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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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 없더라도 폭력은 사라져

김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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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보수적이다. 그리고 사회의 변화를 따라 한발 느리게 변화한다. 법이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기치에 '정의'만이 아니라 '안정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류는 긴 시간 젠더문제에 있어 평등하지 않았다. 즉, 정의롭지 않았다. 사회의 변화와 많은 여성들의 노력이 얽혀 꾸준히 진일보해왔지만, 법적용과 사람들의 인식에 가장 급격한 변화는 최근 몇 년간 밀려왔다. 짧은 시간동안 고전적인 성폭력 사건들을 수사하고 처벌하는 등 법의 적용 영역에서 평등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객관적이란 무엇인지, 합리적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과 변화가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슬며시 외면되는 영역이 있었다. 난관에 봉착해 찾아오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직업의 근간으로 삼는 변호사의 입장에서는 기존에 사회가 포용해온 성문화와 궤를 같이 하느냐와 연관성이 짙어 보였다.

21세기 들어 특히 미투 운동의 바람이 불었던 시기에 한국에서 성을 둘러싼 법률이나 그 적용에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이는 여전히 사회가 보호해야 할 가치가 있는 성, 성문화 안에서 일어난 사건에서 그간 약자였던 여성의 입장을 받아들여 그 보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의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한국사회가 터부시해온 성문화, 예를 들면 소위 '무슨 일을 당해도 싼짓을 한 여성의 사건에 있어서는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여성이 법의 보호를 받기 위해서는 여전히 아무 일도 당하지 않기 위한 조건을 요구하고 있다. 대놓고 '음전함'이나 '정숙함'을 들이밀지 않을 뿐, 좀더은밀하고 교묘한 방법으로 이를 장착해왔다. 성을 적극적으로 욕망하거나그동안 알려진 것과 다르게 욕망하는 여성들에게 일어난 사건들은 다르게취급받고 있고, 그런 여성들의 사건이나 존재에 대하여 성별을 가리지 않고 외면했고 일부에선 혐오하기까지 했다. 이런 현상은 어떤 공고한 사회적 합의처럼 담론에서도 빠져버렸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함께 형사법적 성범죄로 의율할 수 있느냐와 별개로 사회학적 측면에서는 성폭력으로 여겨지기 충분한 사건들이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이는 데이트폭력의 연장선에서 회자되는 리벤지 포르노나 사적 공간에 설치된 몰래카메라 같은 문제만이 아니다. 성적수치심을들게 할 만한 영상의 촬영이나 가공, 유포와 관련된 문제 안에도 이보다.훨씬 다양한 이야기들이 존재하고 촬영물 등과 무관한 각종 사건사고들이난무하는 중이다. 그리고 이런 사연들은 온오프라인을 오가며 연동되어 일어난다. 변호사가 되고 9년간은 타인의 사건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당사자로부터 직접 듣는 현장에서는 스스로가 구닥다리가 된 것인가 싶을 정도로낯선 이야기들을 쉼없이 접하며 달려왔다. 그렇지만 디지털이란 수단을 소거하고 생각해보면 그렇게 낯설다고만 할 수도 없는 이야기들도 많았다.디지털이란 수단이 등장하면서 좀더 쉽게 좀더 과감하게 시도되거나 감행된 것들일 뿐, 사실 그 이야기들의 저간에 자리한 인간의 욕망이나 행위는기실 다를 것이 없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변호사가 된 후 성폭력 사건과관련된 인식이나 법적용이 나름 가파른 변화를 해온 반면에, 이런 일들은그렇지 못했다. 대개의 경우 “안타깝지만 법적으로 처벌하긴 어렵습니다”“처벌이 안되는 상황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같은 말을 전하는 것으로 상담을 마무리하는 것은 9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차이가 없었다.

“소개팅 앱에서 만나 진지한 만남을 하려던 거였는데 유린당하고버려졌어요.”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고 싶은 욕구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치열하고각박한 사회를 살아내며 어딘가 의지하고 싶은 마음, 그런 누군가와 스킨십을 하거나 섹스하고자 하는 욕구도 마찬가지다. 남자냐 여자냐에 따라달라지는 것이 아닌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이다. 사회의 변화 발전에 맞춰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인식이 보편화되었고, 여성 역시 성적욕망의 주체임에 대한 인식도 표면적으로는 높아졌다.과거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착하고 예쁜 여성이 부와 명예를 가진 남성에게선택되어져 행복해지는 내용을 주로 다뤄왔다면, 최근에는 자기 일이나 주관이 분명한 여성들이 사랑을 쟁취하는 작품들이 확연히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 안에서 여성은 유교적으로 반듯하다. 자신의 주변누군가와 일상과 감정을 교감하는 합리적 과정을 거쳐 연애하고, 사랑하며한 사람에게만 열중한다. 이들은 다른 이성에게 눈을 돌리는 법이 없고, 만약 그런 경우는 사랑이 소거된 상태에서 무의미한 관계를 껏다가 진실한관계에 눈을 떠 제대로 된 상태를 만들기 위해 나아가는 인물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현실의 상황들이 다 이렇게 반듯하게만 돌아갈까?

