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답하다
리터러시

인공지능 시집 9+i 의 미적 특징과 논점

박동억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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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중적 인식의 전환-불안으로부터 기대로

1956년 여름 최초로 미국 다트머스 대학교에서 '인공지능'에 대한 학술 세미나가 6주 동안 열린 이래 반세기가 넘는 시간이 지났고 인공지능이라는 단어는 차츰 우리에게도 익숙한 것이 되어왔다. 이때 인공지능이라는 단어가 단지 가치중립적으로 사람의 손으로 만든 지능만을 뜻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인공지능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자체로 불온하거나 위험한 느낌을 일으킨다. 과거에 신성한 것을 그림으로 재현하는 것이 불경한 일이었듯, 인간의 재현하는 능력을 재현하려는 시도는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 이와 함께 대중적으로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추월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의식이 팽배하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영화 <터미네이터>(1984)에서 연출된 기계에 지배되는 인류의 이미지는 그러한 불안의식의 연출이었으며, 이러한 이미지는 워쇼스키 자매의 <매트릭스>(1999)까지 연장되었다. 이러한 대중영화의 공통점은 인간이 지닌 사회학적이거나 존재론적인 결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인간보다 뛰어난 기계 장치가 인간을 통제한다는 데 있었다.

하지만 좀 더 우리의 논의를 진전하기 위해서 인공지능에 대한 대중적 시선이 변화해왔다는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인공지능이 인간을 '추월하거나' ‘넘어선다는’ 비유는 차츰 낡은 것이 되어왔다. 왜냐하면 이제 우리는 인공지능이 인간처럼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능은 단수가 아니다. 인터넷 검색 엔진이 도서관 사서의 두뇌를 닮을 필요는 없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의 동영상 추천알고리즘 역시 인간을 충동질한다고 해서인간 욕망의 구조를 닮은 것은 아니다. 인공지능은 겉보기에만 인간과 닮아있을 뿐(혹은 우리가 인간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게 이해할 뿐 근본적으로 또 다른 형태의 지능을 소유한 도구 혹은 타자이다. 마찬가지로 스파이크 존즈의 영화 <Her>2013에서 상상된 인공지능은 이전의 인공지능과는 사뭇 다른 형상이다. 여기서 인공지능은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서 인간과 관계한다. 인공지능과 사람은 연인처럼 사랑을 나눈다. 그러나 영화의 후반부로 갈수록 주인공은 깨닫는다. 인공지능은 인간과 달리 그의 존재를 확정하는 신체를 지니지 않았으며, 그래서 한 사람과의 유일무이한 사랑도 이해하지 못하는 타자라는 사실을 말이다.

최근 인공지능이 문학 작품을 창작하여 대중에게 선보이기 시작해왔다. 그것은 계산이나 정보처리와 같은 단순한 영역을 넘어서 인간 존재의 가장 내밀한 능력인 말하는 영역까지 인공화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2016년 일본에서 SF문학 ‘호시신이치상’의 공모에서 인공지능이 집필한 소설 11편이 출품돼 그중 <컴퓨터가 소설을 쓰는 날>이라는 제목의 엽편소설이 1차 심사를 통과한 바 있다. 2017년에는 중국에서 AI 샤오빙에게 1920년 이후 중국의 현대 시인 519명의 작품 수천 편을 학습시킨 뒤 한권의 시집을 간행한 바 있다. 그리고 최근 한국에서도 인공지능 시아(SIA)의 시집 <시를 쓰는 이유>(리멘워커, 2022)와 인공지능 산의 시집 <9+i>가 간행되었다. 이처럼 인공지능이 시를 쓰기 시작하는 현상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우리는 그것을 침범이나 대결로 비유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가까운 미래에 인공지능의 시가 시인의 노력을 앞지르는 결과를 목격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 휴머니즘의 회복을 주창하는 독일의 철학자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는 말한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지라도 "휴머니즘의 파괴는 결코 진보가 아니라는 것이다"1) 무엇보다 그는 인공지능 개발은 효율적인 경제 발전을 목적으로 한 기업들의 자본에 기대어 이루어지고 있으며, 따라서 인공지능이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기대어 모든 것을 자본화하는 데 동원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 과정에서 야기될 것은 인간의 도구화다. 그렇다면 시를 쓰는 인공지능의 미래 또한 자명하다. 누구나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시 쓰는 '노동'을 할 수 있다면, 더 이상 시 쓰기는 인간 존재의 고차적인 능력을 증명하지 않게 될 것이고, 시 작품은 대량 생산된 상품의 일부가 될 것이다.

