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시간마다 책을 읽는 친구가 정말로 있었다. 내 뒷자리에 앉는 남자애였다. 그는 말뚝박기와 공차기로 난장판이 돼가는 교실 따위는 보이지도 않는 것처럼 얌전히 앉아 책장을 넘겼다. 혼자 있으면 외로움을 넘어 비참함을 느끼는 중학생들 사이에서 꿋꿋이 홀로 자리를 지키는 그의 모습은 감탄을 자아냈다. 또래가 아닌 선생님한테만.
당장 전학 간다고 해도 롤링 페이퍼에 딱히 남긴 말이 없는 친구, '친구'라 부르기엔 말 한마디 섞을 일 없이 책만 보는 애. 흐릿하게만 인식되던 그 애를 들여다보게 된 건, 수업 시간에 앞에서 건넨 프린트물을 뒷자리로 넘겼을 때였다. 그는 교과서 밑에 책을 그럴듯하게 숨겨놓고 읽느라 프린트물에 눈길도 주지 않고 있었다. 심상치 않았던 건 그의 표정이었다. 글만 빽빽하게 박힌 책을 읽으면서 만화책을 책상 밑에 감춰놓고 슬쩍슬쩍 보는 친구들과 다를 바 없는 얼굴을 하고 있던 것이다! 흘끗 본 책에는 정말 그림 한 점 없었고, 당시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던 귀여니를 필두로 한 인터넷 소설특유의 이모티콘이나 과도한 여백마저 없었는데도.
"재밌어?"
그는 길게 답하는 대신 책가방에서 책을 하나 꺼냈다. 때마침 지금 1권이 있다면서, 얼결에 받아 든 책의 표지는 일반적인 소설에 비해 제법 화려했고, '판타지 장편소설'이란 설명과 함께 <하얀 늑대들>(윤현승, 파피루스, 2003)이란 제목이 세로로 쓰여 있었다. 처음 접하는 판타지란 장르, 섣불리 시작하기 겁나는 '장편'이란 단어, 화려하고 장엄한 표지 위의 세로쓰기… 모든 게 수상쩍었지만, 나는 홀린 듯이 책장을 넘겼다. 그리고 그 책은 내가 몰랐던 이세계로 들어가는 최초의 입구가 됐다.
하얀 늑대들이 나를 이끈 곳은 왕과 작위 서열을 가진 귀족들이 등장하는 얼렁뚱땅 중세 유럽 느낌의 세계였다. 전쟁이 벌어지고 알 수 없는 음모가 판치는 대혼란 시대,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마을의 차기 촌장으로 각광받는 정도의 삶을 살던 주인공이 전쟁터에 나가게 되는 이야기였다.
판타지 소설이라기에 주인공이 통쾌하게 검과 마법을 휘두르면서 세계를 악의 무리로부터 구하는 내용일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하얀 늑대들」의 주인공은 소설 첫 장에서부터 전쟁 한복판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시체 밑에 몸을 숨기느라 바빴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주인공이 강해지기는커넝 그가 가진 한계만 분명해졌다. ‘전쟁 같은 대한민국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는 것도 힘든데 이럴 거면 내가 일기를 썼지. 왜 판타지 소설을 읽나.......’라는 생각이 들 때쯤, 약하디약한 주인공의 고백이 마음을 거세게 두들겼다. 못난 스스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나중에 손자에게 들려줄 이야깃거리가 있는 모험담을 가진 할아버지가 되고 싶다는 꿈이 담긴 독백이었다. 이 소설이 '판타지'로 분류되는 건, 마법이나 이종족 같은 것보단 주인공의 이 꿈 때문이 아닐까. 타고난 재능과 상관없이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꿈을 꿀 수는 있는 거라고 부추기는 그 말이 그 말을 하는 사람이 나와 비슷한 범위의 인간이라는 점이 인생의 주체의식이라곤 없었던 중학생의 마음을 뒤흔들고 말았다.
