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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부끄러움이 마비된 한국사회…'수치'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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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요약
수치심이 사라진 한국 사회의 현상을 진단하는 신간을 통해,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의 사회적 기능과 그 마비가 불러오는 위험을 문화적 맥락에서 분석한다.

정치인의 거짓말이 드러나도 사과 없이 넘어가고, 기업의 비윤리적 행위가 폭로되어도 주가는 오히려 오르며, 연예인의 추문이 시청률로 소비되는 사회. 최근 출간된 수치의 두 얼굴은 한국 사회에서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어떻게 마비되었는지를 추적하는 문화 분석서다.

저자는 수치심이 본래 사회적 규범을 유지하는 핵심적인 도덕 감정이라는 점에서 출발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수치심을 반덕(準德)이라 부른 것처럼, 부끄러움을 느끼는 능력은 도덕적 주체로 살아가기 위한 기본 조건이다. 유교 문화권에서는 수오지심, 즉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인간다움의 근본으로 여겼다.

그러나 이 책은 한국 사회가 경제 성장 과정에서 수치심의 기능을 체계적으로 해체해왔다고 진단한다. 성공과 효율이 최고의 가치가 된 사회에서, 부끄러움은 약함의 표식으로 치환되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 승리하는 구조가 고착되면서, 수치심은 사회적 약자에게만 집중적으로 부과되는 불평등한 감정이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의 분석에서 주목할 점은 디지털 시대의 수치심 경제학이다. 소셜 미디어의 공개적 망신주기 문화, 이른바 공론장의 심판대화 현상은 수치심을 개인의 도덕적 성찰이 아닌 집단적 폭력의 도구로 전락시켰다. 누군가를 부끄럽게 만드는 것이 정의 실현의 방법이 된 사회에서, 역설적으로 진정한 부끄러움은 사라지고 있다.

비교문화적 관점도 흥미롭다. 루스 베네딕트가 국화와 칼에서 일본을 수치 문화로, 서양을 죄책 문화로 구분한 이래, 동아시아 사회의 수치심은 많은 연구의 대상이었다. 이 책은 한국이 수치 문화와 죄책 문화의 경계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분석하며, 한국인의 체면 의식이 수치심의 변형된 형태라고 해석한다.

특히 한국의 정치 문화에서 수치심의 부재는 치명적이라고 저자는 경고한다. 공적 인물의 도덕적 해이가 사회적 제재를 받지 않는 현실은 민주주의의 근본을 위협한다. 공직자의 비리가 드러나도 뻔뻔함이 미덕으로 통하는 정치 문화는, 시민들의 정치적 무관심과 냉소주의를 심화시키는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저자는 수치심의 완전한 회복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전통 사회에서 수치심이 개인의 자율성을 억압하고, 특히 여성과 소수자에게 부당한 낙인을 부여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던 역사를 환기하며, 건강한 수치심과 억압적 수치심의 구분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결국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명료하다. 부끄러움을 잃은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는가. 수치심이라는 불편한 감정을 다시 들여다보는 것은 한국 사회의 도덕적 기초를 재건하기 위한 첫걸음일 것이다.

📊 숫자로 보는 이 기사
73
한국 사회의 도덕성이 저하되었다고 응답한 시민 비율
한국행정연구원 사회통합실태조사 (2024)
28
공직자의 도덕성을 신뢰한다고 응답한 비율
한국갤럽 정치신뢰도 조사 (2024)
4.2
2019년 대비 2024년 온라인 공개 비난 관련 게시물 증가율
한국인터넷진흥원 사이버폭력 실태조사 (2024)
이 기사를 주목해야하는 이유
1
민주주의의 도덕적 기반

공적 인물의 수치심 부재는 정치적 책임성을 약화시키고, 시민의 정치적 무관심을 심화시켜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합니다.

2
디지털 시대의 감정 윤리

온라인 공간에서 수치심이 폭력의 도구로 전락하는 현상은 디지털 시민의식과 감정 윤리에 대한 새로운 성찰을 요구합니다.

3
사회 통합의 전제 조건

건강한 수치심의 회복은 공동체의 규범을 유지하고 사회적 신뢰를 재건하기 위한 필수적 조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