가부장적인 한국사회에서 나이가 들수록 연애할 상대를 만나는 일은쉽지 않다. 일정한 나이가 되면 안정된 직장, 안정된 결혼, 출산 등을 공통된 미션처럼 생각하는 사회인 것도 영향이 적지 않다. 주변에서 하나 둘기혼자들이 늘어나면 선택지가 좁아지는데, 자기가 소속된 커뮤니티 안에서 상대를 바꿔가며 만나는 일이 쉽지 않다. 섹스를 당연한 일상으로 여기는 미국이나 유럽의 영화나 드라마를 즐기지만, 한국의 성문화는 여성에게한층 보수적이다. 상대와 계속 사귀거나 결혼하는 것이 아닌 이상 언젠가불편한 상태가 돼버릴 것도 걱정이지만, 여성의 경우 성적 가쉽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부담도 따른다. 더구나 여성이라고 해서 꼭 결혼을 전제로 하는 만남이나 섹스만 하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디지털기술과 휴대폰의 발전으로 수많은 어플들의 춘추전국시대 같은형국인데, 그중 소개팅 어플같이 각종 만남을 주선하는 어플들도 존재한다. 선이나 소개팅같은 방법으로 커뮤니티가 다른 사람들끼리의 만남이 이루어졌는데, 이런 영역을 어플이 비집고 들어온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이런어플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진지한 교제를 하게 됐다고 믿고 섹스한 후 상대가 제멋대로 섹스를 하려 하거나 연락을 회피하는 등의 일로 상처받아법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상담해오는 여성들이 끊이지 않았다. 이들대부분은 당초 특별히 다른 연애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첫 만남을 갖게 되는 계기가 부모 세대와 조금 다를 뿐, 주선자가 사람이냐 어플이냐정도의 차이니 특별히 새로운 방식이라기보다는 우연한 첫 만남의 연장선정도로 여겼다. 다양한 사람들이 이를 이용하면서 여러 변칙적인 상황이발생했지만, 기실 이것이 틀린 시선이라고 볼 수도 없었다. 일반적인 또는확장된 소개팅을 통해 상대를 만났으니 상대가 전해오는 구에의 말들에,

|결혼을 전제로 진지하게 만나고 싶다는 고백에, 상대의 바람에 따라 섹스를 하고 마음을 주는 일들이 생겼다. 그런데 누군가를 만나 사귀고는 싶지만 상대가 마음에 들더라도 당장 섹스를 망설이는 여성들의 경우 사람을만날 방법이 여의치 않아 소개팅 어플을 사용했을 뿐 진지하지 않은 상대와의 혼전성관계에 대해 보수적인 경우도 상당하다. 그러하더라도 그저 섹스할 상대를 찾아나선 상대를 만나게 되고 거기에 그 상대가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않고 스스로의 욕망에만 충실한 경우, 지금 진지한 만남을하는 것이라 독려하며 상대의 욕망의 속도에 맞춰 섹스에 이른다.

하지만 그저 당장의 욕망이 중요했을 뿐 당초 진지한 만남을 할 의향같은 것은 없었던 상대는 여성이 진지하다고 느낄수록 이후 연락을 회피한다. 한동안 만남을 이어가며 섹스를 하던 중에도 여성이 진지하게 관계에몰입할수록 연락을 단절해버리기 일쑤다.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하다. 이런위험성이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지 않았더라도 정작 이런 일들이 내 일로펼쳐지면 당황스럽기 짝이 없다. 자기 삶에 성실할수록 그러하다. '뭐 눈엔뭐만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가입정보란을 진실하게 채우고 성의있는 만남을 기대하는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 역시 그러할 것이란 기대가 있다. 반대로 어플의 성격을 전혀 다르게 이해하고 이용하는 사람 중에는 어플을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하룻밤 섹스파트너 정도인 사람도 있을 수 있다.그런 사람들이 가입정보란을 진실하게 채울 리 만무하다. 그러니 이런 상황에 맞닥뜨리면 연애가 잘 안되었을 때의 상실감만이 아니라 속아서 훼손되었다는 피해감이 심각하게 남는다. 더구나 이런 경우에는 첫 관계에서음주를 하고 밀폐된 공간에 들어가 다소간의 물리적 유형려이 행사되는 일들이 적지 않고, 그렇지 않더라도 이후 여성이 원치 않는데도 섹스를 강행하거나 여성의 취향을 무시하고 가학적 성행위를 하기나 스텔싱을 벌이기도 한다. 심한 경우에는 성병이 의심되는데도 성관계를 시도해 감염시키고나몰라라 연락을 끊어버리는 일도 다반사다.