물론 소설 속에는 속이 시원해질 정도로 강한 사람들도 등장한다. 일단 '하얀 늑대들' 자체가 세계관 내 최강의 기사단인 울프 기사단 중에서도 가장 손꼽히는 사람들을 부르는 말이다. 그들이 "하얀 늑대의 이빨을 보고 살아남을 수 있는 건 하얀 늑대뿐이다"라고 말할 때면, 나도 그런 무리의 일원이 돼보고 싶어서 애가 탔다. 다만 짜증 날 정도로 현실적인 주인공은 잘난 하얀 늑대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자괴감에 빠지는데, 그런 그에게 하얀 늑대들은 말한다. 곧 네 이빨이 뭔지 알게 될 날이 올 거야."
그게 대체 뭔지, 결국에는 주인공이 강해지는 건지 궁금해죽을 지경이었던 나는 하교할 때쯤 친하지도 않았던 남자애의 교복 자락을 붙들고 얼른다음 권을 내놓으라고 닦달했다. 책 읽느라 밤을 새우다시피 한 다음 날의 등교는 하얀 늑대들의 다음 권을 읽기 위한 것이었다. '뒷자리에 앉아서책만 읽는 애'에서 '뭘 좀 아는 뒷자리 친구'로 승격된 남자애는 마지못해하면서도 상기된 표정으로 착실하게 책을 건넸다. 아직 완결되지 않아서 더 이상 빌려줄 책이 없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내 안에 앞으로 채워주지 않으면 계속해서 갈증을 느끼게 될 새로운 웅덩이가 생겼다는 걸 깨달았다.
친구에게 빌려 보는 책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게 된 나는 자연스레 대여점에 수시로 드나들게 됐다. (웹소설 플랫폼도, 스마트폰도 없던 비극적인 시절이었다.) 문제는 대여점에서 빌린 책을 읽을 곳이 없었다. 아버지는 학업과 전혀 상관없는 허황된 판타지 소설 따위에 시간을 쓰는 걸 절대 용납하지 않았으니까, 나는 빌린 책들을 들키지 않게 체육복으로 한 번 감싸서 책가방에 넣었다. 책은 이불과 교과서 밑에서 은밀하게 펼쳐졌다. 한 자라도 더 읽고 싶었던 나는 길 위에서도 쉴 새 없이 책장을 넘기기에 이르렀다. 누가 보면 문학소녀라고 대단히 착각했을 만한 모습이었다. 판타지 소설을 읽는 것 자체가 모험이 되는 상황이 닥치자, 비로소 하루 종일 묵묵하게 책만 붙잡고 있던 나의 '뭘 좀 아는 뒷자리 친구'를 이해할 수 있었다. 갠 정말로 뭘 아는 애였다.
책장을 넘기는 것만으로 나는 온갖 세계를 누비며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하얀 늑대들과 비슷한 중세 느낌의 세계관, 중국 무림, 몇천 년 후의 미래, 심지어는 게임 속 세상까지 넘나들었다. 대부분의 등장인물은 내가 하얀 늑대들을 읽기 전에 기대했던 대로 강력했다. 검의 최강 달인급인 소드 마스터부터 마법의 정점에 선 9서클 이상의 대마법사를 비롯해 정령사, 치유사, 테이머 등 다양한 직업군의 최강자들이 끝없이 등장해 세계를 구하고 일생의 사랑을 얻었다. 자극적인 클리셰로 점철된 판타지소설들은 '양판소'(양산형 판타지 소설)라고 사람들에게 비난받기도 했지만, 나는 그런 소설들이 끝없이 양산되기만을, 그래서 내 모험이 끝나지 않기만을 바랐다. 그 시절의 나는 환상이 필요했다. 현실과 동떨어질수록 좋았다. 학교와 학원을 왕복하는 지긋지긋한 하루가 수없이 반복됐고, 지루하기만 한 시간을 쌓아 올려 얻을 수 있는 미래는 그다지 멋질 것 같지 않았으니까. 중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지만 전교권은 아니고, 피구를 할 때 친구들이 꽤나 반기는 운동 실력을 가지고 있지만 꼭 있어야 되는 선수는 아니고, 그림을 잘 그리긴 하는데 대회에 나가 생활기록부에 보탬을 줄 수 있을 만한수준은 아니고, 모두가 좋아하는 친화력을 가진 것도 아닌, 그렇게 크게 바뀔 여지 없는 인생 속에서도 꿈은 꿀 수 있는 거니까.
