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 없는 길을 걷는 이들을 방랑자라 한다. 지금의 사람들을 '디지털 노마드'라 지칭할 때 '노마드'는 유목민이나 순례자보다 방랑자라는 말에 더 어울리는 듯하다. 비옥한 초지와 물을 찾아 이동하면서 살아가는 유목민이나 성지를 향해 가는 순례자처럼 어떤 목적지나 길을 찾는 방법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겐 길이 필요하지 않다.

 

그들은 길 대신 소리를 따라간다. 소리는 어딘가에 머물지 않기에 그들은 정처 없이 떠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은 길을 잃은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길이 필요 없는 이들은 결코 길 잃지 않는다.

 

이 시대는 다양한 발원지에서 흘러나온 원음을 알 수 없는 다양한 소리가 섞여드는 시대다. 사람들은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목소리를 낸다. 디지털 구술성은 지금의 시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부분이다.

 

티모시 테일러가 지적1)했듯, 소리를 디지털화한다는 것은 소리의 개념을 01의 비트 조합으로 확장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운 소리들은 녹음될 수 있고 인터넷을 통해 더 쉽게 전파되며 여러 양상으로 진화되고 변이된다. 이러한 변화는 소리를 듣고 느끼고 다른 이에게 전달하는 방식을 바꾼다. 심지어 이것은 문자에도 영향을 미친다.

 

CMC(Computermediated communication, 컴퓨터를 기반으로 한 의사소통)의 특징은 문자와 음성을 결합된 형태로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문자메시지, 메신저를 통해 채팅으로 대화하는 것이 일상화된 세상에서 음성과 문자의 경계는 희미해진다.

 

또한 텔레비전, 유튜브 SNS기반 개인방송 플랫폼 등에서 '마음의 소리'를 자막 형태로 제공하는 형태가 매우 대중화되었다. '생각조차 문자화되고 그것이 다시 음성으로 전환되어 전달되는 것이다. 마음속의 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자막이라는 텍스트와 함께 제공되고 시청자들에게 '상상된 음성을 들리게 하거나 혹은 독백하는 음성을 삽입하기도 한다. 글자의 음성화는 청각 지각을 기반으로 하는 구술성이 높아지는 데 기여했다. 최근 다양하게 등장한 오디오북의 약진도 구술성이 높아진 이 시대의 문화적 특성을 반영한다. 독서가 TTS(Text to Speech, 인공지능 음성 기술)를 활용하는 방식도 다양해지고 있다. 이제는 귀로 들으면서 텍스트를 바로 확인하고, 말을 녹음하여 텍스트로 자동 변환할 수 있으며 소셜 미디어에서 독서체험을 동시적으로 공유하는 것도 가능하다.

 

월터. J. 옹에 의하면 구술은 소리, 즉 음성에 의존하는 현상이며, 발화되지 않은 마음속의 생각까지도 음성과 관련을 맺는다고 보았다.3) 최근 미디어에 나타나는 '문자화된 마음의 소리'는 글말보다 입말적 성격이 강하며, 구술성이 높아진 현재의 상황을 보여준다.

 

최근의 시들에서도 시적 주체가 실제로 발화하지 않은 말을 독자가 듣게하는 방식이 자주 발견된다. 이소호의 시를 예로 들 수 있는데, 캣콜링(민음사, 2018)을 포함한 이소호의 시집들에는 마음속의 생각을 독자들이 생생한 목소리로 듣게 하는 시가 많다. "돌탑을 쌓으며 쌍욕섞인 소원을 빌었다"(‘조우’)에서 "쌍욕 섞인 소원은 시 속 장면에서는 혼자 마음속으로 빈 소원인 것으로 나오지만 그 '마음의 소리'내가 먼저 더 뾰족한 돌을 발견했다면 / 내가 먼저 네 머리를 찍어 죽였겠지"라는 문장으로 쓰여 있어, 시 속의 상대방은 들을 수 없지만 독자들은 들을 수 있다.

 

누워있는 경진에서도 '현재의 경진'이 하는 말은 그 장면 속의 '과거의 경진'에게 전달되지 않지만 독자들에게는 생생하게 들린다. 캣콜링의 많은 시들은 전체 혹은 부분적으로 대화체를 사용하고 있으며, 구술성이 강하게 나타난다.