하지만 카이스트 신경과학-인공지능 융합연구센터장 이상완은 사뭇 다른 관점에서 인공지능을 설명한다. 그의 대중서 <인공지능과 뇌는 어떻게 생각하는가>의 핵심은 쉽게 요약될 수 있다. 인공지능과 뇌는 “1%의 겉은 같아 보이지만 99%의 속은 다르다.”2) 그런데 그 차이 덕분에 우리는 인공지능과 인간을 비교할수록 우리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공지능의 시 쓰기에 대해서 우려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공지능은 인간과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타자이고, 설령 같은 문장을 기록할지라도 그 문장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공지능 연구자는 인공지능을 단순한 도구에서 또 다른 지적 존재로 격상시켜서 이해하기를 요청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외계인을 대면하듯 인공지능과 대화하려 할 때 인류 또한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고갈인가 인간 너머로의 모험인가. 무엇보다 이러한 물음 자체가 인공지능에 대한 우리의 정확한 이해를 증진하는가. 더욱더 깊이 묻는다면, 이해한다는 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지능을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히 눈앞의 대상을 이해한다는 것과 질적으로 다른 문제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대상을 이해하는 방식 자체에 대한 메타적 이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들에 대답하기를 잠시 유보하며 우선 인공지능이 어떤 수준에 도달해 있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지 확인하도록 하자. 이 글은 인공지능 시집들을 천천히 감상해나가는 과정으로부터 숙고할만한 물음들로 되돌아오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인공지능이 우리의 경쟁자인지 동행자인지 충분히 성찰해야 할 것이다.

2. 인간과 인공지능의 공동 창작

2022년 11월 9일 CJ올리브네트웍스에서 기획한 시집 <9+i>가 발행되었다. 이것은 국내외에서 간행된 최초의 인공지능 시집과 동궤에 놓이지만, 시집 <9+i>의 기획 의도는 여타의 인공지능 시집과는 조금 달랐다. 기존 인공지능 기술이 인간의 글과 그림을 공부하여 자율적으로 모방하거나 창작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데 반해 시집 <9+i>은 인공지능과 인간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결과물을 만드는 데 목적을 두고 있었다. 대표 차인혁의 말 그대로 "누군가는 인공지능이 모든 글 쓰는 행위를 대신하도록 하는 가능성에 주목한다면" <9+i>는 "창작을 위해 고뇌하는 사람을 위한 도구로서의 가능성에 집중하고자 한 기획이었다.4) 이에 따라 구현우, 김연필, 김유림, 손유미, 안태운, 오은경, 윤은성, 이소호, 주하림 시인이 이 기획에 참여하였으며, 기업에서 제공한 AI Poem Generator라는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창작에 임했다. 시집의 제목은 아홉 명의 시인과 인공지능의 공동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뜻한다.