나의 '뭘 좀 아는 뒷자리 친구' 역시 이런 마음 아니었을까. (역시 정말 뭘좀 아는 애라니까.) 그와 나는 각자 판타지 소설을 읽느라 대화할 겨를은 없었지만, 종종 문자를 주고받았다. '요즘 뭐가 재밌냐'라고 물어보면 괜찮았던 목록을 주루룩 뽑아주는 식이었다. 참으로 정보 전달에만 충실한, 담백한 연락이었다. 다만 나는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뭔가 통한다고 생각했다. 현실과는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를 공유하는 그 세계로 잠시라도 들어갔다 나와야만 현실을 견딜 수 있는 마음을 아는 일종의 모험 동지라고나 할까.
착각에 불과했을 것이다. 학년이 올라가며 그와는 순식간에 멀어졌으니까. 그래도 판타지 소설들은 계속해서 쏟아졌고 내 하루 역시 별다를 것 없이 흘러갔다. 그 모든 일이 너무나 자연스러웠고, 대한민국 중학생의 일정은 반 친구 하나쯤은 쉽게 잊을 만큼 빽빽했다. 그리고 그즈음, <하얀 늑대들>의 완결이 나왔다. 한없이 약했던 주인공의 이빨은 대체 뭐였을까? 그간 수많은 판타지 소설을 섭렵했던 나는 기대를 안고 다시 하얀 늑대들 정주행을 시작했다.
기다린 세월이 무색하게도 주인공은 여전히 부족했다. 주인공은 무력이 최강인 세계관에서 끝까지 검을 휘두르며 싸우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못난 모습을 고백할 줄 알았고, 그 부족한 부분을 주변의 친구들로 채울 줄 아는 사람이 됐다. 그가 약해도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이유였다.
차라리 내가 엄청난 재능을 타고나지 못했거나 기연을 만나지 못해서 이 세계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거라고 해달란 말이야! 나는 토로할 사람도 없이 비밀스럽게 판타지 소설이나 뒤적거리고 있는 처지가 외롭고 쓸쓸해서 견딜 수 없었다. 동시에 나의 '뭘 좀 아는 뒷자리 친구'가 책가방에서 <하얀 늑대들> 1권을 선뜻 꺼내주던 장면이 떠올랐다. 네가 나에게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방법을 알려주었듯, 나 역시 한 번쯤 너에게 왜 판타지 소설을 읽냐고 물어볼 걸 그랬지. 그랬다면 우리는 정말로 친구가 될 수 있었을 텐데. 그럼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끼리 외롭지 않았을 텐데, 불현듯 그 친구의 가방엔 언제나 좋아하는 판타지 소설의 첫 권이 들어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읽음으로써 돌아가는 상상 속 영사기
김효연
독자 게스트 에디터,
다양한 플랫폼이 제공하는 영상 속에서 친절하게 다가오는 감정에 재미를 느끼는 것이 익숙해진 세상입니다. 친절한 세상에서 누군가의 글을 읽는 행위는 꽤 단순하고 다정한 일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편지를 읽는 것처럼요. 하지만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버린 친절함에 한 걸음 떨어져 어쩌면 능동적으로, 불친절한 글을 읽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러 이유로 책을 사고, 읽기에 도전하곤 합니다. 하지만 책을 온전히 읽어 내리는 사람은 그에 비하면 적은 것 같습니다. 저 역시도 책을 '사는' 행위를 좋아하던 사람이었으니까요. '읽어야 한다' 혹은 '읽고 싶다'라는 마음으로 책을 집어 들었지만 막상 가져가면 책장에 박혀 있기 일쑤였죠. 그런데도 제가 독서를 할 수 있게 된 이유는 책을 읽어 내렸기 때문이었습니다. 편안하고 자극적인 외적 공간에서 잠시 멀어져 단순히 글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무슨 힘이 있었기에 자발적인 독서를 시작했는지 그때는 몰랐습니다만, 돌아보니 그 힘은 '재미'였습니다. 읽는 행위를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속에 있는 재미를 찾았기 때문이었던 겁니다.
