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답하다
묻고 답하다

어렸을 때 살던 아파트에 찾아가 본 일이 있다. 어깨높이까지 와서 팔을 높게 들어야만 잡을 수 있었던 계단 손잡이가 낮게 위치해서 조금은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 본 아파트 단지와 놀이터는 참 크고 넓어서 아득했던 것 같은데, 이렇게 공간이 작았나 싶어서 이제는 정말 그 시간으로부터 멀어졌구나, 실감이 났던 것 같다. 거꾸로 매달려 본 아파트 단지와 놀이터 그럼에도 종종 내 안의 어린아이와 마주치는 순간이 있다. 아주 가끔 이유 없이 손톱을 물어뜯을 때는 어린 시절 홀로 집에 남아 부모님을 기다리며 손톱을 갉아

김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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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살던 아파트에 찾아가 본 일이 있다. 어깨높이까지 와서 팔을 높게 들어야만 잡을 수 있었던 계단 손잡이가 낮게 위치해서 조금은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 본 아파트 단지와 놀이터는 참 크고 넓어서 아득했던 것 같은데, 이렇게 공간이 작았나 싶어서 이제는 정말 그 시간으로부터 멀어졌구나, 실감이 났던 것 같다.

 

거꾸로 매달려 본 아파트 단지와 놀이터

 

그럼에도 종종 내 안의 어린아이와 마주치는 순간이 있다. 아주 가끔 이유 없이 손톱을 물어뜯을 때는 어린 시절 홀로 집에 남아 부모님을 기다리며 손톱을 갉아 먹던 아이가 불쑥 나를 찾아온다. 입안에서 쭈글쭈글 불은 손가락을 내려다보는 아이. 그때 느꼈던 씁쓸하고 외로운 맛. 이런 순간도 있다. 길을 지나다가 바람에 흔들리는 그네를 볼 때, 삐걱대는 쇳소리를 들을 때나는 그것을 타고 공중으로 나아가던 시절로 돌아간다. 어지럽게 흔들리던 초록의 잎사귀. 발을 힘차게 구를 때마다 조금씩 가까워지던 하늘 그대로 날아갈 수도 있을 것도 같았는데 깨진 유리조각과 나뭇잎, 돌멩이를 그러모았던 정글짐 아래도 생각이 난다. 그곳을 기지 삼아 친구들과 모여 음식을 만들고 나눠먹는 상상을 하며 놀기도 했었다.

 

그때는 소용이 다해 버려진 물건도,

놀이터에 푹신하게 깔린 모래도

함께 어울리기 좋은 친구였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코로나가

전국을 휩쓸고 있는 요즘 아이들은 무엇을 하며 지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이와 함께 살지도 않고, 그에 관련된 일도 하지 않는

나에겐 깊이 생각해본 적 없는 질문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고 서로와의 만남이 제한된

상황에서 아이들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혹시 실내에서만 침울하게 지내고 있지 않을까.

놀이터와 운동장은 텅 비고 어두운 적막만이

깊게 드리워져 있진 않을까.

걱정이 앞섰던 것 같다.

 

아이들이 보여준 모습은 내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아이들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놀이'를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었다. 미술관 한쪽에 마련된 색종이 무더기 속에서 백지 위에 정성껏 형상을 만들기도 했고, 모래성을 쌓고 무너뜨리거나, 자전거를 타고 골목과 공원을 신나게 가로지르기도 했다. 마스크를 끼고 어른들이 제시한 규칙을 지켜가면서 말이다

 

아이들이 머무는 곳. 그리고 머물다 떠난 곳.

 

아이들이 머무는 곳, 그리고 머물다 떠난 곳. 그 주변을 조심조심 따라가 보면서 담은 풍경에는 온갖 사물들이 가득했다. 한참을 가지고 놀다가 무심코 두고 간 비눗방울 통부터 피규어가 가득 들어있던 장난감 트럭까지. 아이들은 사물과 얽혀서 저마다의 순간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골대 안으로 들어간 농구공을 보며 탄성을 외치는 순간과 빙글빙글 돌며 비눗방울의 테두리를 톡 하고 건드려보는 빛나는 순간들 말이다.

 

한 가지 기억나는 순간이 있다. 아이가 가지고 있던 연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서, 양해를 구하고 연을 찍던 도중이었다. 내가 세심하게 여러 각도에서 사진을 찍자 어쩌면 내가 그것을 갖고 싶을지도 모른다 생각했는지 이 연 저기 매점에 가면 살 수 있어요.”하고 쑥스럽게 가르쳐 주었다. 그 목소리에 배어 있는 다정함이 참 따뜻했다.

 

미처 담지 못해

 

아쉬웠던 순간도 있다.

 

아이가 강물에 손을 담그고

 

그것을 쥐었다 폈다 하는 모습이었다.

 

아이는 손가락 사이를

 

훑고 가는 강물을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궁금해하며 카메라를 들고 싶었지만

 

혹시나 그 시간을 깨뜨릴까 싶어

 

그만두었다.

 

그러나 카메라에 그 모든 순간을 담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 테다. 그 순간들은 그 순간대로 아이의 살갗에 닿아 새로운 감촉으로 기억될 것이다. 나는 그때 그 아이가 강물을 어떻게 느꼈는지 영원히 알 수 없겠지만, 기쁘게 아끼고 궁금해할 것이다. 아이들이 느끼고 만들어갈 세계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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