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이후 '기저질환자'라는 단어가 뉴스에 등장하지 않는 날이 없었다. 코로나19 사망자 통계에는 늘 '기저질환 보유 여부'가 따라붙었다. 어느 순간부터 기저질환은 면책의 근거처럼, 혹은 통계의 각주처럼 사용됐다. 그러나 그 단어 뒤에는 매일 약을 챙기고, 정기 검진을 받고, 몸의 작은 변화에도 불안해하는 실제 사람들의 삶이 있다.
기저질환이란 고혈압, 당뇨, 심장질환, 만성 폐질환, 암 등 이미 가지고 있는 만성질환을 통칭하는 말이다. 질병관리청 통계에 따르면 한국 성인 인구의 약 35%가 하나 이상의 기저질환을 보유하고 있다. 60세 이상으로 범위를 좁히면 그 비율은 68%에 달한다. 기저질환자는 결코 소수가 아니다.
팬데믹 기간 동안 기저질환자들이 겪은 불안은 일반인의 상상 이상이었다. 감염 시 중증 위험이 높다는 정보는 이들에게 공포로 다가왔다. 외출을 극도로 자제하고, 사회적 관계를 단절하며 스스로를 격리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당뇨를 앓고 있는 김영희(가명, 54) 씨는 "2년 넘게 손주도 만나지 못했다. 내가 위험하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내 존재 자체가 부담이 되는 기분이었다"고 회상했다.
팬데믹이 지나간 지금도 기저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건강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본인 잘못'이라는 시선이 여전하다. 그러나 많은 기저질환은 유전적 요인, 환경적 요인, 노화에 의해 발생한다. 자기 관리의 문제로만 환원하기에는 원인이 훨씬 복합적이다.
기저질환자의 의료비 부담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고혈압 환자의 연평균 본인부담 의료비는 약 48만 원, 당뇨 환자는 약 72만 원이다. 여기에 건강기능식품, 운동, 식이요법 등 자기 관리 비용까지 더하면 연간 수백만 원이 든다. 저소득층 기저질환자에게는 이 비용이 치료를 포기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최근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의 발전은 기저질환자 관리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있다. 연속혈당측정기(CGM), 스마트워치 심전도 기능, AI 기반 건강 코칭 앱 등이 일상적인 건강 관리를 돕고 있다. 그러나 이 기술들의 혜택이 경제적 여유가 있는 계층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은 또 다른 과제다.
변(辨)은 분별한다는 뜻이다. 기저질환자라는 한 단어 안에 묶인 수천만 명의 다양한 사정을 분별하는 일. 통계의 각주가 아닌, 구체적인 얼굴과 이름을 가진 사람들로 바라보는 일. 그것이 기저질환자와 함께 살아가는 사회가 갖춰야 할 첫 번째 자세일 것이다.
기저질환자를 통계적 범주가 아닌 구체적 삶의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은 건강한 사회를 위한 첫걸음이다.
기저질환 관리에 필요한 비용과 기술의 불균형은 건강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어 정책적 관심이 필요하다.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기저질환자 비율은 더 높아질 것이며, 이에 대한 사회적 준비가 시급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