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와 예술이란
메타버스와 예술이 만나는 방식
박석태
1. 메타버스, 실체에 대해 알아가기
메타버스에 관한 원고청탁을 받고 한참을 고민했다. 일단 수락을 하기는 했으나 무엇을, 어떤 관점에서 써야 하나, 머릿속에 잡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지난 몇 개월 언론을 통해 간간이 들리던 그 말이 구체적인 고민 없이 갑자기 내 인생에 쑥 들어온 격이랄까. 그렇게 적지 않은 시간만 하릴없이 흘러갔다.
그러던 중 마침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의 교육과정 중 메타버스 활용법에 대한 강의가 개설되어 있음을 전해 들었다. 그 사실을 알고 뛸 듯이 기뻐한 것도 잠시. 결론부터 말하자면 세 시간 동안 쉼 없이 이어진 강의 내용은 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나는 메타버스가 마치 인터넷이 처음 등장했을 때처럼 우리 삶에 어마어마한 파장을 미치는 거대한 세계일 줄 알았다. 그러나 강의를 통해 접한 메타버스는 뭐랄까, 그저 늘보아 왔던 게임 속에 구현된 가상의 공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처럼 메타버스라는 지극히 추상적인 세계는 그동안 우리 앞에 나타났고 경험했던 온갖 종류의 가상현실을 한데 버무린 수준에 지나지 않은 듯했다.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잠시 그 이유에 대해 되짚어 보기로 한다.
강의는 메타버스에 대한 개념 설명을 시작으로 제페토, 이프랜드, 게더타운 등 메타버스 플랫폼 종류에 대한 설명을 거쳐 그것을 어떻게 각자의 사업과 연결할 수 있으며, 각 플랫폼의 장·단점은 무엇인가 하는 내용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시점에서 가장 대중화된 플랫폼인 제페토 실습으로 마무리되었다.
성과는 없지 않았다. 우선 메타버스라는 것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는 느낌이었으니까. 최근에 개발되어 시장에 풀린 몇몇 메타버스 플랫폼들이 앞으로 어떤 지향점을 보이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릴 듯했다. 마치 1990년대 중반 인터넷이 처음 등장했을 때 각광받았던 웹브라우저인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 오페라, 사파리, 인터넷 익스플로러에서부터 최근의 구글 크롬, 파이어폭스에 이르기까지 헤아리기 어려운 플랫폼이 군웅할거 하는 상황이 떠올랐다(언급한 웹브라우저 외에도 기반 환경에 따라 엄청나게 다양하다). 그리고 극히 최근의 우리 삶을 강타한 코로나19로 인해 앞당겨진 강요된 비대면 상황 속에서 출현한 수많은 화상회의 플랫폼이 생각난 건 당연했다. 그것들 중 줌(Zoom)으로 대략 정리되는 상황이 오버랩되는 기시감도 들었다. 이쯤 되니 메타버스로 촉발된 가상현실을 담아내는 플랫폼, 그리고 온라인 미디어 플랫폼은 이름과 형식만 달리해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지 않을까 하고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그러면서도 그 속에서 어떤 차별점을 발견할 수 있을까 하는 궁금함이 슬며시 고개 들었다.
2. 나의 가상현실 체험사
1970년대 초·중반에 태어난 허다한 내 또래는 아마도 인류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에, 그리고 가장 압축적으로 가상현실이라는 초유의 환경에 노출된 세대로 기억될 것이다. 뒤집어 말하자면 우리 세대는 아날로그 환경의 맨 마지막에 위치한 세대였다는 뜻과 같다.
지직거리던 아날로그 텔레비전으로 기껏해야 똘이 장군>을 즐기던 우리, 그런 우리가 십 대였던 1980년대는 '전자오락'의 시대였다. 동네마다 한두 개는 있었던 '전자오락실'에서 갤러그, 너구리, 올림픽 같은 2D 게임에 빠져 부모님께 되지도 않는 거짓말 한 번쯤은 했으리라. 텔레비전과 달리 큼직한 세로 브라운관 속에서 움직이는 유니트들은 내 조작에 의해 움직이고 반응하는 인터랙티브 세계에 속해 있었다. 아마도 처음으로 경험하는 가상현실이었음이 분명하다.
당시 컴퓨터는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공유하는 것이었다. 아니, 소유의 개념 자체가 희미했던 시절이었다. 다만, 우리는 좁고 냄새나는 오락실에서 즐기던 전자오락으로 인해 컴퓨터, 혹은 그와 유사한 전자기기에 대한 친숙함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 같다. 가상의 내가 주인공이 되어 적을 무찌르고, 미션을 완료하고, 모니터에 내 기록을 아로새기는 경험은 좀체 잊기 힘든 짜릿함을 제공했다.