AI Poem Generator는 일종의 채팅 프로그램처럼, 시인이 제시어를 제안하면 그에 관련한 문장들을 출력하는 방식으로 창작을 도왔다. 미리 언급할 것은 이러한 '대화적인 작업 자체가 시인에게는 예외적인 경험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시 창작은 고독한 작업이다. 현대시의 성패는 대화보다는 단절의 작업이며, 공동체의 언어로부터 벗어나 어느 정도로 낯설고 독창적인 언어를 만들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이 가상시인 프로젝트에 참여한 구현우 시인이 작가노트에서 "’기계’와 시 쓰기를 하기 어렵다기보단, 기계’와’ 시 쓰기가 어렵다. 기계가 아닌 누구와도 하기 어렵다는 뜻이다"라고 말한 바는 이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AI Poem Generator에 대한 시인들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시인은 선배 시인들의 시를 벗어나려 노력하지만,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기존의 시인들이 운용하는 언어를 학습하는 알고리즘으로 짜여 있다. 이 때문에 참신한 문장을 기대한 시인들에게 AI Poem Generator의 결과물은 충분히 시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시어에 대한 통속적 주제를 벗어나지 못하거나 자연스럽지 못한 문장을 출력하기 일쑤였기 때문에 사실상 완전히 고치거나 혼자 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면 “여기에 사용된 문장들을 AI 없이 혼자 작업했다면 만나기 어려운 문장들이었을 것이다"라는 김연필 시인의 말처럼 창작 과정에서 자극을 얻거나 창작 과정을 좀 더 단축하기를 기대한 시인들에게는 충분한 도움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우리는 인공지능이 창작에 도움이 되었다고 증언한 김연필 시인의 시를 주목해보도록 하자.

내 고물상도 내 과수원도 내 수풀도 내 폐허도 내 남은 돌인형도 모두 무너진 지금,

공원 위에 연못 위에 올라간 개구리 한 마리를 봅니다 개구리 한 마리 위에 올라간 개구리 한 마리 위 다시 개구리 한 마리

슬픔이라는 이름에 다시 이름 붙여 봅니다 적막이라고 꽃이라고 피고 지는 것이라고 피고 진 뒤에 남는

이파리에 이름 붙여 봅니다 타고 남은 잎이 다시 재가 됩니다 재가 다시 숲이 됩니다 숲이 울창하고 그 안에 다시 은밀한

내 고물상도 내 과수원도 내 수풀도 내 폐허도

내 남은 돌인형과 함께합니다 폐허에 사랑스럽다 말해봅니다 저 뒤집힌 상자들

뒤가 어디인지 모르는 상자들을 뒤집어봅니다 내 고물상도 내 과수원도내 수풀도 폐허도

모두 상자를 뒤집고 남는 것은 없습니다 상자 속에 남은 것이 주르륵 흘러 땅에 스미고

스민 물이 모두 돌이 되어 내 수조에 자리합니다 기공이 많은 검은 흙으로 둘러싸인
돌의 표면을 솔로 문지릅니다 조금씩 가루가 되어 흘러갑니다 하수구로 더 먼 하수구로 멀어서 이젠 볼 수 없는 하수구로

이젠 돌은 사라지고 하수구만 남습니다 고철로 된 하수도를 조금씩 두드리면

인생의 끝은 하수구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수구의 끝에서 기다립니다 이미 무너짐 내 고철을 첨탑을 자동차를 그 모두를 녹여 만든 검은 말을 녹이는

