운데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2024년 3,924명, 5년 연속 증가한 통계와 옅어진 발견 관계망은 고립이 개인의 마음이 아니라 복지 전달체계의 문제임을 보여줍니다.
5월 13일 정책 전환은 죽음 이후를 수습하던 방식에서 고립이 깊어지기 전에 개입하는 쪽으로 무게를 옮기려는 시도입니다.
허츠는 외로움을 일터·도시·플랫폼·불평등·정치적 소외가 만든 결과로 봅니다. 연결의 책임을 개인에게만 묻지 않는 시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