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한 소녀가 공장 안으로 다시 뛰어드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로제타는 해고 통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에게 일자리는 자아실현의 무대가 아니라 당장 내일을 버티게 하는 생존 장치다. 카메라는 흔들리며 그의 등 뒤를 바짝 쫓는다. 장피에르·뤽 다르덴 형제의 Rosetta는 노동시장의 문턱에 한 사람의 몸이 부딪히는 감각을 거칠고 빠르게 보여준다.
영화는 실업을 통계로 설명하지 않는다. 일자리를 얻지 못한 사람이 점점 더 좁은 선택지 안으로 밀려 들어가는 과정을 따라갈 뿐이다. 로제타는 친구를 밀어내고, 거짓말을 하고, 그렇게 해서라도 일자리를 손에 쥐려 한다. 1999년 칸 영화제는 이 작은 영화에 황금종려상을 안겼다. 화려한 사건이 없는데도, 한 사람의 생존 투쟁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다.
2026년 5월 한국의 고용통계는 벨기에의 소녀와 겉모습이 다르다. 하지만 구조는 닮았다. 일자리가 줄거나 질이 흔들릴 때 가장 먼저 밀려나는 사람들은 이미 약한 위치에 있는 청년과 임시직이다. '7만4000명 증가'라는 숫자 뒤에는 증가의 힘이 약해졌다는 신호가 숨어 있다.
5월 13일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4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15세 이상 취업자는 2896만1000명으로 1년 전보다 7만4000명 늘었다. 증가폭은 2024년 12월 이후 16개월 만에 가장 작았다. 전체 고용률은 63.0%로 1년 전보다 0.2%포인트 낮아졌고, 청년층 고용률은 43.7%로 1.6%포인트 떨어지며 24개월째 하락했다.

Rosetta (1999), 장피에르·뤽 다르덴 감독. 일자리를 얻기 위해 거칠게 버티는 로제타. 1999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 Les Films du Fleuve
숫자를 한 겹 더 들추면 체감은 더 차갑다. 제조업과 건설업이 부진했고, 전문·과학·기술서비스업 취업자는 12만5000명 줄었다. 20대 취업자는 약 19만5000명 감소했다. '고용은 늘었다'와 '청년 체감은 나빠졌다'가 같은 달에 공존한다. 총량은 플러스인데, 노동시장에 처음 들어서려는 사람의 문은 더 좁아졌다.
Rosetta의 렌즈로 보면 이 통계가 다르게 읽힌다. 한국의 4월 수치가 남기는 질문은 노동시장의 총량이 아니라, 누가 안정적인 입구를 얻고 누가 계속 임시적인 문 앞에 서 있는가다. 고용률 한 줄로는 그 격차가 보이지 않는다.

영국의 한 고용센터, 2006년. 노동시장 진입의 문턱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한국 고용센터 사진은 아니다. ⓒ David Wright / Wikimedia Commons (CC BY-SA 2.0)
로제타가 끝까지 놓지 않는 것은 '평범한 삶'이다. 남들처럼 일하고, 남들처럼 살고 싶다는 바람. 그러나 그 평범함은 그에게 가장 어려운 목표다. 한국의 청년 고용 통계가 24개월째 하락한다는 사실도 같은 무게를 가진다. 통계표에는 적히지 않는 것이 있다. 구직자의 피로, 거듭된 탈락의 모멸감, 다음 달 생활비의 압박이다.
5월 둘째 주에 Rosetta를 다시 꺼내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자리는 숫자로 늘어도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열리지 않는 문일 수 있다. 고용 정책이 '고용률'을 목표로 삼을 때, 영화는 '진입권'을 함께 보라고 말한다. 몇 개가 늘었는가만큼이나, 그 문이 누구에게 열렸는가가 중요하다.
취업자는 7만4000명 늘었지만 증가폭은 16개월 만에 최소이고, 청년층 고용률은 24개월째 하락 중이다.
20대 취업자 약 19만5000명 감소처럼, 평균 지표 한 줄로는 노동시장 진입의 불평등이 드러나지 않는다.
로제타가 보여주듯, 구직의 피로와 모멸감은 통계에 잡히지 않지만 한 사람의 삶을 좌우한다.

![[영화로 세상을 보다 5월 둘째 주] 7만4000명 뒤에 서 있는 사람들](https://image.tmdb.org/t/p/w1280/bNJjqDQ65KZ7SPye5hRi2cLvcRq.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