 

옹의 구분에 따르면 구술성은 제1구술성, 2구술성으로 세분화된다. 문자가 없어 구술언어만 존재하는 시기가 제1구술성 시기이고 텔레비전, 전화, 라디오 등의 미디어가 등장하며 제2구술성이 나타난다. 2구술성 시기에서부터 구술과 문자의 결합이 시작된다. 이동후는 이에 덧붙여 제3구술성의 등장을 논했는데, 음성과 이미지, 영상, 텍스트가 결합되는 멀티미디어 텍스트가 등장하며 제2구술성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전혀 다른 방식의 커뮤니케이션을 보여주기 시작했다고 보았다.4)

 

지금 시대의 디지털 방랑자들은 제3구술성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구술성과 문자성이 혼합된 형태라는 점에서 제2구술성과 유사하지만 구술성이 더 높아지고 새로운 감각을 요하게 되었다. 지금 시대에 문자와 이미지는 유사한 층위의 정보체계로서 작동하며 어느 쪽이든 쉽게 음성과 결합된다. 소리는 어디에나 스며들어 혼합될 수 있기에 선호된다.

 

청각적 커뮤니케이션 상황에서 사람들은 문자로 전달되는 소통 상황보다 더 적극적인 참여자가 될 수 있다. 지금의 아이들은 태생적으로 디지털을 경험하며 상호작용을 통한 작용-반작용이 체화되어 있고, 소셜 인게이지먼트 지수의 상승은 사회적 욕망이 되었다.

 

구술적 커뮤니케이션은 화자와 청자의 실제적이고 인간적인 소통을 전제하며 상대의 말의 내적 깊이를 느낄 수 있게 한다. 그래서 구술을 통한 의사소통은 문자를 통한 의사소통보다 더 관계적이다. 시각성에 의존하게 되면 내부를 감지하는 능력이 감소되기 마련이다. 우리가 종종 내부가 비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두드려보곤 하는 것처럼 소리를 통하면 보이지 않는 안쪽도 감지할 수 있다.

 

이 시대의 방랑자들은 무수한 소리들을 듣고 소리를 찾아 떠돈다. 그 안에서 자신의 소리를 내고 그 소리가 다른 사람에게 닿아 공명하기를 기다리며 귀를 기울인다. 소리들은 그렇게 연결되고, 한 소리가 다른 소리에 참여한다.

 

이런 움직임은 노드에서 다른 노드로 데이터가 분주하게 이동하는 인터넷의 네트워크성과 하이퍼텍스트성을 떠올리게 한다. 폴리의 지적처럼, "구술 전통은 적극적인 참여를 얻고 지지하는 개방된 소스의 온라인 미디어와 유사"(Foley, 2008)한 것이다. 일찍이 이원 시인은 무수한 하이퍼텍스트로 가득한 웹을 '사막'에 비유하여 끝없이 사라지는 사막의 길로 묘사하였다. 이원의 시 나는 클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속의 시적 화자는 인터넷 공간 검색 엔진 안에 나에 대한 검색 결과로 나타난 수많은 사이트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자꾸만 '클릭'을 거듭한다. 그 과정에서 화자의 귀에 들리는 것은 쌍봉낙타의 발굽 소리이다. 이러한 길은 '길 없음'과 다르지 않다. 찾을수록 미궁에 빠지기 때문이다. 계속 모래바람이 불어 지형이 바뀌는 사막처럼, 길이 살아있는 것처럼 계속 모습을 바꾸며 혼란시킨다. 길이 없는 곳에서 그를 인도하는 것은 '발굽소리'.

 

시는 인쇄된 문자로 전달되는 텍스트이면서 또한 소리의 특성이 매우 중요한 장르다. 권혁웅은 시는 의미-소리를 동시에 품은 동심원적 중심을 갖는다고 했다. "한 편의 시는 일종의 의미론적-음운적 장(field)들로 이루어져 있”5)다는 것이다. 리듬과 소리 자체의 울림은 시의 중요한 요소이다. 그 시대의 사람들의 듣는 방식이 바뀌게 되면 시를 향유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생긴다. 지금, 사람들은 어떤 소리에 이끌리고 있으며 소리는 어떤 입구를 만들어주고 있을까?