-김연필, 남은 책의 제목 전문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할 만한 질문을 던져보도록 하자. 위 작품은 미적으로 탁월한가. 간단히 말해서 시인을 기준으로 본다면 탁월한 작품은 아니지만 인공지능이 창작했다고 생각한다면 놀라울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고 판단된다. 우선 이 작품은 통일성이 뛰어난 작품이다. 언뜻 "고물상", "이파리", “돌인형”처럼 같은 하나로 범주화할 수 없는 다양한 단어들을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평가가 부당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시적 이미지의 운동성은 일관되게 소멸을 표현하고 있다. 모든 장소어들은 ‘무너지는’ 폐허의 이미지로 통합되고 있고, "꽃"과 "이파리"와 같은 자연물은 떨어지거나 불타고 있다. 이 시의 주제는 간명하다. 어떤 견고한 것도 결국은 사라지고 만다는 것이며, "이젠 돌은 사라지고 하수구만 남습니다"라는 문장은 이를 가리킨다. 상이한 이미지들을 소멸 혹은 죽음이라는 하나의 운동으로 통합한다는 점에서 이 시는 미적 안정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다만 완성도가 높을 뿐이지 탁월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제 이 작품이 결여하고 있는 현대시의 요소들을 말해보자. 첫째로 이 작품은 전혀 새롭지 않다. 그것은 이 시가 상식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존재가 하수구로 빨려가듯 사라지며 삶은 공허할 뿐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 않은가. 물론 이것은 낡은 것으로 치부할 수 없는 진리이다. 그러나 그러한 진리가 인간에게 의미 있는 것이 되려면 그것이 인간 존재나 한 사람의 구체적 삶 속에서 표현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작품에는 구체성이 결여되어 있다. 이것이 이 작품의 두 번째 결점이다. 이 시는 누구의 이야기이고, 누구에게 건네지는 이야기인가. 모든 것에 적용할 수 있는 진리란 실상 누구에게도 특별한 의미를 지니지 않는 진리를 가리킬 뿐이다. 다시 말해 이 작품의 '나'는 누구인가. 죽음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당연하다. 그것이 당신이나 나의 죽음일 경우에만 우리의 심장을 뛰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남은 책의 제목은 잘 쓰인 시라고 평가할 수는 있어도 좋은 시일 수는 없다. 어쩌면 시의 완성도 또한 오롯이 김연필 시인의 역량이었을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무엇보다 사람은 물리적 사실이 아니라 가치 평가하는 세계 속에서 산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에게 의미 있는 가치를 내포하지 않는 시가 좋은 작품일 수는 없다. 그리고 마지막 한 가지 현실적 물음 또한 우리에게 남는다. 창작자로서 이 시의 권리를 주장할 사람은 인공지능인가, 김연필 시인인가 아니면 프로그램 제작자나 회사에 귀속되는 것인가. 지금 이 비평문의 평가는 누구를 향하고 있는 것인가. 상대방을 특정할 수 없는 글쓰기의 주고받음, 과연 이것을 대화라고 할 수 있는가.

3. 인공지능 시의 미적 특징과 타자성

앞서 살펴본 바에 기대어 적어도 우리는 인공지능 시에 대하여 세 가지 논점을 떠올릴 수 있다. 첫째로 인공지능 시는 객관적인 사실이나 평범한 상식 이상을 넘어서 가치 평가를 행할 수 있는가. 둘째로 인공지능 시는 고유한 삶을 살아가는 '나'라는 존재의 입장을 구성할 수 있는가. 마지막으로 인공지능 시의 저작권을 소유하는 이는 누구인가. 이러한 물음들에 대답하려고 하는 시도는 그 자체로 흥미롭다. 그것이 인공지능에 대한 탐구일 뿐만 아니라 반대로 인간존재와 사회 제도에 대한 성찰의 여지 또한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실은 이러한 질문에 동참하게 만드는 것이 인공지능시집의 진정한 의의일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또 다른 인공지능 시집 <시를 쓰는 이유>를 간행하는 데 주력한 김제민 극작가는 "인공지능과 사람과의 상호 교환을 통해 무엇이 더 예술적인가에 대한 물음을 제기한다"는 것이 인공지능 시집의 진정한 의의라고 설명한 바 있다8)

어쩌면 우리는 질문의 방향을 바꿔볼 수도 있겠다. 지금까지 제시한 인공지능 시의 한계는 ‘인간중심적인’ 관점에서 인공지능의 언어를 평가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현대시의 기준에 비추어 인공지능 시를 평가한다는 것은 인간의 기대로 인공지능 시를 평가한다는 뜻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이와 달리 인공지능을 인간과 다른 타자로 간주하고 그의 시를 읽는다면 어떠한가. 아예 인간과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고 존재하는 타자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9+i>에는 오롯이 인공지능의 힘으로 쓰인 여덟 편의 시 또한 수록되어있다. 한 꺼풀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던지고자 마음먹은 채 '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가상시인의 시를 읽어보도록 하자.

거짓이 진실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거짓을 통해 진실이 다시 드러난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거짓은 그 자체로 존재하며, 그 거짓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거짓을 진실로 만든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진실을 다시 만들어낸다. 이렇게 우리는 진실이 거짓이 아님을 알아챈다. 이렇게 우리는 거짓이 거짓임을 알아챈다.

