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의 세계관을 통한 '한국적인 것'의 탐색
1. K- 접두사의 힘, 그리고 욕망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미증유의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는 많은 새로운 것을 알게 되거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에 대해서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감염병의 위력, 인류 공동체의 위기, 방역에 따른 통제와 개인의 자유, 일상의 소중함.... 여기에 더해 내가 태어나고 자란 이곳, 대한민국이 소위 '선진국'일 수 있겠다는 예전에는 전혀 하지 못했던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었다. 위기의 상황에서의 국가 시스템은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국민들은 어떻게 참여하고 대처하는지 등이 인식의 대상이 되었다. 이는 단지 한국의 언론을 통해서만 아니라, 해외 유명 언론사와 방송사를 통해, 각종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내가 속한 한국이 세계 무대의 주요 등장인물이 된 것이다.
우리가 세계의 무대에 등장한 이후, 방역 시스템이 잘 구축되었다는 측면뿐 아니라, 이후에는 한국과 관련된 많은 것들이 세계에서 인정받는 ‘우수한 것’이라고 강변하는 메시지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이른바 ‘K-’ 접두사가 붙은 일련의 시리즈가 일상적으로 통용되기에 이르렀다. ‘K-팝’, ‘K-드라마’, ‘K-무비’, ‘K-푸드’, ‘K-패션’ 등 해외에서 큰 관심을 끌고 유행하며 소비되는 각종 한국의 문화콘텐츠를 이제는 ‘K-컬처’로 포괄해서 명명하게 된 것이다.
1990년대 한국의 문화 상품(정확히 대중문화)이 내수 시장용이 아니라 해외 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부각되고, 한류(韓流; Korean Wave)라는 신조어가 탄생하고, 드라마나 대중가요가 그 주역을 담당한 시기가 있었다. 그렇지만 드라마나 대중가요로 한정된 대중문화의 영역을 넘어서, 이제는 군것질용 간식에서 화장법, 한국 시골의 명소나 맛집 등 생활 전반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문화가 대상화되고 콘텐츠가 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이제 ‘K-컬처’로 명명되어 종래의 '한류'와도 구별되고, '한국문화'와도 구별되는 외연을 지시하는 용어가 되었다. 급기야 최근 한 대학에서 '국학'도 '한국학도 아닌, ‘K-학’ 전공 교수 초빙 공고가 나기도 하였다.
이러한 추이는 ‘K-’ 접두사가 갖는 힘, 해외에서 통하고 먹히는 한국과 관련된 문화나 문화콘텐츠의 힘과 영향력을 지시하고 있다. 동시에 그러한 힘과 영향력을 갖고자 하는 욕망, 그것을 키우고자 하는 우리의 새로운 욕망까지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2. 새로운 화두, K-컬처'의 향방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것보다 한국문화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관심은 더 크고, 한국의 문화콘텐츠가 세계적으로 흥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어쨌든 우리는 새로운 화두를 접하고 있다. 문화를 간단히 정의하면 '생활 방식'이라 할 수 있는데, 우리는 딱히 우리 자신의 생활 방식에 대해 그다지 고민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세계 속의 한국문화, 그것도 콘텐츠화되고 붐을 일으키는 우리의 문화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할 계기를 바깥에서부터 요청받고 있다. 예전에 한류 붐이 처음 일고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한국의 문화콘텐츠를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를 고민했다면, 이제는 훨씬 더 복잡하고 진지한 고민이 요구된다. K-컬처라는 용어에 내포된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서, 산업적인 것이나 경제적인 것뿐 아니라 그보다 더 큰 가치나 목표를 고려해야 한다. 요컨대 K-컬처의 번성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심오한 질문에는 오히려 항상 모범 답안이 있기 마련이다. '한국적인 것'에 주목해야 한다. 보편적이면서 개성적인, 세계에 통할 만한 우리의 것을 찾고 그것을 바탕으로 개발하고 창조해야 한다. 한국학연구의 대가로 꼽히는 마크 피터슨(Mark Peterson)은 한 인터뷰에서 "한국의 문화 발전을 위해서는 한마디로 "과거를 붙들라."라고 말한다.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을 갖고 "지금을 만든 옛것을 지키고 기억하라."라고 주문한다.1) 이 서양인 한국학자의 주문에 대한 옳고 그름이나 그 타당성의 정도를 따지기 전에, 이미 우리는 항상 이러한 강박에 빠져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전통의 창조적 계승과 문화 발전!’
