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7일 오전 9시, 고유가 피해지원금 1차 신청 창구가 열렸다. 행정안전부 보도자료가 안내한 첫 11일이 시작된 그 시간에 도시의 한 지점에서는 60대 한부모 가구의 어머니가 휴대전화 앱을 켜다 잠금화면 비밀번호를 또 잊었다. 같은 시간 다른 지점에서는 시각 장애를 가진 기초생활수급자가 안내문 글씨를 키워 보지만 첨부 서식이 어디인지 끝까지 찾지 못한다. 또 다른 지점에서는 야간 청소 근무를 마치고 들어온 차상위 가구의 가장이 오후 신청 마감 시간을 모르고 잠이 든다. 같은 신청 창구가 같은 시간에 열렸지만 신청자가 그 창구에 닿기까지의 거리는 같지 않다.
셀딜 멀레이너선과 엘다 샤퍼의 『Scarcity: Why Having Too Little Means So Much』는 그 거리를 설명하는 책이다. 멀레이너선은 시카고대 경제학자, 샤퍼는 프린스턴대 심리학자다. 두 사람은 인도 사탕수수 농민, 미국 저소득 가구, 시간에 쫓기는 다이어트 참가자, 비행 일정에 쫓기는 소방관까지 다양한 표본에서 같은 결론에 닿는다. 부족함은 개인의 결함이 아니라 인지 환경 그 자체를 바꾼다. 돈이 부족할 때, 시간이 부족할 때, 주의력이 부족할 때 사람은 같은 IQ로 같은 문제를 풀어내지 못한다.
책의 핵심 개념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인지 대역폭. 사람의 의사결정 능력은 컴퓨터 RAM처럼 한정된 자원이며, 부족함이 그 자원의 상당 부분을 “지금 당장의 결핍”을 처리하는 데 묶어 둔다. 다른 하나는 터널 시야. 부족함에 쫓길 때 사람은 눈앞 문제는 또렷이 보지만 한 발자국 옆의 중요한 결정은 보이지 않는다. 책이 인용한 인도 사탕수수 농민 연구에서, 수확 직후 현금이 들어온 시점의 인지검사 점수는 수확 직전 가난에 쫓길 때 점수보다 뚜렷하게 높았다. 같은 사람, 다른 환경. 점수 차이는 통상 일반 지능 차이보다 컸다.
이 결과를 신청 행정에 옮기면 풍경이 달라진다. 1차 신청은 본인 인증, 가구원 확인, 카드 또는 지역사랑상품권 선택, 사용처 안내 확인, 본인 명의 계좌 등록의 단계를 짧은 화면 안에서 끊이지 않게 통과해야 한다. 가운데 한 단계라도 막히면 처음부터 다시다. 이 절차는 인지 대역폭이 충분한 사용자에게는 10분짜리이지만, 같은 절차가 야간 근무 후 잠을 두 시간만 자고 일어난 사람, 손주 등하원을 끝낸 노인, 어린 아이를 옆에 두고 책상 앞에 잠시 앉은 한부모 가장에게는 한 차례에 끝나지 않는다. 한국 행정의 출발선이 시민의 평균선이 아니라 더 위쪽에 그어져 있을 때, 가장 적은 자원을 가진 가구가 가장 먼저 떨어진다.
책이 던지는 두 번째 통찰은 “자원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한 번의 결정이 더 크게 누적된다”이다. 부유한 가구는 시간을 사고, 주의력을 위임한다. 회계사가 세금 신고를 대신 짜고, 부동산 중개가 임대차 갱신을 챙기고, 비서가 카드 사용처 안내문을 정리한다. 가난한 가구는 같은 일을 본인이 한다. 같은 신청서를 두고 부유한 가구가 5분 안에 위임으로 끝낸다면, 가난한 가구는 두 시간 동안 자신이 직접 읽고 입력한다. 시간 비용의 불평등이 정책 도달의 불평등으로 옮긴다.
『Scarcity』의 저자들은 이 풍경에서 정책 설계의 한 가지 원칙을 끌어낸다. 가장 바쁜 사람에게 가장 복잡한 절차를 요구하면 정책은 가장 약한 가구 앞에서 무너진다. 같은 자원으로 도달률을 높이려면 절차 자체의 두께를 줄이고, 한 번 떨어진 사용자가 두 번째 기회를 빠르게 잡을 수 있게 두 번째 문을 넓혀야 한다. 신청 단계 자동 저장, 자료 미비 시 즉시 추가 제출 안내, 오프라인 대리 신청의 시·군·구별 가용 시간 표준화, 결정 통지의 사유별 공개가 그 두 번째 문의 부품이다.
이의신청 구조는 그 두 번째 문의 또 다른 이름이다. 1차에서 빠진 가구가 본인은 사실상 같은 충격을 받았다고 판단할 때, 책의 언어로 그 가구는 이미 인지 대역폭이 더 좁아진 상태에 있다. 더 좁아진 시야로 더 복잡한 추가 자료를 모아야 두 번째 결정을 받는다면, 그 문 앞에서 또 한 번 떨어진다. 행정안전부 보도자료가 이의신청 경로와 처리 기간을 한 줄로 남긴 자리는 책이 가장 또렷이 본 자리다. 두 번째 문은 정책의 마지막 페이지가 아니라 첫 페이지에 적혀야 한다.
『Scarcity』는 가난을 미화하지 않는다. 책의 마지막 장은 부족함이 만든 인지 환경이 거꾸로 가난을 더 깊게 만든다는 자기 강화 회로를 본다. 정책이 한 번 헛도는 신청 절차는 그 회로에 한 줄을 보탠다. 반대로 한 번 매끈하게 닿는 신청 절차는 그 회로의 한 줄을 지운다. 1차 11일이 만드는 기록은 그래서 “지급액이 얼마였다”가 아니라 “그 돈이 누구의 어떤 시간 안에 닿았는가”다.
같은 사람도 자원이 더 부족할 때 더 좁은 시야로 더 복잡한 절차를 만난다. 신청 행정은 그 사실 위에서 설계할 때 도달한다.
1차 11일의 진짜 성적표는 합계 지급액이 아니라 “가장 시간이 부족한 가구가 끝까지 신청했는가”다. 책은 그 평가 잣대를 빌려준다.
이의신청의 두 번째 문이 좁을수록 정책은 더 깊은 사각지대를 만든다. 두 번째 문의 두께가 1차 절차의 첫 문장에 적혀야 한다.
4월 27일 오전 9시는 지원 정책의 출발 신호일 뿐이다. 5월 8일 오후 6시 마감 시계가 멈춘 뒤 남는 기록이 그 정책의 본문을 쓴다. 『Scarcity』는 그 본문에 한 문장을 빌려준다. 가장 적은 자원을 가진 시민에게 가장 짧은 시간 안에 가장 매끈한 절차가 닿을 때, 같은 금액은 다른 무게로 가구의 한 달을 받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