대학 생활을 시작한 1990년대는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경제 성장과 더불어 컴퓨터 사양의 급속한 발전을 보이던 때로 기억한다. 1990년대 초반 즐기던 컴퓨터 게임은 이제 더 이상 '전자오락'이 아니었다. 초기 전자오락을 대표하는 슈팅 게임, 액션 게임, 스포츠 게임에서부터 새롭게 등장한 롤플레잉 게임, 어드벤처 게임, 시뮬레이션 게임에 이르기까지 지금도 폭넓게 즐기는 게임의 모든 장르가 이때 한꺼번에 등장했다. 그 중 '둠과 같은 1인칭 게임에서 구현되는 원근법적 세계관은 놀라웠다. 총을 들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느껴지던 가상의 적들이 뱉어내는 기괴한 소리와 차가운 공간에서 들려오는 총성과 효과음은 오싹했다. 개인용 컴퓨터의 보급이 가속화되었고, 여기저기에 PC방이 하나둘 생겨났다.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학교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어 있었다. 과제 작성에 멋진 손글씨는 더 이상 필요치 않았다. 나는 '워드프로세서'로 리포트를 내라는 교수의 말에 적지 않게 당황했고, 공강 시간에 즐기던 당구 한 게임은 스타크래프트 한 게임으로 대체된 현실에 또 한 번 주눅들 수밖에 없었다. 그즈음 학교 앞의 인문학 서점은 줄줄이 폐업했다
인터넷을 처음 접한 때는 1996년쯤으로 기억한다. 원하는 정보를 클릭하면 바로 연결해 주는 하이퍼링크를 보며 소스라쳤다. 이때 소스라쳤다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막연히 상상하던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을 때의 경이로움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것이 실제로 구체적인 형상을 지니고 움직일 때 느끼는 공포였다.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볼 때의 생경함에 더 가깝다고 해야 할까. 여하튼 '정보의 바다'라는 말답게 인터넷상의 정보는 세계 도처에 널려 있었고, 문제는 그중 내가 원하는 정보를 어디서 찾는가 하는 것이었다. 도서관은 이제 정보를 찾고 열람하는 곳이 아닌 시험공부를 위한 집중력을 제공하는 곳으로 전락했다. 가상공간이 현실의 공간을 대체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인터넷은 내게 처음 접하는 초월(meta) 적 매체였다. 나를 포함한 모두는 일단 그렇게 가상공간, 혹은 가상현실에 점차 익숙해지면서 애초의 거부감에서 탈피하여 모니터 안의 세상에 빠져들어 갔다. 소통은 너나 할 것 없이 새로 계정을 만든 이메일로 대체되었고, 공통의 관심사를 찾는 사람들은 인터넷 채팅 사이트로 모여들었다.
비대면 소통의 정점은 다름 아닌 '싸이월드'였다. 새로운 천년의 언저리, 우리는 주머니를 털어 마련한 '도토리'로 가상의 나(아바타)에게 옷을 입히고, 멋진 스타일의 가상공간을 꾸몄으며, 감성을 자극하는 배경음악을 까는 데 아낌없이 투자했다. 얼마나 '쿨한' 비대면 소통의 주인공인지를 가늠하는 기준은 1촌을 맺은 친구들의 숫자였음은 물론이다. 인터넷이라는 가상현실이 실제적으로 필요한 '정보'의 벽을 허문 첫 사례라면, 싸이월드의 콘텐츠는 그것을 활용해 어떻게 사람과 사람이 만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최초의 경험으로 기억될 것 같다. 이어진 '아이러브스불은 어딘가에 존재하는 나의 친구들을 눈앞에 소환하는, 정말이지 특별한 경험을 제공했다. 가상현실이 실제로 존재하는 현실로 전환되는 초월적 현상을 목도하며 어쩌면 우리는 그때부터 가상의 나와 실재의 나를 동일시하게 되면서 가상현실의 무한한 가능성을 체감하지 않았을까?