최근 ‘이날치 밴드’의 성공으로 인해 전통 음악이 현대의 문화 산업에서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고 기대감을 높였다. 조선 시대의 좀비를 등장시킨 '킹덤' 같은 사극이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를 상대로 높은 관심을 끌기도 하였다. 심지어 '오징어 게임'이 인기가 있으니 그 속에 등장하는 민속놀이가 엄청난 문화 자산으로 재조명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오래전부터 보아왔다. 조금만 성공하고 인기를 끌면 그 원인이 '우리 전통문화의 힘'이라는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혼돈한 논리와 강변을 말이다. 과거 한류의 주역이었던 '대장금'이 큰 성공을 거두자 단순 소재적 차원의 전통적인 것에 주목하는 수준을 넘어 과감한 논지가 펼쳐지기도 하였다. 우리 역사, 우리 음식 문화, 우리 의술 등 우리의 전통에서 현대의 스토리텔링의 참신한 원천 자료가 있다고 선전하였다. 나아가 충·효·열의 유교적 가치관, 가족 중심주의, 호혜적 평등사상 등이 문화 강국으로 가기 위해 개발해야 할 한국의 고유한 전통문화로 범주화되기에 이르렀다.
문화라는 것이 워낙 다양하고, 여러 층위에서 존재하며, 복합적이다 보니 어떤 현상에 대한 분석이나 개발 방안을 논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작업이다. 어쨌든 확실한 것은 소재나 제재 차원은 지나치게 단순하며, 사상이나 이념은 지나치게 추상적이어서 쉽게 포착될 수 없다. 우리가 인식하고, 보존하고, 개발하고, 발전시켜야 할 한국적인 것이 있다면, 어떤 대상을 통해 어떤 방식으로 구체화시킬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고 체계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3. '한국적인 것'을 찾기 위해 고전문학' 다시 보기
'한국적인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을 찾기 위해서, 우리가 우리의 ‘고전문학’을 다시 보는 것은 상당히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흔히‘고전(古典)’은, 현재를 기준으로 특정 시간 이전에 형성되고 그만큼의 시간적 부피를 간직한, 이른바 전통적인 것을 의미한다. 고전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오래되어 낡은 것이 아니라, 오래되었는데도 죽지 않은 것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그리스·로마인들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을 어린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크로노스)로 묘사했다.(루벤스, 고야의 작품이 유명하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자식조차 무참히 살육하는 존재, 이는 시간을 의인화한 것으로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존재를 나타낸다. 사투르누스의 그리스어 표기인 크로노스가시간의 어원인 것은 이러한 시간의 힘과 성격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이 창조해 온 문학, 그중 무시무시한 시간의 압력을 버텨내고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을 '고전문학'이라고 칭할 수 있는 것이다.
과거에 생성된 것은 응당 당시 과거의 모습을 갖고 있을 것이다. 이런 것들 중에서 현재까지 읽히고 영향력을 미친다면, 단순히 ‘과거[古)’의 의미를 벗어나 ‘고전(古典)’의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시간의 부피를 가진 것. 시간의 압력을 버텨낸 것. 그래야만 그것이 생명력 있는 문화로, 전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고전문학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 조선 시대 사대부의 삶과 사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대부 출신 작가가 자신과 같은 상층의 가문을 배경으로 벌어진 사건을 형상화한 소설을 보면 될 것이다. 혹은 그들이 쓴 시를 보고 그들의 유가적 이념 체계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일기나 잡문을 통해 그들의 일상사를 찾아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은 꼭 문학이 아닌 다른 자료들을 통해서도 가능하다. 이는 또한 과거에 쓰인 작품을 '고전문학'으로서가 아닌 ‘고문학’으로서 접근한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우리는 고전문학을 통해 현재의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것, 그리고 정보를 얻는 방식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다른 글쓰기 양식이 아닌 문학을 통해 형상화한 것, 예컨대 역사적 글쓰기가 아닌 문학적 글쓰기를 통해 형상화하고자 했던 것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주어진 실제의 현실 세계에 대한 대안적 세계나 반성적 세계인 것이며, 그러한 세계를 언어화한 텍스트가 오랜 세월 전승되어 현재에도 영향을 미친다면, 그 세계와 반응하고 교류하는 한국인의 보편적 인식 작용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랫동안 시간의 압력을 버티면서 전승해온 고전문학 중 어떤 것이 한국적인 것을 잘 응축하고 있을까? 문학을 통해 한국의 전통, 한국적인 것을 찾는 작업이 특정 시대의 특정계층의 문화를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면, 시간적 제약을 벗어난 지속성, 계층성을 벗어난 보편성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 가장 적합한 대상이 바로 우리의 옛이야기, '설화'이다.