그러나 재미를 찾기 위해서는 책을 읽는다'는 과정이 존재해야만 합니다. 책을 읽고 싶다면 말 그대로 읽어야 합니다. 독서를 하기 위해 필요한 건 읽는 행위에 재미를 느끼는 것이고 읽는 행위에 재미를 느끼기 위해선 책에서 재미를 느껴야 한다는 단순하지만 어려운 독서의 순환에 조금은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독서의 재미를 알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 시작을 독려하고 싶습니다.
이 기획의 요점은 책을 읽어보자는 이야기가 되겠으나 그 접근 방법에서 사람들이 반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작가님들께 첫 독서의 경험과 읽는 데에서 오는 즐거움을 곁들여 책을 추천해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글이라는 질료로 창작을 하고 있고 엄청난 양의 글들을 읽어오신 독서 고수님들에게 말입니다.
우선 제 이야길 해볼까 합니다. 어릴 적부터 집에 책이 가득했습니다. 거실부터 방 곳곳 책 없는 곳이 없었어요. 친구들은 저희 집을 도서관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엄마는 책을 많이 접할 수 있게 도와주셨고 저는 어린 마음에 단순히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명작, 미술, 위인전, 과학, 경제, 각종 소설 등, 읽고 싶어서 읽었던 건 아니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여러 분야의 책을 접하면서 호기심을 갖게 됐고, 얕지만 다양한 이야기들을 제 안에 담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발적인 읽기가 아니었던 탓일까요. 제 독서는 본격 청소년기에 들어서며 정체기를 맞이했습니다. 독서의 필요성과 재미를 전혀 느끼지 못했어요. 책을 읽지 않아도 일상생활에 문제가 없었고 청소년기 많은 학생들이 그렇듯 SNS와 친구에 빠져 책이라는 건 일상에서 잊힌 지 오래였습니다. 읽는 것이라고는 국어 책에 나오는 짧은 시와 잘린 소설들뿐이었죠.
한창 페이스북을 할 때였습니다. 우연히 책 소개하는 페이지를 발견하고 오래 잊고 지내던 책이라는 걸 떠올리게 됐어요.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영상 속 사람들의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특별해 보였습니다. 동시에 책을 읽고 싶다는 욕구가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문제집을 사겠다는 명목으로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 소설 책 한 권을 주문했습니다. 온전히 자의로 책을 산 건 처음이었습니다. 데드맨, 고등학생 소녀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히 흥미로운 제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책을 펴자마자 단숨에 읽어 내려갔습니다. 미스터리하고 자극적이라고 할 수 있을 법한 이야기를 읽으며 제삼자가 돼 소설 공간 속에 들어와 있는 듯했습니다. 책의 재미를 알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작고 예민하게 글을 받아들이고 감정을 느끼다 보니 어느새 아주 커다란 무언가가 제 안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커다란 무언가는 즐거움이라는 명목으로 제 안에 꿈틀대기 시작했고 저는 즐거움을 마다할 필요도 그럴 힘도 없었습니다. 재미로 시작한 독서는 제 안에서 점차 넓어지고 다양해졌습니다. 문장이 주는 위로가, 슬픔이 독서라는 즐거움으로 느껴지는 날들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