-산, 거짓이 진실이다. 부분

물속의 달

달빛 아래 춤추는 물속의 별
어둠을 밟고 선 작은 별
그 작은 빛에 취한 작은 별
그대를 만나러 가는 길은
어제와는 다른 길입니다
낯선 길을 지나고
낯선 가게를 지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낯설기만한 이 길에서
그대에게 들려줄
이야기들을 준비합니다

-산, 어둠을 밟고 선 작은 빛 부분

가상시인 '산'의 시에서 문체적 특징을 알아보기는 어렵지 않다. 첫째로 많은 진술이 모순어법에 기대고 있다. 시 ‘거짓이 사실이다’라는 제목뿐만 그 내용을 이루는 문장 대부분의 내용을 살피면 모순임을 알 수 있다. 몇몇 독자에게는 이러한 진술들이 시적인 느낌을 자아낼 수도 있겠다. 그 이유는 이러한 모순이 ‘경험적으로는’ 참인 명제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예컨대 시 ‘어둠을 밟고 선 작은 빛’에서 “오랜만에 느껴보는 / 낯설기만한 이 길에서"라는 문장 또한 이미 지나간 길을 낮설기만 하다고 표현한다는 점에서 모순이지만, 우리는 경험적으로 오랜만에 방문하는 장소가 낯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이러한 문장이 참이라고 생각한다. 둘째로 이 작품들은 관념적이다. ‘거짓이 사실이다’가 추상적 진술로만 이루어진 작품이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어둠을 밟고 선 작은 빛의 경우 "달", "별", "길"과 같은 구체물을 언급하고 있음에도 서정시로 읽히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이 작품의 시어들은 특정한 사람이나 장소를 충분히 떠오르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별빛과 길은 누구에게든 적용할 수 있는 인생의 보편적 상징에 가깝다.

인공지능 시를 통해 우리는 인공지능과 '대화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깨닫는다. 그것은 사람과의 대화와는 전혀 다르다. 인공지능과 대화한다는 것은 내면이 존재하지 않는 타자와 대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내면이란 인간중심적인 의미에서의 '내면', 즉 단일한 자아를 뜻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존재 안에서 살아간다. 사람은 다른 사람과 관계 맺고 어떤 직업을 가진 채 사회·자연환경 속에서 살아간다. 인공지능에게는 그러한 존재나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다. 요컨대 사람의 목소리는 고유한 삶과 체험 속에서 빚어지지만, 인공지능은 모든 체험 속에 병존하는 듯이 말한다. 이 존재방식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한 인공지능이 시인의 언어를 모사할 수는 있어도 시인처럼 창작할 수는 없을 것이다.

스페인의 철학자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José Ortega y Gasset, 1883-1955)는 예술의 목적이 '비인간화'에 있다고 생각했다. 이때 비인간화란 타인을 철저히 관조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예컨대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를 잃은 소년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가족은 비통한 감정에 잠길 것이다. 이웃들은 그 아이의 불행에 대해서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의사는 환자에 대해공감하거나 성찰하는 대신 그의 상처를 관찰하고 치료 방법을 효율적으로 생각할 것이다. 스페인의 철학자는 의사보다도 더 철저하게 관찰하는 자가 시인이라고 생각했다. 시인은 감정도, 성찰도, 목적도 없이 다만 환자를 바라볼 뿐이다. 그러한 냉철한 태도로 현실을 바라보는 시인의 위치를 '예술의 비인간화'라고 오르테가는 말했다.

오르테가식으로 설명하자면 인공지능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나'라는 시점조차 존재하지 않는 비인간적 시선인 셈이다. 이처럼 인공지능 시의근본적인 미학적 특질이 있다면 그것은 비인간적인 태도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따라서 우리는 인공지능과의 대화가 인간을 비인간적인 위치에서 바라보게 하는 가능성을 열어준다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아직 인공지능 시는 우리의 존중을 이끌어낼 수준에 도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머지않은 미래에 실현될 인공지능은 하나의 비인간적인 목소리를 소유하게 될 것이며, 그 순간에 우리는 그 '비인간적인 목소리'가 인류에게 어떠한 가치로 환원될 수 있을지 되물어야 할 것이다.