4. 구술 전승되던 옛이야기의 가치
일반적으로 ‘설화’는 신화 · 전설 · 민담을 아우르는 구술 전승되는 이야기 문학 갈래를 칭한다. 좀 더 외연을 넓힐 경우, 신화 · 전설 · 민담뿐 아니라 문자로 기록되어 전승되는 야담류 혹은 근대 이전 비(非)소설류의 산문문학을 지칭하기도 한다. 기록되어 전하는 설화류는 작가 내지 기록자가 있는 기록물이라 하더라도, 어디에서 누군가에게서 들은 이야기이다. 이는 결국 1차적으로 구전되던 이야기를 이후에 기록한 것이다. 따라서 설화는 기록된 서사문학과 달리 그 원천이 구술 전승되어 온 서사문학이라고 볼 수 있다.2)
설화의 핵심은 ‘플롯-라이팅’이 아닌 '스토리텔링'으로 전해진 이야기라는 점이다. 기록된 이야기가 아닌 구전되는 이야기라 하여 설화를 상충이 아닌 민중의 문학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오해다. 이야기는 특정 계급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 ‘시가(詩歌)’는 특유의 리듬이나 압축된 형식에 의해서 그것을 즐기고 선호하는 집단이 다를 수 있다. 지역에 따라, 계층에 따라, 세대에 따라 유행하는 노래나 시는 엄연히 다르다. 이에 반해 이야기는 지역, 계층, 세대와 무관하게 재미있는 것이 선호된다. 그래서 할머니가 손자에게 들려줬던 이야기는 사대부 집안에서든 평민의 집안에서든 마찬가지였으며, 조선 시대에 재미있었던 이야기는 지금도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다.
설화는 기록문학과 달리 단순하고 명징하고 쉽다. 말로 소통하기 때문에 전달되기 쉬워야 하고, 잊히기 쉽기 때문에 기억되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익숙하고, 흥미로우며, 인상적이어야 한다. 이 같은 제약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생성되어 지금까지 전승되는 설화들은 시공간의 한계를 넘어 그 전승 집단의 정체성을 함유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사람들은 설화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과 문화적 DNA를 전승시켰다고 볼 수 있다. 20세기 후반까지 국문학의 영역에서, 문자 활동의 산물이 아니라며 문학으로서의 지위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던 설화가, 학문적 관심뿐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 주목받게 된 것은 바로 이러한 '원형성'과 '집단성'의 출처로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인간이 경험하고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 형식이 간결하고 다양한 각편이 존재한다는 점은 설화에 대한 활용도를 높인다. 오늘날 매체 환경의 변화 · 발전으로 인해, 기록문화와 차별되는 구술성(orality)이라는 재현 방식은 다양한 영역에서 커뮤니케이션의 새로운 방식으로 개발 · 결합이 가능해졌다.
이러한 설화의 특성과 가치는 21세기에 들어서 문화콘텐츠 스토리텔링과 같은 문화 산업 영역과 연계되어 다양한 해석과 활용 방안 개발을 이끌어내고 있다. 설화에 대한 학문·문화 · 산업 영역에서의 연구·개발은 한순간 유행이 아니라 현재에도 성행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설화를 통한 외국인 대상 한국문화 교육 영역까지 활성화되고 있다. 문자의 권위와 힘을 빌리지 않았음에도 사람들이 오랜 시간동안 기억하고, 전승하고, 재창조해온 설화는 그 전승 집단의 삶과 문화에 대한 사유 체계의 응집체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찾아야 할 한국의 전통문화, 21세기 K-컬처의 토대를 바로 이 설화를 통해 구체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찾아야 할 한국적인 것을 구하는 방안을 설화에 접근하면서 얻을 수 있지 않을까?