문제는 이런 일들을 당하고 버려지다시피 했는데, 이걸 처벌할 방법도 민사상 불법행위로 배상을 받기도 쉽지가 않다. 합의하에 성관계를 했다고 추단되는 일이 많은데, 특히 성관계가 반복된 후라면 더욱 그러하다.성병이 전염되었다고 하더라도 상대에게서 전염되었다는 것을 입증하기도쉽지 않다. 민사상 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을지와 별개로 형사처벌을 받게하려면 상대가 자신의 병을 알고도 고의로 전염시켰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다.

무조건 다 처벌해야 한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런 상황이 가능한 이유에는 남성들에게 섹스가 유희나 자랑거리 같은 것이라면, 여성들에게 섹스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인데, 그 근간에는 섹스가 사회적으로 여성에게 불리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런 속에서 속인 쪽에서는 거짓말로여성과 섹스에 이르게 되는 것이 마치 그 순간의 감정이나 성적 매력 같은것처럼 치장하며 죄책감마저 갖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이런 일들이일상적으로 허용되는 일처럼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이것은공정한가? 그렇다면 적어도 이런 상황들이 있을 수 있음이 평소 자연스럽게 이야기되고 경계되어야 하는데, 막상 교육이나 담론에서 그런 내용들은빠져있다. 여성 역시 낯선 누군가와 만남을 추구할 수 있고,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섹스할 수 있으며, 섹스하고 싶을 수 있다. 성교육에서 임신과정이나 피임에 대해서는 가르치지만, 여성의 욕망이 자연스러운 것임은 가르치지 않는다. 성폭력 예방교육에서 서로 원하지 않는데 일방적으로 행위하는 것은 성폭력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담론하지만, 현재 한국사회에서 성을바라보는 젠더간의 인식 차이나 세대간의 인식 차이, 우리 안의 욕망과 외부의 시선에서 느끼는 부담을 어떻게 중화해야 하는지는 담론하지 않는다.

“변태카페에 가입했다고, 먼저 섹스하자고 했다고, 성폭력을 당해도 되나요?”

관련해서 상담을 오는 사람들이 하는 말에 따르면, 특이한 성적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고 즉석 만남을 갖기도 하는 포털사이트 내의 일명 변태카페나 독립된 사이트가 한국에 천개가 넘는다고 한다. 이런 카페나 사이트들 대개에는 출처나 찍힌 사람들의 동의 여부를 정확하게 확인하기 어려운 음란한 영상물들도 다수 올라와있다. 흔히 이런 곳에는 남자 회원들만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1대1처럼 엇비슷한 비율은 아니지만, 그 안에는 상당수의 여자 회원들도 존재한다.

