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요약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의 1990년대 이후 작품 활동을 분석한 기사로, 나치 시대 탈영병과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독일의 '나치 대면하기'가 피해와 저항의 범위를 확장하는 '포괄성'을 띠게 됐으며, 이는 그라스의 작품 변화를 설명하는 맥락이 된다.

 

귄터 그라스의 '진화'

제2차 세계대전 종결 50년을 맞이한 1995년, 일본과 독일의 두 추축국 출신 노벨상 수상자 오에 겐자부로 大江建 , 1935-귄터 그라스 Guinter Grass, 1927~2015는 전쟁 종결의 의미를 둘러싸고 모두 여덟 편의 편지를 주고받는다. 1995년 4월 12일자로 발신된 귄터 그라스의 서간에는 “소련군이 오데르der강 전선을 돌파해 독일군과 베를린 공방전이 펼쳐졌을 무렵”, 독일군이 철수한 마을 곳곳에서 “나는 겁쟁이입니다” 라는 마분지를 목에 걸고 대로변 나무에 매달려 있던 독일군 탈영병의 사체를 소년병으로 목격했던 자신의 전쟁 체험담이 담겨 있다. 귄터 그라스는 독일에서 여전히 '겁쟁이' 취급을 받고 있던 90년대에 이들 탈영병을 나치의 범죄행위를 거부한 '영웅'이라 치켜세우며, “평화를 맛볼 수 있게 된 모든 사람들은 이들 탈영병들, 즉결재판으로 총살된 사람들, 교수형에 처해진 사람들을 존경해야 마땅하다”라고 맺으면서, 앞으로 “일본에서도 탈영병들의 명예회복 요구가 거세질 것”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독일과 일본의 전쟁 체험과 이의 계승, 기억을 둘러싼 언설에서 거의 주목받지 못했던 탈영병의 존재를 세상 밖으로, 특히 일본 사회에 던진 소중한 지적이었다. 이후 귄터 그라스는 자전 『양파 껍질을 벗기며』(2006)에서 두 가지 삽화를 더한다. 하나는 집총을 거부한 '여호와의 증인의목격담이고, 또 하나는 자신이 나치의 무장 친위대 Waffen-SS에 복무했다는'자기 폭로'였다. 이에 앞서 귄터 그라스는 자신의 마지막 소설 『게걸음으로』(2002)에서 1944년 1월 30일에 소련 잠수함에 의해 격침된 여객선 빌헬름 구스틀로프 Wilhelm Gustloff호의 비극을 다루고 있다. 이 사건으로 동프로이센에서 탈출하려던 독일인 피난민 약 1만 명이나 희생됐지만, 이 사건은 독일 사회에서 오래 동안 금기시됐었다. 동독에서는 가해자가 소련이었다는 사실 때문에, 그리고 서독에서는 이 사건이 독일의 피해자성을 드러내 독일의 가해자성을 희석시키려는 시도로 비추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장 친위대였다는 '고백 아닌 고백에 더해, 독일의 피해자성을 강조하는 이 작품 때문에, 귄터 그라스는 우익으로 전향했다는 비난에 휩싸이기도 한다. 일찍부터 사회민주당을 지지하고, 나치와 독일 내셔널리즘의 강력한 비판과 홀로코스트의 독일의가해 책임을 강조해왔던 귄터 그라스의 생애와 작품세계에 비추어볼 때, 1990년대 이후의 '진화'는 다소 이례적이다. 하지만 이 같은 '진화'가 귄터 그라스 개인의 '변심'이 아니라, 1990년대 이후 독일의 '나치 대면하기의 자장권에 자리하고 있음을 확인해둘 필요가 있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1989)와 독일 통일(1990) 이후, 독일의 '나치 대면하기'는 '포괄성inclusiveness'의 성격을 지닌다. 포괄성'은, 빌 니벤 Bill Niven.의 논점에 따르면, 피해와 저항(레지스탕스)의 범위 및 성격 확장을 뜻한다. 피해(자)의 범위는 유대인에 더해, 동성애자, 장애인, 신티 로마 같은 소위 '잊혀진 피해자forgotten victims'로 확장됐고, 그리고 전시반역죄 등으로 처형되거나 복역한 독일군Wehrmacht 탈영병의 최종적인 복권(2009)으로 이어졌다. 이 같은 포괄성'으로 영화 <작전명 발키리 Valkyrie(2008)로 유명해진 히틀러 암살 사건(1944.7.20)의 주역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Claus von Stauffenberg, 1907~1944 등이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으로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는 백장미단의 조피 숄Sophia Scholl, 1921~1943 남매 등과 같은 비사회주의적 레지스탕스뿐만 아니라, 나치에 반대한 사회주의 운동도 독일 통일 후에 레지스탕스의 범주에 포함됐다. 베를린 중심가에 자리한 1993년에 개축돼 통일독일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노이에 바헤Neue Wache나 1994년에 새롭게 개설된 독일 레지스탕스 기념관 German Resistance Memorial Center은 통일 독일의 '포괄적' 역사 해석을 대표한다. 물론 “우리(독일인)도 싸웠”고 “우리(독일인)도 피해를 입었다”는 해석, 즉 독일인의 저항과 피해를 강조하는 역사 해석은 유대인 피해(자)의 절대성을 상대화시켜 독일의 가해자성을 희석시킬 수 있다는 비판도 등장한다. 그러나 베를린 중심가에 자리한 속칭 '홀로코스트 기념비 Memorial to the Murdered Jews of Europe'와 '신티 앤 로마 희생자 기념비Memorial to the Sinti & Roma Victims of National Socialism’우여곡절을 거쳐, 2005년과 2012년에 각각 건립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나치와 대면하기와 통일 독일의 역사 해석이 가해·피해, 협력 collaboration 저항의 교착점에 자리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포괄성'은 독일에게 '정상성 Normaley' 으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정상성은 홀로코스트의 역사에 의해 제약받았던 독일이 국가로서 '해방되는 것을 뜻한다. 이런 의미에서 '포괄성'과 '정상성'은 새로운 내셔널리즘의 기반이고 그런 의미에서 '자부의 전략'이라 볼 수 있다. '자부의 전략'의 핵심은 나치에 가담했던 가학의 과거를 '자학사관'으로 재단하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로서의 사실을 받아들이면서도, 동시에 ‘우리도 저항했고 우리도 피해를 입었다는 역사 해석을 적극적으로 내세우는데 있다. 울리히 쉬미트Ulrich Schmid는 피해자로서의 역사적 경험이 국민국가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피해자성이 '정체성 정치'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지만, 역시 여기에 “우리도 싸웠다”는 신화가 더해지지 않으면 '자부의 전략은 성립될 수 없다. 따라서 역사적 정당화가 '네이션 빌딩'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말한 빌 니벤의 지적을 상기해보면, 역사 해석과 발굴을 통한 이런 피해 저항의 외연 확장은 정체성 정치라는 차원에서 통일 독일이 나치의 망령'에서 벗어나 '정상국가'로 발돋음하기 위한 기반을 이룬다.

