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포르마시옹

'우영우들'의 '구원'을 위하여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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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우영우 시대'다. 드라마 속 우영우는 사랑스럽기만 하다. ‘장애인임에도’ 불편함이 그다지 크지 않다. 연신 돌아가는 빌딩 회전문 안으로 들어서지 못한 채 망설이는 모습이나, 그 해법으로 유일하게 머릿속에 입력된 쿵짝짝 박자만 맞추려 애쓰는 모습이 애틋함을 주는 정도다. 나머지대부분 행동은 순수하고 엉뚱해서 오히려 더 큰 매력을 안겨준다. 여기에 매료된 사람들은 우영우의 한 말 한마디, 몸짓 하나에도 자지러진다. 우영우가 갖고 있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아주 약간의 사회성 부족을 제외하고는 비장애 사람들과 조금 다른 부분의 하나일 뿐이다. 드라마 안과 밖에서 우영우를 대하는 사람들의 시선 역시 따뜻하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편견의 시선은 그렇게 조금씩 희미해져 가는 듯하기도 하다.

하지만 '현실 속 우영우들'은 다르다. 냉랭한 사시(斜視) 앞에 불편하기만 하다. 선천성 혹은 후천성 장애는 사람들과 막막한 거리감의 장애물 그 자체다. 언어장애가 있는 이들이 어눌하게 길을 묻기라도 하면 많은 이들이 화들짝 놀라거나 조심스럽게 아래위를 훑어본다. 성마른 이들은 버럭화를 내기조차 한다. 실제 소수자로서 장애인이 갖는 생활의 한계는 곳곳에 있다. 현실 속 우영우들은 드라마 속 그 우영우처럼 높은 지능을 갖고 있지도 않을뿐더러 우영우처럼 감정 없는 듯한 아기 말투로 얘기하더라도 전혀 친근감을 주지 못한다. 변호사와 같이 높은 사회적 지위가 있지도 않다. 이들은 특별한 혜택이나 친밀한 감정적 관계까지 맺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남들과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가 보장되기만을 바랄 따름이다. 장애인들도 생활을 해야 한다. 직장으로 출근하거나 돈을 벌어야 하고, 친구를 만나야 하고, 문화생활을 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지하철, 버스 등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곤 한다. 하지만 이게 만만치 않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은 올해 초 출근 시간 지하철 타기 시위를 몇 차례 벌였다. 휠체어 리프트를 타고 계단을 내려가 승강장에서 지하철을 타는 시위는 당연히 출근길 시민들의 발을 한동안 꽁꽁 묶었다. 현장에서는 욕설이 쏟아졌고, 인터넷 공간의 혐오 표현은 차마 옮기기 힘든 것들 또한 많았다. 시위를 하면 할수록 시민들로부터 고립되는 운동단체로서 가장 하지 말아야 할 방식의 시위였다.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대표가 재빠르게 시류에 편승해 점잖게 한마디 했다. "아무리 정당한 주장도 타인의 권리를 과도히 침해하면서 하는 경우에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다." 이 대표의 말에 힘입어 사람들이 더욱더 손가락질해댔음은 물론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치안정감으로 승진하고 서울청장까지 맡게 된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의 취임 직후 일성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비장하기만 했다. 김 청장은 지난 6월 20일 기자들 앞에서 전장연의 지하철 타기 시위의 불법성을 강조하며 "지구 끝까지 찾아가서라도 사법처리하겠다."고 말했다. 아연실색할 망언이었다. 많은 이들이 의아해했다. 장애인들이 그동안 휠체어 타고, 목발 짚은 채로 경찰의 검거와 추적을 신출귀몰하듯 따돌려왔나 보군, 이라고 생각한 이들도 일부 있을는지 모를 일이다. 물론 절대다수의 많은 이들은 코웃음을 쳤다. 집 밖으로 한 걸음 나서는 일조차 힘겨워서 지하철 좀 마음 놓고 타고 다닐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하는 이들에게 무슨 ‘지구 끝’을 운운하냐면서 경찰 최고위층의 반인권적 인식에 대해 개탄했다. 장애인 당사자들은 개탄을 넘어 분노했다. 전장연은 "지구 끝까지 찾아갈 필요 없다. 서울 종로구 동숭길25 5층에 있다."고 성명서를 냈다. 그리고 8월 29일 국회에서 '김광호 청장 장애인등편의법 위반 모의재판'을 열었다.

사람들은 모른다. 장애인 이동권 시위가 최근 갑자기 생겨날 것이 아님을 모른다. 장애인들이 합리적으로 온건하게 요구하는 것만으로는 지하철을 탈 수 없음을 모른다. 목숨을 걸거나 악다구니를 써야 세상이 겨우 저 만큼으로나마 반응한다는 사실 또한 모른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편하게 오가는 동안 얼마나 많은 장애인의 죽음이 흩뿌려졌는지 역시 모른다.

1984년 9월 19일 휠체어 이용 장애인 김순석 씨는 "서울 거리의 턱을 없애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동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던 시절, 그 권리의 사회적 의미를 부여한 첫 외침이었다. 1999년 6월 28일 혜화역에서 이규식 씨가 장애인 야학에 다녀오던 길에 리프트에서 추락해 숨졌다. 2001년 1월 22일 오이도역에서 노인 장애인이 리프트에서 떨어져 숨을 거뒀다. 이후에도 2002년 5월 발산역, 2006년 9월 인천신연수역, 2008년 1월 화서역, 2017년 10월 신길역 등 세상이 채 기억하지 못하는 숱한 죽음들이 있었다.