나, 그리고 우리 세대의 가상현실 체험의 역사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내 손 안의 컴퓨터'라 불리던 스마트폰은 한 마디로 지금까지의 모든 가상현실 역사의 판도를 뒤바꾼 게임 체인저였다. 이르게는 이미 1990년대부터 개발되기 시작했다고 알려진 스마트폰이 내 손에 들어온 때는 2000년대 후반이었던 것 같다. 역시나 컴퓨터와 인터넷을 처음 접하던 때처럼 이 새로운 문물로 무엇을 할지 무척 혼란스러웠다. 지나치게 복잡하다고 투덜대던 사람이 있었던가 하면, 적극적으로 스마트폰을 활용하려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이 새로운 물건이 우리 삶을 근원적으로 바꿔놓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다. 전자오락이 그랬고, 개인용 컴퓨터가 그랬고, 인터넷이 그랬고, 싸이월드가 그랬던 것처럼, 어쩌면 '새로움의 충격'을 기치로 건 모더니즘이 결국 그 새로움에 둔감해져 형식만 남은 지난날의 역사가 주는 교훈과 같이, 나는 거듭하여 새로 나는 기기와 플랫폼에 또다시 익숙해져야 한다는 데서 일종의 피로감을 느꼈던 듯하다. 새로움은 형태만 바꾼 채 우리 곁에 머무르며 다시 새로운 소비 패턴을 강요함을 알면서도 다시 과거로 돌아가지 못하는 삶은 여전하다는 사실도 알아차린 후였다. 여하튼 모두가 알고 있듯 이제 스마트폰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앞서 이야기한 모든 것들과 연동한 스마트폰은 이제 하나의 거대한 매트릭스를 구축하여 우리 삶을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씁쓸하게도 나의 가상현실 체험의 역사의 끝은 이 글을 읽는 모든 독자가 예상할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우리 삶의 패턴을 바꾼 사건인 코로나19와 연관되어 있음을 이미 눈치챘으리라. 지난해부터 전 세계적으로 창궐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감염 공포에 따라 사람들은 비대면이우선되는 삶의 방식을 강요받기에 이르렀다. 실재의 공간에서 만나서 대면하며 일을 처리하는 방식을 대체하여 비대면 방식의 플랫폼이 빠르게 보편화되었다.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와는 별도로 사람들은 새로운 플랫폼에 쉽게 적응해 갔다. 돌이켜보면 그간의 다양한 가상현실 플랫폼에 익숙해진 결과로 보인다. '줌'을 필두로 한 비대면 온라인 회의 플랫폼들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가상현실의 개념과 맥이 닿아 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30년이 조금 넘는 시간, 우리는 가상현실과 그것을 구현해내는 플랫폼들이 사람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었음을 지켜보았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현실 세계에서 가상 세계로의 이행에 따라 끊임없는 도전과 성과를 이루어냈음은 물론이다. 이제 그 모든 것들이 얽히고설킨 초월적 세계를 엿볼 시간이다.
3. 실재감 : 메타버스와 문화예술이 만나는 방식
하나 있다. 좋든 싫든 지금은 코로나 시대라는 것. 서로 만나기가 두려우나, 기존의 생활 방식은 여전히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다. 그럼에도 문화예술은 특수한 분야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경제가 우선이라고 여길지도 모를 문제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문화와 예술이야말로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분야임을 모른 척할 수 없으리라. 게다가 문화예술이 경제와 보이지 않게 연결되어 있다는 언설은 상식에 속한다.
그렇다면 이 엄혹한 시대에 어떻게 전시를 열고, 공연을 즐기며, 문학을 이야기할 수 있으며, 그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지는 축제를 열 수 있을까? 무릇 축제란 축제가 열리는 곳으로 이동하는 데부터 시작해 시끌벅적하게 사람들과 살을 부비며, 때로 텐트 치고 자기도 하지 않나. 아무리 기술이 발전했다고 해도 그러한 경험들을 대체할 수는 없는 법. 당연히 장르별 특성에 맞춘 기술 적용이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
현재의 메타버스에 적용되는 기술은 아쉽게도 시각적 측면에 치우쳐있는 것이 사실이다. 아바타가 그렇고 가상공간 설계가 그렇다. 어찌 보면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가상현실이 인류의 감각을 시각 중심으로 바꾸어놓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그렇다면 메타버스라는 가상의공간에서 실재처럼 몰입할 수 있는 방식은 무엇일까? 어쩌면 이 물음이모든 사람이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가상현실에 본격적으로 열광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할지도 모른다.