 

2. 입구

 

소리는 되돌릴 수 없는 필연적인 방식으로 발화되고 전달된다. 구술성은 순간에 집중하고 역동적인 특성을 갖기 때문에, 옹의 표현처럼 인간을 실재한 가운데 그리고 동시성 속에 놓이게 한다. 소리는 현장성을 드러낸다. 소리로 전달되는 말은 '지금-여기'의 경험을 빠르게 전달하는 데 더 용이하다.

 

불분명함과 모호함이 지금 시의 특징 중 하나인데, 요즘 시의 구술성은 임시성과 순간성을 통해 이 시대의 성격을 잘 드러내준다. 모호하고 가변적이기 때문에 끝없이 계속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구술성이 극단적으로 높아진 경우,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담아내기도 한다. 어떤 시는 혼선된 전화 속 목소리, 주파수가 맞지 않는 라디오의 음성처럼 식별할 수 없고, 어떤 시는 마치 비명처럼 들린다.

 

백은선 시집 가능세계”(문학과지성사, 2018)의 수록 시편들은 대부분 장시이며, 긴 중얼거림이 계속되는 듯한 시적 발화를 보여준다. 호흡이 아주 길고,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어려운 일들’)처럼 접속사를 여러 번 넣기도 하며 반복이 잦다. 담화 상황에서나 있을 법한 장황함, 망설임, 더듬거림이 그대로 드러난다. 즉흥적인 전개를 보이고, 문장들도 오래 새겨지기보다는 휘발되는 특징을 가진다. 이런 특성들은 문자성보다는 구술성에 가깝다. “세월호 이후 처음 등장한 세대의 첫 발화를 목격하는 것 같다는 김소연의 말처럼 파탄의 세상을 경험한 후 히스테리적 언어가 쏟아져 나오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히시모든 질문과 대답이 사라질 때 울었어. 내 안에서 온 세계가 얼어붙었어"라고 말한다. 흥미롭게도 이 시집에는 질문과 대답이라는 같은 제목을 가진 시 두 편이 실려 있기도 하다. 질문과 대답이 사라진 것을 절망으로 인식한다는 것은, 질문과 대답이 끊임없이 가능해야한다는 생각을 반영한다. 질문과 대답이 끝나지 않듯, 말은 사라지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레이아웃과 페이지의 한계가 있는 인쇄매체 속 문자와는 달리 ''은 어떤 구획도 없기에 계속될 수 있는 것이다. 조연정은 "멈추지 않고 터져 나오는 어떤 말, 그 자체가 시인지도 모른다"고 썼다.

 

최근작에서도 백은선의 시의 이러한 특성은 계속 나타나고 있다. “현대시”(2022, 4월호) 특집에 실린 5편의 신작시들은 백은선의 다음 시집을 예고하고 있어 흥미롭게 읽힌다. “나의 노래는 0과 숲으로 가득해서 / 시작도 끝도 없이 반복되는 것”(‘평균대 위의 천사’)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 화자에게서 , 0, , 0, , 0, , 0”이라는 '노래'"펑펑 / 쏟아지는" 것이다. 자신의 소리가 세상을 향해 쏟아질 뿐 아니라 세상의 소리도 끝없이 화자에게 흘러든다. “재잘재잘 해변을 구르는 조약돌처럼 / 꺄르르 수런거리는 한밤의 나무들처럼 /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비신비’) 소리들이다. 시 속의 등장인물들은 대화를 하고 있다. ‘진짜 괴물에서 모여 앉은 사람들은 각자 생각하는 괴물에 대해 이야기한다. "괴물은 말야......”라고 누군가 이야기하면 "다음"이라고 하고 또 다른 이가 "괴물은 말야......"라고 말을 시작한다. "다음 // 괴물은 말야..... / 괴물은 말야......”라고 마치 구전되듯 이야기는 계속된다. "빛과 소리는 끝이 없고 단지 이동할 뿐이기 때문에 / 시작한 것이 계속되었다 / 밤은 길고 밤은 영원해서 /그치지 않았다"라고 시인은 쓴다.