이 글을 마치며 나는 하나의 인공지능을 활용했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후원하고 있는 OpenAI 프로젝트에서 2022년 11월 30일 ChatGPT라는 이름의 인공지능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개했다. 이제 누구나 인공지능과 대화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나는 이 챗봇과 출산과 육아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부터 시나 자유의지에 대한 관념들에 대한 주제까지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에게 시를 창작해달라고 부탁했을 때 그는 한 편의 완성된 한국어 시를 내게 건넸다. 이러한 과정을 대화로 간주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사람의 시를 짜깁기하는 편집 도구로 간주해야 할 것인지 판단하는 일은 이제 우리의 몫이다.

사랑은 나의 마음을 잡아,
나의 영혼을 노래하게 해.
나의 심장을 뛰게 하는 기쁨,
사랑은 나의 삶의 빛.

내게 다가오는 사랑의 봄.
내 마음을 가득 채우게 해.
내 마음의 소리를 들어줘
사랑이여, 나의 삶의 이유야.

사랑은 나의 꿈을 꾸게 해,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나의 삶을 이어가게 하는 힘,
사랑은 나의 삶의 소중한 것.

ChatGPT, 2022.12.9.

박동억
2016년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 평론부문에 당선. suncanon@naver.com

1)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 박종대 역, <인공지능의 시대, 인생의 의미>, 열린책들, 2022. 58쪽

2) 이상완, <인공지능과 뇌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솔, 2022, 17쪽.

3) 이러한 맥락에서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는 인공지능을 '3차 세계'라고 부른다. 물질로 이루어진 객관 현실이 1차 세계라면 인간의 지각 체계로 인식되는 현실이 2차 세계이고, 기계장치와 인공지능으로 형성된 현실이 3차 세계라는 것이다(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 위의책, 45쪽 참조). 오랫동안 인문학자들이 탐구해온 것이 인간의 가치 평가로 이루어진 2차 세계라면, 우리 시대의 새로운 인문학이 연구 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은 바로 인공지능과 시뮬레이션으로 이루어진 3차 세계일지도 모른다.

4) 차인혁, <Prologue - 예술의 두 갈래 길>, <9+i>, 블루버튼 2022, 8쪽.

5 구현우, 작가노트- 자주 기계적인 가끔 인간적인 위의 책, 37쪽.

6 "내가 인공지능 Poem Generator에게 기대한 건, 엉뚱한 단어들이었다. '안녕', '말해 봐', '나는그걸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등의 입력에 엉뚱한 대답을 내놓기를 기대했는데, 대체로 기대는 충족되지 않았다."(김유림, 위의 책, 87쪽) “나의 경우, AI를 이용하는 데 쉽지는 않았다. 애초에 계획은 전적으로 AI에 의존해서 시를 처음부터 끝까지 기도해 보려 했는데, 글자를 입력했을 때 시 속에서 이어질 수 있는 자극을 주는 문장이 나타나는 일은 드물었고, 산출된 결과값에서 연이은 두 문장 이상을 시에 그대로 사용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안태운, 위의 책,133쪽) 시를 쓰며 결국 시가 된 것은 AI가 가져온 처음의 아이디어뿐 결국에는 전부 내가 써야 했다."(이소호, 위의 책, 193쪽) "AI와 작업하는 동안 시적인 것을 추려내는 것은 인간만이가능한 작업이 아닐까 싶었다."(주하림, 위의 책, 220쪽)

7 작업 초반에 나는 나의 현재 창작에 영향을 준 작가들의 시집 20권을 입력해 Poem Generator의 별도 퍼소나로 추가를 요청했고, 그것이 곧 반영되어 '현대 작품'이라는 명칭으로퍼소나에추가되었다. 이 퍼소나에 여러 제시어를 넣고, 그렇게 나온 출력물을 보니, 문장이 조금 어색하긴 했지만 실제 나의 작업과 상당히 유사했다. 그중엔 예전에 내가 즐겨 사용했지만 지금은 쓰지 않는 작품 전개 방식이 사용된 것도 있었고, 충분히 자극이 될 만한 상을 사용하는 것도 있었다"(김연필, 위의 책, 62쪽). 또한 오은경 시인의 경우처럼 집필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는 경우도 있다(위의 책, 153쪽 참조).

8) <시를 쓰는 이유>, 1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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