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적 상상력과 여성주의는 어떻게 함께 하는가
1. SF는 어떻게 여자들의 놀이터가 되었는가?
국내에서 SF의 독자층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교보문고 판매 집계에 따르면 2017년 이래 국내 SF의 인기가 급등하는 추세다. 2017년에는 9.6퍼센트였던 SF 판매점유율이 2019년에는 35.7퍼센트로 치솟았다. 2020년부터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강제된 재택근무와 자가격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생각할 시간을 선물했다. 독서량은 증가했다. SF는 베스트셀러 대열에 가세했다. SF적 상상력은 문학뿐만 아니라 예술/기술 분야 전반을 휩쓸고 있다. SF가가한 충격으로 보수적인 '순수'문학의 방화벽은 무너지고 있다. 진화신화의 작가 김보영이 무려 2015년까지 SF라는 이유만으로 문예지의 지면을 얻기 힘들었다고 토로한 점을 기억한다면 격세지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오랫동안 '순수 문학의 입장에서 SF는 변방의 장르물에 불과했다. 독서시장에서 인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싸구려 취급을 받는다. 과거 멜로물을 즐겼던 젊은 여성 독자들이 무시의 대상이었던 것처럼,SF의 수요자는 앞을 추구하는 '고급' 독자라기보다 자극과 재미에 중독된 대중적인 소비자로 치부되었다. 이처럼 B급 장르물로 취급받았던 SF가 문학의 지형도를 변화시키면서 급부상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4차산업 시대 '테크노사이언스'의 대중화와 접근성이다. 그런 현상은 SF의 수용에 자극제가 되었다. SF 작가 김보영은 꼬집어 2016년 이세돌과 인공지능 알파고의대국이 전환의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조류독감, 기후위기, 코로나 팬데믹에 이르기까지 과학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예외적인 비상사태가 빈번히 등장한다.
영미권에서 SF가 여성들의 놀이터가 된 것은 페미니즘의 영향력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사실 기존 SF(과학소설)는 여자들의 놀이터가 아니라 남자들의 전유물이었다. 테크노사이언스 분야에 열등한 여자들은 SF를 쓸 수도, 즐길 수도 없다는 편견이 심지어 20세기 말까지 잔존했다.
제2물결 시기에 쏟아져 나왔던 SF들을 분석한 책이 조애나 러스의 《SF는 어떻게 여자들의 놀이터가 되었나》이다. 기존 SF(과학소설)는 유사 과학이란 이름 아래 외계 식민지 개척, 외계인과의 전쟁 등, 낭만화된 남성 영웅들의 정복 서사를 되풀이했다.
하지만 어슐러 르 귄은 마거릿 애트우드가 '문학계의 게토'에 속하고 싶지 않아서 SF 작가임을 거부한 것으로 비판했다. 그런 비판에 대한자기 변론이 마거릿 애트우드의 《나는 왜 SF를 쓰는가》다. 이 에세이에서 애트우드는 공상과학소설로서 SF와 사변소설을 구별 짓는다.
2. 과학소설Science Fiction에서 사변소설Speculative Fiction로
페미니스트들이 SF를 사변소설로 개념화한 것은 기존의 지구남성인간이성 중심주의의 억압에서 벗어나려는 해방 기획에 대한 열망과 다르지 않았다. 사변소설은 과학이란 이름의 하드코어 테크노사이언스에 엄격하게 구속되지 않으면서도 인간 종의 삶에 대한 성찰과 사고실험을 확장하는 소설을 의미한다.
3. 불구의 시간성에 대한 다른 상상
사변소설은 과학사가 밝혀낸 시공간에 대한 페미니즘적인 탐색의 장이기도 하다. 김보영의 <7인의 집행관>은 직선적 시간성을 비틀어서 불구화하는데 능란한 사변소설이다. 흑영은 형벌로서 여섯 번 사형집행을 당한다.
김보영의 <지구의 하늘에는 별이 빛나고 있다>는 다른 행성에서 지구별로 여행 온 누나가 고향 행성에 남아 있는 남동생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이다. 화자인 '나'는 특수기면증자다. 하지만 지구별에 당도해 보니 지구인들은 저녁이면 적어도 여덟 시간씩 의식을 잃는다.
김보영의 단편 <우수한 유전자>는 불구의 시간성을 통해 반전 플롯을 전개한다. 스카이돔 출신 사회복지사 지훈과 동일시하도록 배치된 시점을 따라서 읽다보면 독자는 키바인들의 무지몽매와 노예근성에 치를 떨게 된다. 하지만 마지막 편지에 이르면 이 편지를 보낸 사람이 지훈이 아니라 키바인으로 드러나게 된다.
4. 페미니즘의 공유화폐로서 이야기의 힘
사변소설은 취약하고 비체화된 존재들이 함께할 수 있는 공유 서식지가 될 수 있다. 김성종의 <화성의 아이들>은 1957년 우주선 스푸트니크 2호에 실려 우주 미견이 된 실험동물 시베리안허스키 라이카, 불구가 된 화성탐사 로봇 데이모스, 열두 명의 클론이 탔던 우주선에서 유일한 생존자인 '나'가 화성에서 서로의 도움으로 살아남는 이야기다.
김초엽의 지구 끝의 온실에서 지구는 유독한 더스트폴로 절멸의위기에 처한다. 돔시티는 계급적으로 철저히 공간 분할된 사회다. 소수 특권계급은 정화된 공기로 숨 쉴 수 있는 바이오스피어 같은 완벽한 돔시티에서 거주한다.
마무리하자면, 사변소설은 경이로운 존재 인식론적 세계 인식이 가능하도록 해준다. 그처럼 불화하고 갈등하면서도 공생을 모색하는 공유화폐가 페미니스트 사변소설이다. 괴상하고 낯설고 경이로운 예술/기술의 혼종 가능성에 주목해 본다면, 다른 이야기들이 가능해진다.
SF가 변방 장르에서 문학 주류로 부상하며 '순수문학'의 경계를 해체하고 있다
사변소설을 통해 남성 중심적 SF를 여성들의 놀이터로 전환시키며 새로운 상상력을 제시한다
불구의 시간성을 통해 장애와 정상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해체하며 다양성을 포용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임옥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가르쳤고, 현재는 여성문화이론연구소에서 연구원들과 함께 페미니즘에 관한 이론실천공부를 하고 있다. 미래엔 페미니스트 이야기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 저서로 《페미 - 스토리노믹스》, 《메트로폴리스의 불온한 신여성들》, 《젠더, 감정, 정치》 등이 있다.
1) 마거릿 애트우드는 SF가 유토피아에 많이 의존하지만, 유토피아 안에 디스토피아가 있고, 그곳이아무리 끔찍한 디스토피아라고 하더라도 일말의 희망이 있다는 점에서, 유토피아적인 파편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양자의 혼성 장르로서 유스토피아Ustopia라는 신조어를 사용한다. <나는 왜 SF를 쓰는가>(양미래 옮김, 민음사, 2016) 참조.
2) 원제는 <여자처럼 글쓴다는 것 페미니즘과 SF에 관한 에세이>다. 원제보다 번역의 제목이 조애너러스의 저술 의도를 더 명료하게 반영한 것처럼 보인다. Joanna Russ, To Write like a Woman.Essays in Feminism and Science Fiction, Indiana University Press, 1995,
3) 여기서 구태어 '불구crip'라는 개념을 가져온 것은 손상이나 장애를 얼룩, 수치만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자긍심'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다. 혐오가 실렸던 '퀴어'라는 표현을 그대로 사용함으로써 자긍심으로 만들어 낸 것과 같은 의미에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