 

구술적 시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하나의 예가 최재원 시집 나랑 하고시픈게 뭐에여?”(민음사,2021). 제목부터가 구어이며, 소리 나는 대로 쓴 시픈이나 인터넷 말투인 "뭐에여?"가 눈에 띈다. 디지털 구술성은 글쓰기에서 자주 드러나는데, 특히 인터넷 글쓰기에서는 말하기에서 주로 표현되는 형태를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다.

 

옹이 이야기한 제2구술성에서는 제1의 구술성과 달리 서사적인 활자문화에 기반을 두고 있어 문자성의 개인화된 내향성이나 분석적 사고가 남아 있으며 구술문화의 특징을 회복하면서도 기존 인쇄문화의 문자성의 영향을 여전히 받고 있음을 보여주었다.7) 그러나 제3구술성 시대로 접어들면, 소리, 영상, 텍스트가 다양하게 결합된 멀티미디어 텍스트가 등장한다. 인터넷은 텍스트와 함께 많은 음성 신호와 시각 자극을 제공한다. 문자성과 구술성이 동시에 나타나며 다양한 방식으로 수용된다. 이동후의 지적처럼, 문자 문화에 기반을 두고 문자미디어의 콘텐츠나 수용방식이 잔존했던 제2구술성 시대와 달리, 시각적 이미지, 오디오가 중요한 플랫폼에서 문자의 매개 없이도 콘텐츠를 온라인 공간에서 공유하고 스스로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미디어는 다양하게 조합되거나 융합되어 혼합 형태가 될 수 있고, 사람들은 이를 통해 트랜스미디어적 경험을 일상화한다. 커뮤니케이션 역시 다양한 표현 방식과 가변적 수용의 양상을 보인다. 또한, 텍스트가 음성 변환되는 시대에 접어들며 쓰는 동시에 발화되고, 말하는 동시에 쓰여지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텍스트를 읽는 동시에 쓰는 활동에 참여할 수 있고, 이러한 활동이 신속하게 수용되어 반응을 이끌어낸다 읽고 쓰고, 대화하는 것이 거의 동시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맥락의 다형적 커뮤니케이션 상황 속에서 수용 역시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감각은 개별적인 것이 된다. 자연히 소리에 대한 감각은 달라진다.

 

최재원의 나랑 하고 시픈게 뭐에여?”에는 매우 많은 대화체가 나오고, '소리'에 대한 예민한 감각이 두드러진다. 소리는 자기의 입술에서 새어나오는 소리를 물처럼 물컹물컹한 올챙이들이라고 묘사한다. 소리는 물질적 존재성을 가지며 감각된다. 쏟아지는 올챙이 떼처럼 무수하게 움직이는 소리들은 운동성을 가지고 "하수구 구멍 속으로, 배로 싱크를 기어" 계속 어디론가 가지만, 특별히 향하는 바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와 나 사이에 놓인 물로 된 모양"이라는 표현처럼 관계와 그 사이의 소통은 형태가 불분명하고, 물처럼 모양을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이다. "나를 가리고/숨을 곳 없는 소리의 공격 속에서 화자는 "나를 끝까지 버리지 마소리"라고 말한다.

 

뻐등뻐등 울부짖는”(‘소리’), "그서석버서석콰직쿠지직끼약꽥콰지지직"(‘FULL VOLUME’)과 같이 일반적이지 않은 의성어를 사용하는 것은 소리의 개별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최재원의 시에서는 대화를 사용할 때도 "감독님~~~", “~ 에에”(‘소리’)와 같이 인터넷 글쓰기에서 자주 사용되는 물결무늬를 넣어 소리의 속도를 표현한다든지, “두비두밥두비두밥두비두밥 뛰는 심장”(‘은색 그물인 달’)처럼 박자를 넣는다든지 하는 새로운 소리 감각을 보여준다.

 

유리눈알에서는 "웨스트민스터의 종소리", "스피커의 찢어지는 전자음", "시린 땅에 흩어지는 발소리", "아 늦었어 씨 빨리 뛰어"라는 목소리가 동시에 섞이며 폭발하며 파고든다”. 마치 독자들이 그 자리에서, “학교 가는 길을 함께 걸으며 그 어지러운 소리들을 듣고 있는 듯하다. 아파트 공사현장에서는 "스각 스각, 텅 끼익, . , 고함소리, , , 삐아, 삐아, 솨아, 쿠아앙, 쿠아아앙, , 탕 소리"(‘안녕, 잘 지냈어’)가 터져 나온다. 이러한 시도들은 이 시들에 강렬한 현장성을 불어넣는다.