이런 카페나 사이트를 이용하다가 피해를 입게 된 여성들의 경우, 일반적인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들에 비해 신고나 고소에 소극적이다. 사건이 잘 처리되지 않을 것이란 심리적 장벽이 높은데, 심지어 우선 변호사와 법률상담을 하러 나오는 것에도 주저함이 많다. 자신들을 실로 이상한 사람으로 볼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기 때문이고,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폐쇄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성착취물과 같은 불법동영상임을 알고도 시청하는 등의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런 카페나 사이트에 가입하였다고 해서 부끄러울 일이 아니다. 남자들 대개가 동성 간에는 이를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는 반면에 여자들 대개는 동성 간에도 이를 수치스럽게 여겨 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가령 새디스트와 마조히스트가 모인 카페나 사이트를 통해 만나 섹스를 하게 되었다가 합의된 수준을 현저히 넘는 가학적 성행위로 피해를 입었다거나, 지속적인 만남을 종용받아 괴로워하는 일들이 있다. 여럿이 만나 모임을 했는데, 다함께 있었던 술자리나 귀갓길에 추행을 당하는 피해를 입기도 한다. 이런 경우 상해를 입거나, 협박이라고 인정될 수준으로 해악을 고지하거나 스토킹 범죄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반복적인 것이 아닌 경우 소명하기가 쉽지 않다. 그 만남 자체가 '뭘 해도 용인하기로 한 것 아니냐'라거나 '어디까지가 용인되고 어디까지가 용인되지 않는 것인지 어떻게 아냐라는 식의 시선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적취향을 서로 밝힌 모임이라고 해서 면대했을 때 무엇이든 해도 좋다는 합의가 있는 것은 아니다. 보수적인 한국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여성의 보편적이지 않은 성적취향이나 행위가 자칫 알려지는 경우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의 위협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런 부분들이 개별적인 사건에서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표현의 오류로 무고로 몰려 곤혹스러운 상황에 빠지는 경우도 많다. 그러다보니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혼자 끌어안고 지나가기 십상이다. 법적문제로 비화되는 경우가 적은데, 이런 일이 적어서가 아니다.

당사자끼리 촬영에 동의했던 성관계 영상이 모두가 봐도 되는 음란물인가?

이런 일들은 불법촬영이나 유포에서는 한층 더 심하다. 자신이 속한 카페나 사이트가 표방하는 회원들의 성적취향이나 활동 경험에 따라 축적된 지식에는 차이가 있다. 섹스 후 서로간에만 보고 삭제하기로 하고 찍었다가 나중에 유포된 영상을 보게 되거나, 섹스를 하며 상대가 특정 신체부위만 나오게 찍겠다고 동의를 구하여 촬영을 했는데 몰래 카메라를 추가하여 영상을 더 찍은 것을 알게 되거나 하는 등의 일들이 종종 벌어진다. 이런 경우 대부분은 상대방에게 삭제를 요구하며 조용히 해결하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대방이 다시 영상을 올리거나 이미 광범위하게 유포돼서 수습할 길이 난망해지거나 상대가 정말 삭제했는지 믿을 수 없으니 법에 도움을 구하고자 한다.

문제는 이런 경우 의사에 반하는 촬영이나 유포로 보기보다 동의하여 촬영한 음란물로 보아 처벌이 안 되는 것은 물론이고, 부주의한 진술로 자칫 애매한 표현들이 사용되고 거기에 상대가 악의적이기까지 하면 무고로 몰리기도 한다. 모르는 남자와 만나 섹스를 하고 영상을 찍는 것에 동의할 정도의 '문란한 여성'이라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인식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실제 의사에 반하는 촬영은 촬영물마다 개별 범죄행위인데, 이런 경우 일부 촬영에 동의를 했으면 나머지도 다 동의한 것으로 쉽게 간주하고, 이런 사이트에서 활동하며 영상을 찍는 것에 동의했다면 유포를 전제한 거 아니냐는 시선이 존재한다.

이런 모든 일들은 여성의 성적욕망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존중하지 않는데서 비롯된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저마다의 성적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더와 덜의 문제도 아니고 젠더별 방식의 문제도 아니다. 성적욕구와 마찬가지로 성적취향 역시 그러하다. 가학적 성행위나 여타 다른 성적취향을 남성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남성마다 다르듯, 여성도 여성마다. 다를 수가 있다. 이는 누군가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이 아닌 이상 부끄러워할 일도 아니다. 기술의 발전 속에서 비슷한 사람들을 쉽게 찾을 수 있고쉽게 은밀하게 만날 수 있게 된 사회가 되면서, 남성이나 여성이나 성적욕구가 있고 저마다 색다른 성적취향이 있을 수 있음을, 별반 다르지 않음을 확인하게 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차이라면 성적욕망이나 독특한 성적취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온 남성의 역사는 길고, 여성은 그러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런 속에서 성적취향이나 성적욕망을 자유롭게 드러낸 여성은 낯선 존재다. 이들이 어떤 상태이며 어떤 입장인지에 대해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이 낯선 여성들은 자신들의 성적취향이나 욕구를 드러냈으나, 이들이 바란 것에 대해 제대로 존중받지 못한다. 이렇게 원치 않는 피해를 입게 되는 것 역시 여성들이 물리적으로도 약자이고 이런 상황이나 영상이 알려졌을 때 더 취약한 입장에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것은 온당하지도 않고 합리적인 것도 아니다. 변태적 욕망을 가졌든, 누구와는 섹스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든, 그런 생각을 밖으로 먼저 표현했든, 그것이 그 여성의 의사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터치하거나 아무렇게나 섹스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여성이 특정 성관계 촬영에 우선 동의했다고 그 외 모든 촬영에 동의하는 것도 아니다. 촬영에 동의했다고 유포에 동의한 것은 더구나 아니다. 해당 법조항에 촬영에 동의한 영상물이라고 하더라도 의사에 반하여 유포해서는 안된다고 써있기까지 하질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한국에서는 소위 문란한 여성의 피해호소는 '왜 갑자기'라는 태도를 취하는데, 이는 욕망하는 여성은 뭐든 감수하기로 한 여성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즉 사회가 반듯하다고 생각해온 테두리를 벗어난 여성의 피해에 대해서는 보호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과 무관하지 않다.특이한 여성들의 다른 피해라는 건 없다.