5. 이야기의 세계관을 통해 욕망과 사유 찾기
설화 텍스트를 통해 읽을 수 있는 한국인의 전통적인 사유 혹은 한국문화의 토대가 되는 것은 무엇일까? 아니 정확히 말해 그것이 있다면 어떻게 찾아야 할까? '심청전'을 읽으니 한국인의 효 사상을 찾을 수 있다는 식의 감상적 논평이 아닌, 문학 텍스트가 형성한 세계를 좀 더 체계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오늘날 우리는 어떤 게임의 ‘세계관’, 어떤 영화나 드라마의 '세계관'이라는 말을 흔히 사용한다. 이때 세계관은 '세계를 바라보는 가치관이나 철학으로서의 관점'이라는 일반적이고 사전적인 의미로 사용하지 않는다. 주로 이야기가 있는 콘텐츠에서 제시되는 ‘세계상(世界像)내지’ ‘세계 법칙’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예컨대 미래 세계가 배경인 영화에서 다양한 외계인들은 마치 오늘날 세계에 다양한 인종이나 민족이 공존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존재하는 세계가 제시될 수 있다. 기사들이 전투를 벌이는 게임에서는 중세 유럽의 특정 지역과 그곳의 특정 사건이 배경 세계가 될 수 있으며 거기에서 최고의 가치관은 전우애가 될 수 있다. 최근 각종 문화콘텐츠에서 '세계관'이 강조되는 이유는 이야기를 통해 현실의 실제 세계와 구별되는 또 다른 세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욕망 때문이다. 모든 서사문학은 대안적 세계를 통해 인간의 욕망과 사유를 형상화한다. 그렇다면 설화의 세계관을 통해 한국인의 보편적인 욕망과 사유에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이야기 텍스트가 제시하는 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능 세계(possible world) 이론’의 세계 개념이 효율적이다. 텍스트와 관련된 세계는, 먼저 텍스트에 의해 기획된 세계들의 총합이라 할 수 있는 '텍스트의 우주(Textual Universe)'가 있고, 여기의 중심에 '텍스트의 실제 세계(Textual Actual World: TAW)'가 있다. 이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관계 축을 설정할 수 있는데, 하나는 현실의 '실제 세계(Actual World: AW)'이며, 다른 하나는 텍스트를 통해 추론되는, 텍스트의 실제 세계가 참조한 '텍스트의 지시 세계(Textual Referential World: TRW)'이다.3)
이야기의 세계관은 바로 텍스트의 실제 세계(TAW)와 텍스트의 지시 세계(TRW)의 관계를 통해 파악할 수 있다. 독자나 관객 앞에 직접 주어진 것은 TAW이다. 가령 90분 분량의 영화가 직접 제시한 이미지들의 연속체를 보고 관객은 TAW를 만나게 된다. 이 영화를 이해하고 수용한다는 것을 TAW가 작동하고 의미화하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TAW를 통해 직접 드러난 것만으로 그 세계를 이해하지는 않는다. 관객은 TAW에서 제시하지 않더라도 그것을 통해 추론하고 재구할 수 있는 근거를 찾는다. 관객은 90분 분량의 영화를 통해 실현된 세계보다 훨씬 크고 정교한 세계를 상상하며 이 세계를 통해 TAW를 이해하는 것이다. 결국 텍스트를 이해하고 산출하기 위해 필요한 메타 코드 내지 그것과 관련된 세계를 텍스트의 지시 세계라 할 수 있다. 결국 이야기의 세계관은 그 이야기의 지시세계 TRW 내지 그 세계의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6. 한국 설화의 세계관
한국인들이 설화를 통해 어떤 세계를 상상하고 욕망하였는지, 그리고 세상을 어떤 방식으로 바라보았는지를 신화, 전설, 민담의 갈래별로 살펴보자.4)
신화는 비현실적 사건이 실재하였음을 알려주는 이야기이다. 즉 이야기의 실제 세계(TAW)와 현실의 실제 세계(AW)가 일치한다. 곰이 사람으로 변신해 왕을 낳는 것은 비현실적인 사건이지만 그것이 이야기의 세계에서만 아니라 실제 세계에서도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신화는 현실에서 발생하기 힘든 사건이 처음 발생하고 이후에는 그 같은 사건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텍스트의 지시 세계(TRW)는 인간들의 현실 세계(AW)와 일치한다고 볼 수 없다. 결국 신화는 현실의 세계 법칙에서 자유로운 세계가 있음을, 혹은 현실의 세계 법칙이 온전하지 못해 새로운 법칙이 처음 작동하였음을 보여준다. 신화의 세계관은 현실의 실제 세계를 재조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신화 서사의 세계관을 그 세계가 지향하는 바로 요약해서 표현하자면, 세계에 대한 새로운 창조'나 세계의 '증강'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전설은 특정한 공간에 존재하거나 존재했었던 꽃이나 바위, 사건이나 사람과 같은 증거물로 이야기의 사실성을 지시하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텍스트의 실제 세계(TAW)와 실제 세계(AW)가 일치한다고 볼 수 있지만, 전설에서는 사람이 죽어서 꽃이 되었다는 비현실적 사건이 종종 발생한다. 그래서 전설은 일반적인 역사와 구별되며, 특정 지역의 특정 사람들에게만 실재한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기에 텍스트의 지시 세계(TRW)가 보편적인 실제 세계(AW)와 일치한다고 보기 어렵다. 전설에서도 신화에서처럼 초자연적 사건이 발생하지만 그렇다고 신화의 신이 차원에 이르지 않고 세속에서의 경이(驚異) 차원에 머문다. 왜냐하면 전설이 뿌리내리고 있는 것은 비현실적 신성의 세계가 아닌 철저히 현실 세계이기 때문이다. 전설의 TAW에서 중요한 것은 '역사'가 되지 못하였다는 점, 다시 말해 AW에서 완전히 수용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설의 수용자들은 그들의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진실을 찾는다. 전설의 세계관은 세계속 '비밀 찾기와 풀기, 현실 세계에 대한 '대안적 진실 구하기'라고 할 수 있다.