 

시케이다 소나타"가슴 속에서 울리는 쇠의 트라이앵글' 소리를 “()땡 둥땡 ()으로 표현하고 "둥 둥 둥 둥 둥" “()()()” 울리는 소리를 독자도 함께 듣도록 한다. “그대여는 소리를 표현하기 위해 좀 더 파격적인 방법을 동원한다. 최재원은 “(무음)”(‘은색 격자의 둥근 달’)과 같이 무음 자체를 시 속에 삽입하여 침묵을 소리 장치로 활용하곤 한다.

 

그대여에서는 ''에게 여러 가지 말을 늘어놓던 화자가 "아직까지 걸어가는 거야 // 너의 자락에서"라는 말로 시를 끝맺음한다. 여기에서 시가 끝났나 싶지만 그 뒷장에 달려가라고 하는 단어가 등장한다. 단 하나의 단어뿐이고, 나머지는 온통 흰 여백이다. 그리고 그 다음페이지까지 긴 여백을 넘어가면, 페이지 중간쯤에 다시 "달려가"라는 말이 나온다. "달려""달려가" 사이에 있는 긴 여백은 그 자체가 시의 일부이다. 화자의 긴 대화가 이어지던 시에 갑작스러운 여백이 생기니, 마치 달려가는 바쁜 발소리와 긴 침묵을 듣는 것처럼 느껴지는 효과가 있다. 침묵도 하나의 소리장치가 되어, 우리는 그 고요에 귀 기울이게 된다. 시는 이렇게 소리의 입구를 열어 보여주며, 그 장면 속으로 우리를 들어가게 한다.

 

3. 출구

 

우리가 어떤 소리를 들을 때는 집중해야 제대로 들을 수 있다. 우리는 청각지각에 집중할 때 커뮤니케이션의 실제 상황에 더욱 몰입하게 된다. 담화를 나누는 상대방은 청각 세계에서 감각과 존재의 중심이 되며, 그렇기에 구술성은 문자성보다 관계적이다.

 

옹은 구술성과 문자성이 결합되는 시기에 제1구술성 시기의 집단의식이 다시 생성될 수 있음에 주목했다. 청각적 커뮤니케이션 상황에서 사람들은 문자로 전달될 때보다 더 적극적인 참여자가 될 수 있다. 이 시대의 아이들은 상호작용을 통한 작용-반작용을 체화시키며 자란다.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소통의 욕구는 무엇보다 높다.

 

상호작용이 가능하려면 상대가 있어야 한다. 구술성은 실존적으로 서로의 내면을 결합시키고 공유할 수 있게8) 하는 데 더 용이하다. 내면을 이어주고 시간과 기억을 공유하게 하는 구술적 커뮤니케이션은 관계적 소통을 중시한다. 그리고 소리는 다양하기 때문에 각자 다른 음성과 리듬, 어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서로의 말을 알아듣기 위해 더 가까이 다가서게 된다.

 

구두로 전달되는 구어는 영구적이지 못하고 정확을 기할 수 없기 때문에 완전한 소통에 제한을 갖게 된다. 그런데 옹이 지적했다시피, 이런 제한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객관성, 정량화, 비인간성" 등을 취해야 한다.9) 그러므로 불완전성과 휘발되어 버릴 위험을 감수하면서, 구술적 커뮤니케이션은 인간성을 보존한다.

 

물론 인쇄된 시는 문자로 쓰여지기 때문에, 문자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구술성이 강한 시는 문자문화가 추구하는 논리성, 명확성, 영구성 대신 불분명함과 휘발성을 지향한다. 구술성을 강화한 시들은 화자의 감정과 체험을 좀 더 생생하게 전달하면서, 삶의 상황을 전달하는 데 좀 더 용이해진다. 문자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지워지기 쉬운 상대방의 소리를 복원해 지금 여기에 현존하게 하는 읽기 체험을 제공한다.