제2차 세계대전 종결 후, 유럽은 정체성 위기에 빠져 관련(피해, 가해, 협력, 도피, 저항) 때문이다. 전후에 나치=악惡이라는 내러티브가 자리를 잡으면서, 이 악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이를 어떻게 해석할지가 전후 정체성 정치의 핵심이 됐다. 프랑스는 피해와 저항을 사실 이상으로 부풀려 연루 협력의 무게를 가렸고, 덴마크,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은 역시 피해 · 저항을 앞세워 연루를 면해갔다.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은 자신들의 파르티잔 투쟁에 더해, 해방군 소련의 도움을 강조함으로써 나치와의 연루를 벗어나려 했다. '중립'을 택해 전화戰禍에서 벗어나 있었던 스웨덴은 전쟁 말기에 덴마크 수용소에 감금돼 있던 유대인을 스웨덴으로 무사히 탈출시킨 '하얀 버스White Buses’나 ‘위조여권을 만들어 헝가리 유대인을 무사 탈출시킨 스웨덴 외교관 라울 발렌베리 Raoul Wallenberg, 1912~1945의 사례를 앞세워, 나치에 협력했던 역사의 치부를 덮었다. 스웨덴 언론인 토르그뉘 세겔슈테트'Toryny Segerstedt, 1876~1945의 전기를 흑백으로 담은 영화 〈마지막 문장The Last Sentence〉(2012)에는 중립적 '소국 리얼리즘' 외교의 성공 이야기에 가려져 있던 스웨덴의 '은밀한 친親 나치의 실태가 날것으로 드러난다. 미즈노 히로코가 이른바 '피해자 신화를 통해 정체성을 세우려 했던 전후 오스트리아의 역사인식을 희생자 내셔널리즘'이라는 개념으로 총괄한 것처럼, 오스트리아의 피해자 신화는 적어도 유엔 사무총장을 거쳐 대통령 자리에 오른 쿠르트 발트하임 Kurt Waldheim, 1918~2007이 나치의 정보장교였다는 사실이 있었다. 나치와의 폭로돼 국제사회로부터 맹비난에 휩싸일 때까지 오스트리아의 정체성 정치에서 핵심을 이루었다. 이렇게 보면, 유럽 각국의 전후 정체성 정치의 핵심은 나치와 얽혀있던 과거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였고 이는 대체로 피해와 저항이라는 두 가지 내러티브를 통해 형태를 갖추어갔다고 볼 수 있다.

'전후에 만들어진 일본의 전쟁 '신화'

그렇다면 일본은 어떠했을까? 일본에 독일 같은 저항 기념관이 있는가? 혹은 피해자의 포괄성을 명기한 기념관은 존재하는가? 답은 모두가 알고 있다. 없다. 일본에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도 '발키리'도 없다. 역사적 사실로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그런 역사적 사실의 존재를 전후에 기억하지 않음으로써, 저항 · 피해의 기억이 전후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이 기사를 주목해야하는 이유
1
이 글이 환기하는 쟁점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의 1990년대 이후 작품 활동을 분석한 기사로, 나치 시대 탈영병과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2
예술인에 미치는 파급

이 기사의 주제는 예술인의 현실 조건과 선택지를 바꿀 수 있다. 독일·대전·일본 등 지역별 영향 차이도 살펴볼 대목이다.

3
논의의 후속 전개

이 글이 제기한 문제의식이 후속 논의로 어떻게 이어질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