민담의 텍스트 세계는 허구 서사의 성격을 보여준다. 민담은 자신의 세계 법칙에 충실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발생하지 않은 것을 다룬다. 물론 허구라 하더라도 리얼리즘에 충실한 이야기처럼 텍스트의 실제 세계(TAW)와 실제 세계(AW)가 가까운 경우도 있고, 판타지 서사처럼 두 세계 간 거리가 먼 경우도 있다. 비현실적 캐릭터. 하위 세계, 괴물이나 이인이 등장하는 민담은 철저히 후자의 유형이며, 텍스트의 지시 세계 또한 실제 세계(AW)와 당연히 일치하지 않는다. 민담은 비현실성이 강한 이야기이지만 판타지와 달리 자신만의 뚜렷한 정체성을 가진다. 정상의 기준에서 떨어지는 약자가 주로 주인공이며, 이들은 반드시 과업을 완수하거나 경쟁에서 승리해서 큰 보상을 받는다. 특별히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지도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데도 행운이 따르며 높은 지위나 권력, 부나 귀한 배우자를 보상으로 받는다. 민담의 세계는 낙천적이고 긍정적이면서 동시에 세속적이고 현실적이다. 현실에서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욕망,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나 사회적 약자는 결코 성취하기 힘든 욕망, 그것이 낭만적으로 실현되는 세계가 민담의 세계이다. 그래서 민담의 세계관은 현실 세계에 대한 반대급부로 ‘이상적 세계 구현’ 혹은 현실 세계를 향한 ‘욕망의 발견과 실현’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인들이 오랜 시간 동안 형성하고, 기억하고, 전승해온 설화들을 대상으로 갈래별로 어떤 세계관을 보여주는지 개략적으로 살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한국인들의 세상에 대한 사유 방식, 가치관, 욕망 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는 곧 한국인들의 삶의 방식, 한국의 문화의 원천이자 토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 문화를 대상화하여 우리가 찾아야 할 한국적인 것이 있다면 설화의 세계관 을 통해 구체화하고 거기에서 전략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의 압력을 견뎌온 옛이야기에서 하나의 가능성을 모색해 본다.
1) 정책주간지 공감, 2021. 9. 23.(https://blog.naver.com/mest_pr/222514019884)
2) 오세정, ‘설화 교육 연구의 경향 검토와 방향 모색’, <청람어문교육>, 55, 청람어문교육학회, 2015, 63쪽.
3) Marie-Laure Ryan, “Possible Worlds and Accessbility Realtions: A Semantic Typology of Fiction”, Poetics Today 12:3, 1991, pp.555-557 오세정; ‘신화의 가능세계와 의미론 가능세계의 특성과 관계를 중심으로’ <시학과 언어학> 16. 시학과 언어학회, 2009, 211~213쪽.
4) 오세정, ‘현대 문화콘텐츠의 서사 세계 연구-가능 세계 분석을 통한 세계관 규명과 설화의 세계관 이해,’ <기호학연구>, 한국기호학회, 2021, 119~123쪽 참조
오세정, 충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한국문학이론과 비평학회 회장. 저서에 <신화, 제의, 문학>, <설화와 상상력, 고전, 대중문화를 엿보다>(공저)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