 

옹의 말처럼, 글과 인쇄술은 시각적으로 언어를 지면에 고정시켰고 이러한 시각적 고정으로 인해 말이 발화가 이루어지는 맥락에서 분리되게 했다.(Ong 1977) 문자문화는 맥락에 영향을 받지 않으며 안정적으로 전달되게하기 위해 "저자와 독자 아는 자와 아는 것, 메시지와 메시지를 전달하는 행위, 낱말과 소리, 소리와 시각글과 해석 등을 분리"(Ong, 1982)시켰고 사람들 간의 거리를 만들었다. 이렇게 될 경우 구술문화에서 화자와 함께 했던 청자는 저자의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허구화된 독자가 된다.

 

2구술성은 이런 거리를 좁혔고, 3구술성은 이제 ''을 시각적 공간에도, 청각적 공간에도 가두어두지 않는다. 그것은 끊임없이 입구를 열고, 우리가 가두어지려고 하면 다시 출구를 만든다.

 

독자와 저자 간의 관계 뿐 아니라, 문학에서 주체와 객체의 관계도 달라지고 있다. 주체와 객체의 관계에 있어서도 이제 '재현하는 주체''재현되는 대상'이라는 위계적 관계가 아닌 다양한 얽힘과 애착의 관계를 표상”10)하는 것이 문학이라고 보는 관점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고 있다. 수많은 프로슈머들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텍스트는 무수히 많은 의미를 만드는 자율성을 가진 존재가 된다.

 

강혜빈 시집 밤의 팔레트”(문학과지성사, 2020)는 나의 경계를 넘어 흘러나가는 ''라는 유동적인 실체와 다른 객체가 만나는 장면을 다양한 상상력을 통해 보여주었다. 이 시집 속에 나타나는 낯설고 이질적인 정서는 나의 세계를 규정하는 경계를 넘어 다른 세계로 향하는 욕망이자 인식의 지평을 확장하고자 하는 움직임이다.

 

강혜빈의 시에서 출몰하는 외국어 단어들은 번역되지 않은 채 사용된다. “오모homo를 발음하면 옹on이 되는”(‘오모를 발음하면 용이 되는’)이라는 제목의 시는 제목부터 언어를 모르는 사람에게 의도적인 한계를 안게 한다. 뜻보다 소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처럼, "숫자 0을 한글로 / on on 거꾸로 / 20살을 소리 내어 읽어보세요"라고 요구한다. 숫자를 한글로 바꾸거나, ‘on on’ 혹은 ‘20을 읽는 방식은 요구하는 사람의 의도와 어긋나게 될 수 있다. '20'이십 살혹은 '스무 살'로 읽을 수 있고 'on on''옹옹' 혹은 '온온' 등으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소리와 시각은 서로 얽혀있고, 읽는 사람은 참여를 요청받는다. 시인은 읽는 사람이 자기만의 맥락을 가지고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끈다.

 

하이퍼텍스트는 텍스트 테크놀로지에 전면적인 변화를 야기했다. 사실 문자성조차 지금의 시대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문자로 쓰여진 글도 지면에 고정되기보다는 자유롭게 배열되고 조직될 수 있으며 M. 하임이 말한 '하이퍼 점프'가 다양한 방식으로 가능하게 되었다. 이는 전통적인 문자문화의 논리성을 위배하는 것이다. 박명진이 지적한 것처럼, 영상언어는 기본적으로 구어적 논리를 근본적으로 지니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에서 영상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영상언어가 문어양식에 영향을 주고 구술성이 문자성에 흡수되어 변형이 일어난다. 이제 ''는 지면을 매개하지 않고도 독자를 만나고 있다. 구독서비스를 기반으로 하는 오디오북의 인기가 높아질 뿐 아니라 팟캐스트 유튜브 브이로그 등을 통해 독자를 찾아간다. 다양한 곳에서 낭독회 등의 행사를 통해 시인을 만날 수 있고 문학장의 소통의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코로나19라는 재난상황을 맞아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한 발화는 더욱 확대되고 있다. 문학의 입지가 협소해졌다고 하지만, 이 시대의 시는 사실 더 넓은 곳으로 확장되고 있다. 글을 쓰는 이들도 서로 더 쉽게 만나고 함께 할 수 있다.