지난 9년간 변호사로 활동하며 성폭력 관련 사건들을 중심으로 일을 해왔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여성들을 만나왔는데, 위에 든 사례들이 그 중 다수를 차지하는 사례들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이들과의 상담이 주기적으로 있고, 그 안에서 어떤 공통적인 현상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 문제가 계속하여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보편적인 성폭력 피해사례들과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다.

단시간 동안 변화한 지점에는 '왜 그렇게 술을 많이 마셨냐 죽을 힘을 다해 저항했느냐' '니가 알아서 피했어야지'와 같이 기존에 피해자들을 탓하던 시선과 잣대에 대한 반성과 변화가 있었다. 긴 시간 피해자들에 대한 책망과 트집은 한국사회가 가해자들의 편에서 요구하는 '정숙'과 '음전함'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에 뿌리를 두고 있다. 즉 여성이 보호받으려면 사회가 통제하려는 조금의 '문란도 느껴지지 않게 처신하라는 강요가 전제됐다. 그러나 여성이 술을 마셨든, 거부의사를 어느 수위로 표현했든, 어딜 가서 누구를 만나고 몇 시에 귀가를 했든, 그리하여 정숙해보였든 말든 성폭력을 당해도 되는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없다. 무슨 일을 당해도 괜찮은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가해자의 입장에서 면책되는 영역을 만들 뿐인 그런 구획을 여성 안에서 나눌 하등의 이유가 없다.

이처럼 미투 운동의 거센 영향권 속에서 한국에서 성을 둘러싼 법률이나 그 적용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중 가장 큰 부분은 피해 발생 당시 피해를 막거나 바로 조치할 수 있었겠는가를 피해자의 입장에서 살피보고 판단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것을 판결문을 통해 성인지감수성이라고 불렀지만, 그것은 어려운 말이 아니라 보편적인 인권감수성의 일부를 가리기는 것이었다. 이러한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성찰과 강조는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현재 우리 사회의 성인지감수성이 가닿는 범위는 사건의 양상이나 사건의 피해자가 기존에 한국사회가 지향해온 성문화와 맥락을 함께 하고 있는 경우다. 청소년, 열심히 일하는 근로자, 특정 상대방 외에는 스킨십이나 섹스를 하지 않는 여성들의 성적자기결정권을 해하는 행위에 대해 피해자의 입장에서 가해여부를 판단하고 그 처벌을 보다 엄중히 해왔다. 그러나 거기까지일 뿐, 사회가 그어놓은 성문화의 테두리를 넘어선 여성들의 피해에 대해서는 특이한 여자들의 이야기로서 다르게 취급하고 있는 중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사회가 제대로 존중하지 않고, 법이 공평하게 보호하지 않는데, 여성들 스스로마저 이런 부분들을 들여다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몇 년간 계속해서 성범죄에 대한 처벌의 수위에 대한 이야기 일색이었다. 하지만 자유롭고 평등한 성문화를 위해 우리가 나눠야 할 이야기가 처벌의 수위만은 아닐 것이다. 법적으로 처벌하긴 어렵지만 안타깝고 나쁜 짓들이 그간 어떤 이유로 허용되어 왔고 그러나 이제 왜 지양돼야 하는지, 어떻게 사회적 합의를 얻어갈지 이야기의 외연을 넓혀가야 한다. 그 시작점에 여성을 성적욕망이나 취향, 그 외연화에 따라 나누거나 달리 대하는 것이 온당한지, 여성의 성적욕망이나 평등이 자유롭게 담론되고 인식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과 담론이 있다.

이은히

 

이은의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저서로 <삼성을 살다>, <예민해도 괜찮아>, <불편할 준비>, <상냥한 폭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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