메타버스 플랫폼에서는 나의 아바타가 전시회에 가기도 하고 공연을보러 갈 수도, 그리고 축제를 즐기러 갈 수도 있다. 그런데 이때 놓쳐서는 안 될 요소가 '실재감'이다. 즉, 플랫폼에 구현되어 움직이는 아바타가글자 그대로 나를 대체하는 존재로 나에게 인식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다. 이는 미술사의 개념을 대입하자면, '내가 중심이 되는 원근법적 세계관을 얼마나 정교하게 구현할 수 있느냐는 질문으로 치환된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회화는 '나'를 중심으로 세계가 전개되는 원근법을 적용해왔다. 이 원근법은 단순히 미술 기법을 넘어 서구인의 세계관으로 정착되기는 하나, 주체와 타자를 나누는 근거로 설정되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하다. 그럼에도 좋든 싫든 근대 이후 세계는 이 원근법을 기반으로 모든 것을 만들어낸 것 또한 사실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주체의 눈으로 파악한 세계를 정교하게 재현하는 기술적 완성도에 있었다. 물론 현대미술이 형태와 색채의 고정된 개념을 해체하면서 원근법은 종말을 고하지만,
흥미롭게도 현재의 메타버스 기술 수준은 아바타에 감정이입 하는 단계에까지는 이르지 못해 보인다. 르네상스와 근대의 회화가 성취한 사실적 재현에도 한참 미치지 못한 불완전한 재현 수준에 의존하는 듯하다. 몇 걸음 양보해 생각해 봐도 현재의 아바타는 게임 캐릭터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1인칭 시점의 게임에서 구현하는 나'와 본질적 기술적으로 차이가 없다면 메타버스 안의 콘텐츠에 집중하기란 애초부터 어려운 일이다. 물론 그렇다 치고 메타버스를 즐기는 데에 큰 문제는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를테면 가상의 공간을 능동적으로 이동하며 전시 콘텐츠를 감상하고 무대를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이때 우리는 나와 다른 수많은 나'와 어쩔 수 없이 부딪힐 수밖에 없는데, 이는 가상의 공간을 현실로 인식하게 만드는 데 치명적인 결함으로 다가온다. 가상은 결국 현실에 기인해야 하는 법, 아바타가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공간이라면 그저 가상으로 인식될 공산이 크므로 그렇다.
또 하나의 문제는 왜 굳이 메타버스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문화예술콘텐츠를 만나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역시 앞서 이야기한 아바타, 혹은 캐릭터에 전적으로 몰입할 수 없는 현재의 기술적 수준과 맥이 닿아 있다. 가상공간 안에서 생동하는 나의 분신과 콘텐츠가 따로따로 인식된다면 구태여 메타버스 플랫폼을 수고롭게 이용하지 않아도 될 일이므로 그렇다. 오히려 온라인으로 중계되는 고화질의 콘텐츠를 직접 이용할 때 더 크게 감동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문학 분야도 마찬가지다. 문학 콘텐츠를 즐기기 위해 메타버스 플랫폼을 선택하는 독자가 과연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문학을 담는 책이라는 매체는 여전히 유효한테도 말이다. 물론 문학이라는 본질과 결합하거나 파생한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를 제시할 수는 있다. 만약 그렇다면 그 지점에 대한 기대는 접지 않는 편이 낫다고 보인다. 그런 점에서 메타버스를 활용해 뮤직비디오를 발표하고 가상의 공간 안에서 팬 사인회를 연다든지 하는 방식은 얼마든지 확장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본다. 이미 몇몇 성공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말이다.
그렇지만 메타버스 플랫폼이 부정적 면만 가지고 있지는 않다. 코로나 19 상황에서 오프라인 문화예술 프로그램의 훌륭한 보완재로 쓰일 가능성은 높다. 이미 적지 않은 공연이 온·오프라인을 병행하고 있는데, 오.프라인 행사보다 적은 금액으로 온라인 입장료를 받는 방식이 시사하는 바도 크다.
4. 문제는 재매개다
그러므로 메타버스가 문화예술과 만나는 방식은 더욱 정교하고 세련되어야 한다. 가상의 플랫폼 안에서 아바타가 만나 회의를 진행하거나 게임을 하는 정도로는 문화예술 분야에서 본격적으로 콘텐츠를 향유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것이 사실이다. 예술은 그저 내용만 공유해서는 안 될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실재감을 바탕으로 매체를 이용한다는 사실 자체를 잊게 만드는 것이 관건이다. 또 하나의 나'가 가상공간을 누비며 실재의 콘텐츠를 즐기는 수준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 그것이 결국 메타버스가 지향해야 하는 이상이 아닐까. 일찍이 볼터(Jay David Bolter)와 그루신(Richard Grusin)이 「재매개: 뉴미디어의 계보학 (Remediation: Understanding New Media)」에서 밝혔듯 모든 미디어는 '미디어를 증식시키고자 하면서 동시에 그 매개의 모든 자취들을 지워버리려'1) 하는 것처럼 말이다. 만약 우리가 언제나 그랬듯이 새로운 매체의 출현 앞에서 부정적이었던 태도를 벗어나 용기 있게 그것을 대면할 수 있다면, 언젠가 메타버스에 최적화된 새로운 예술의 형식에 몰입할지 모른다. 그러므로 정교화할 메타버스는 문화예술의 또 다른 미래다.
박석태현 인천문화재단 창작지원부 근무
1) 제이 데이비드 볼터 · 리처드 그루신, 이재현 역, 재매개: 뉴미디어의 계보학 커뮤니케이선북스, 2006. p.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