 

이 사회가 많은 사람들을 한계로 몰아가고 있고, 파편화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주어진 사회의 기존 환경 안에서 삶을 변화시키기 어렵다고 느끼는 한계 상태의 사람들이 더 크고 사회 구조적인 상황보다는 개별적인 상황으로 눈을 돌릴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부르기뇽(E. Bourguignon)의 인류학적 관찰을 떠올릴 수도 있고, 이를 바탕으로 요즘의 사람들이 개인적이며 비정치적이고 탈사회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과연 그럴까? 나는 의문이 생긴다. 지금의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관계적이고, 서로 연결될 수 있는 무수한 연결망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이 세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 어떤 시대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고, 능동적이며 매일 엄청나게 쏟아지는 정보 속에 들어 있는 이 세계의 다양한 소리 관심이 있다.

 

M. 마페졸리는 새로운 시대의 공동체에 주목하면서 새로운 부족들의 정신적 측면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그들이 보여주는 새로운 정신적 지향, 영성적인 특성에 주목했다.

 

김준오의 표현처럼 일상생활에의 집착과 그 정밀묘사는 삶의 본질을 외면하는 트리얼리즘으로 매도되어 왔”11)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의 일상은 유폐된 자아의 일상이 아니라 무수한 소리들이 들끓고 수많은 연결망들 속에서 살아가는 일상이다. 구술성이 높아진다는 것은 문자성만으로 온전히 포괄하기 힘든 삶의 진실을 담아내기 위한 것일 수 있다.

 

현대적 개인은 일관적이지도 불변적이지도 않은 특이한 존재로, 다원적이고 다변적인 관계 속에 자리하고 있다. 관측과 예상이 가능한 지속적이고 단일한 주체라는 개념도 더 이상 기능하지 않는 현실이다.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는 복잡성이 특징이며, 멀티감각을 요구한다.

 

구술성과 문자성이 서로 얽혀있으면서 생성적이고 상호적인 커뮤니케이션을 보여주고, 파편적인 소리들을 담아내며 순간성을 더 생생하게 담아내는 최근의 시들은 다중적이고 하이브리드적인 현대의 경험들을 반영한다. 오늘날의 일상성은 오히려 더 절실한 현실감을 준다.

 

한계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에게서 멈추지 않고 터져 나오는 소리들은 세계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하나의 절박한 방식일 수 있다. 구술성은 '지금 여기'의 소리에 집중한다. 물론 현재성과 역동성을 얻는다는 것은 동시에 불안을 야기하기도 한다. 확실히 구술적인 시들은 혼돈과 불안을 숨기지 않는다. 다만 그 불안을 나누려 한다.

 

마페졸리가 지적한 것처럼, 이제 사람들은 나아가는(progressa) 것보다는 들어가기(ingressa)를 더 원한다. 이는 단지 함께 있다는 즐거움 속에 들어가기 순간의 강렬함 속에 들어가기 있는 그대로 세상의 쾌락 속에 들어가기”13)이다. 그것은 기존 질서에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새로운 전위이며 너무나 합리화된 사회적인 것으로 인해 발생한 존재론적 쇠약에 맞서공감의 사회성을 요청한다. 감정과 정서에 집중하고 그것을 나누며 상상력과 통찰, 직관의 중요성을 다시 떠올리자는 것이다. 지금의 시는 길이 없는 곳에서 계속해서 입구를 열고, 우리가 어딘가에 갇히게 되면 다시 출구를 만든다.

 

파편화된 존재들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무수하게 흩어진 조각들에 불과하지만 먼지는 먼지의 연대기를 만들고 / 물방울은 물방울의 자매를 만들"(강혜빈, ‘무지개가 나타났다’) 수 있다는 믿음이 남아 있는 한 입구는 어디에서든 찾을 수 있다. 작은 방랑자들인, 먼지와 물방울은 어디에든 내려앉고, 흘러갈 수 있다. 그들은 함께 하는 즐거움 속으로 들어갈 수있지만, 어딘가 의심스러운 '우리'라는 이름 아래 포섭되어 묶이지는 않는다. 그들은 모두 다른 존재이고, 자기만의 출구를 찾아 언제든 떠날 수있다. "물방울들은 똑같아 보이지만 모두 다릅니다 / 그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십시오"라는 시인의 말처럼, 이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