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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섭 창구는 늘 그 이름들이 떠난 뒤에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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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요약
교섭 창구는 늦게 열렸습니다. 원청과 마주 앉을 권리가 하청 노동자에게 도착하기까지 걸린 시간을 은유의 르포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이 기록한 실습생들의 자리에서 되짚습니다.

고용노동부가 6월 22일 개정 노동조합법 시행 100일을 결산하는 자료를 냈습니다. 3월 10일 이른바 노란봉투법이 시행된 뒤, 하청 노동조합이 원청에 교섭을 요구한 사업장은 439곳으로 집계됐습니다. 요구한 하청 노조는 1,161개, 얽힌 노동자는 약 16만 4,000명입니다. 노동위원회가 다툼을 판단한 141개소 가운데 원청의 사용자성이 인정된 곳은 103개소였습니다. 실제로 본교섭 테이블이 차려진 곳은 아직 열 곳입니다. 발표 자료의 제목은 담담했습니다. 우려하던 '교섭 쓰나미'는 없었다는 말이었습니다.

숫자를 읽다가 저는 자꾸 다른 방향으로 눈이 갔습니다. 쓰나미가 없었다는 안도의 반대편에는 마주 앉을 자리를 요구하기까지 걸린 긴 시간이 있습니다. 원청과 하청이 한 테이블에 앉을 권리는 방금 생겨난 게 아닙니다. 오래 미뤄져 있던 권리입니다. 그 지연의 무게를 헤아리려면 통계의 바깥으로 나가야 합니다. 교섭 창구가 이렇게 늦게 열리는 동안, 그 문 앞까지 가지 못하고 멈춘 이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은유의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은 그 멈춘 이름들을 부르는 책입니다. 2019년 돌베개에서 나온 이 르포는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의 죽음을 유가족과 곁의 사람들을 인터뷰해 기록합니다. 1부는 김동준을, 2부는 또 다른 김동준들을 부릅니다. 저자는 자신을 '겸손한 목격자'라 낮추며 약한 존재가 또 다른 약한 존재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에 섰다고 적었습니다.

김동준은 프로그래머를 꿈꾸며 마이스터고에 갔습니다. 이후 식품 공장에서 소시지를 포장하는 현장실습생이 되었습니다. 장시간 노동과 사내 폭력을 견디다가 2014년 1월 열여덟의 나이로 스스로 생을 놓았습니다. 세상을 떠나기 전 그가 남긴 한 문장을 책은 지우지 않고 옮깁니다. "너무 두렵습니다. 내일 난 제정신으로 회사를 다닐 수 있을까요?" 실습이라는 이름 뒤에서 한 아이가 감당하던 두려움이 그 짧은 물음에 다 담겨 있습니다.

2부에서 부르는 이름은 이민호입니다. 그는 제주의 생수 공장에서 현장실습을 하다가 2017년 11월 적재 기계에 몸이 끼여 목숨을 잃었습니다. 아버지 이상영은 아들을 앞세운 뒤 이런 말을 남겼다고 책은 전합니다. "대한민국에 살면서 말 잘 들으면 죽는다는 것." 시키는 대로 성실히 일한 아이가 왜 돌아오지 못했는지는 이 한 문장에 응결돼 있습니다.

이 죽음들 위로는 같은 구조가 겹쳐 보입니다. 사회에 처음 나온 열여덟에게 적응할 시스템은 없었고 기본적인 노동 조건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하려 들지 않는 일은 조직에서 가장 약한 자리에 놓인 이들에게 돌아갔습니다. 학생이자 실습생이자 노동자였지만 어느 이름으로도 온전히 보호받지 못했습니다. 회사와 마주 앉아 "이건 위험합니다"라고 말할 창구도 곁에 없었습니다.

교섭은 대등하게 마주 앉는 일입니다. 힘이 약한 쪽이 강한 쪽에게 말을 건네고 강한 쪽이 그 목소리를 받아들이는 절차입니다. 하청 노동자에게 가장 결정적인 조건을 쥔 쪽은 대개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하청 업체가 아니라 그 위의 원청입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원청은 "우리는 사용자가 아니다"라는 자리에 서서 그 자리를 비켜 왔습니다. 마주 앉을 상대가 자리를 비우면, 약한 쪽의 목소리는 허공에 흩어질 뿐입니다.

이번 발표에서 노동위원회가 사용자성을 인정한 103개소라는 숫자는 그래서 무겁습니다.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한다면 그 앞에 앉을 상대가 된다는 판단이 이제야 사례로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439개소의 교섭 요구와 16만 4,000명이라는 규모는 그동안 눌려 있던 목소리의 크기를 보여 줍니다. 우려하던 쓰나미가 아니라, 늦게 도착한 첫 인사에 가깝습니다.

다만 저는 이 진전을 김동준과 이민호의 자리에서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만약 그들이 위험을 알리고 조건을 따질 창구를 곁에 두었더라면 그 두려운 밤과 그 적재 기계 앞의 순간은 달라질 수 있었을까. 책이 붙드는 질문은 제도가 좋아졌다는 뉴스 앞에서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창구는 열렸으나, 그 창구를 가장 먼저 필요로 했던 이들은 이미 그 앞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통계의 각주가 아닙니다. 오히려 통계의 전제 자리에 놓입니다. 100일의 성과를 세는 자리 밑에는 그보다 훨씬 오래 미뤄진 시간이 깔려 있습니다. 그 시간의 이름을 은유는 한 사람 한 사람 불러 세웁니다. '알지 못하는' 죽음을 '알게 되는' 죽음으로 옮겨 놓는 것이 이 르포가 택한 방식입니다.

교섭 창구가 하나둘 열리는 지금 저는 그 문지방을 넘지 못한 이름들을 함께 기억하고 싶습니다. 김동준의 마지막 물음과 이민호 아버지의 문장은 아직 열리는 중인 문들이 왜 열려야 하는지를 조용히 일러 줍니다. 늦게 열린 문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먼저 떠난 이들의 이름을 문패처럼 걸어 두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 이름들을 기억하는 한 다음 교섭 테이블은 조금 덜 늦게 차려질 것입니다.

이 기사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
1

고용노동부가 6월 22일 낸 '개정 노동조합법 시행 100일' 결산은 "교섭 쓰나미는 없었다"고 요약됩니다.

2

3월 10일 시행 이후 하청 노조가 원청에 교섭을 요구한 사업장 439곳, 얽힌 노동자 약 16만 4,000명, 노동위원회가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한 103개소, 본교섭이 열린 곳은 아직 열 곳.

3

이 기사는 그 '늦게 열린 창구'를 안도가 아니라 지연의 무게로 읽고, 창구 앞에 닿지 못한 현장실습생 김동준·이민호의 죽음을 추모의 결로 겹쳐 놓습니다.

이 기사의 근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