인권활동가 이구원(32) 씨가 바라는 세상 또한 마찬가지다. 이 씨는 "처음에 김광호 청장의 말을 듣고 기가 막혔다. 집회의 자유, 권리에 대한 존중이 전혀 없다. 그냥 현 정권의 코드를 맞추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 같아 안쓰럽기만 하다"고 말했다. “잡아가려면 잡아가보라지요. 2년 전 장애인 단체 활동가 3명이 장애인 이동권 요구 시위에 대해 집시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받았지만 그 분들은 벌금을 내는 대신 구치소를 선택했어요 하지만 구치소에 장애인을 수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설 자체가 없으니 바로 나오게 됐죠.” 이 씨가 언급한 사례는 이현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대표와 박경석 전장연 상임대표, 권달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 얘기다. 이들은 2016년 이후 시위 과정에서 부과된 벌금 40만 원을 납부하는 대신 구치소를 선택했다. 구치소 안은 휠체어 반입이 불가능하다. 주변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씻을 수도, 볼일을 볼 수도 없었다. 이들에게는 ‘감옥 안의 감옥’인 셈이다. 하지만 모두 2~3일 만에 나왔다. 이 소식이 알려진 뒤 각계에서 돈이 모아지며 이틀 남짓 만에 벌금을 모두 납부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법무부 입장에서도 곤혹스러운 상황이었기에 마냥 이들을 구금하고 있을 수도 없었다.

이구원 씨는 충북 청주를 기반으로 하는 '인권연대 숨'의 활동가다. 지난 7월 사무실을 찾아 이 씨를 만났다. 통성명하며 인사 나눈 뒤 건넨 명함은 그를 돕는 활동지원사가 대신 받았고, 이 책의 명함 역시 활동지원사가 대신 전해줬다. 이 씨는 태어날 때부터 팔다리가 없다. 선천성 사지절단증 장애인이다. 그의 삶은 어릴 때부터 TV 등 언론에 소개되며 화제가 되곤 했다. 자서전 '오체불만족'을 써서 화제를 모았던 비슷한 장애를 딛고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일본의 오토다케 히로타다(46)와 비교되며 언론 등에서 '한국의 오토다케'로 불렀다. 오토다케가 방한했던 1999년 당시 만나 함께 농구하는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가 문서 작업을 해야 할 때는 특별히 제작된 막대기를 입에 물고 컴퓨터 키보드를 눌러야 한다. 1분에 120~130타를 치는 느린 속도다. 하지만 그는 장애인 인권 운동에 머물지 않는다. 그의 활동 공간인 ‘인권연대 숨’은 장애인 인권단체가 아니라 인권교육, 역사 현장 평화기행 사업, 회원 소모임 등을 보지만 말하게 된 행하는, ‘아주 보통의’ 인권단체다.

이 씨는 지난해 2월부터 이 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2018년부터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3년 가까이 장애인 동료 상담, 초·중등 학생 상대로 장애인 이해 교육을 하다가 아예 인권활동가로 나선 셈이다. 장애인 인권뿐 아니라 보편적인 인간의 권리, 즉 인권 운동을 하고 있다. 그는 "인권은 모든 인간이 가진 보편적인 권리이고, 장애인 비장애인을 분리하지는 않는다."면서 "개인의 특성 때문에 활동 공간이 달라질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씨는 "인권에 대해 자연스럽게 배워왔고, 내가 이미 인권을 침해받는 차별적 경험을 해왔음을 뒤늦게 자각한 것이 인권 운동의 계기라면 계기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예컨대 전장연과 같은 장애인인권 운동 단체가 아닌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것은 다른 의미가 있을 법했다.

그는 "전장연을 지지하고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 전장연 주최 집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전장연의 20년에 걸친 활동이 있어서 장애인들의 일상이많이 바뀔 수 있음을 안다."면서 "하지만 여전히 부족한 점이 있고 그것은 인권의 보편성에 대한 확장"이라고 말했다. 거듭된 우문(愚問)에 돌아온 현답(賢答)이었다. 장애인은 장애인 단체에서 일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인식 자체가 편견이자 차별적 시각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물론 자신의 구체적인 경험과 삶에 기반한 분야를 특화시킨 운동만큼 강력한 추동력을 가질 수는 없다. 장애인 인권에 대한 그의 각별한 관심은 당연한 것이다. "단체에서 독서 모임, 글쓰기 모임을 같이 하고 지역 인권 이슈를 발굴하는 한편, 인권 강좌 중 장애인권 교육 맡고 있습니다. ‘저상버스 타고 쏘댕기기’는 특히 중점을 두고 있는 활동이기도 합니다." 실제 장애인 이동권 활동의 성과물은 장애인만이 아닌, 고스란히 사회적 약자들이 수혜 대상이 된다. 예컨대 목숨을 걸어가면서, 또 그 과정에서 온갖 혐오와 차별의 표현을 감내해가면서 결국 설치된 지하철역 엘리베이터는 노인, 어린이, 임신부 등 사회적 이동 약자들에게 실질적인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저상버스 또한 마찬가지다. 장애인에 국한된 것이 아닌, 보편적 이동권의 영역이다.

이 씨는 "저상버스 인프라가 여전히 부족한 상황에서 실제로 이용하기에 불편함이 컸던 만큼 본격적인 인권 운동을 하기 전까지는 저상버스를 확대하기보다는 장애인콜택시 운영을 늘리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았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저상버스는 장애인만이 아닌 유아를 미는 부모, 거동 불편한 노인 어르신, 어린아이들 등 비장애인을 포함한 모두의 이동권과 관련 있는 교통수단이라는 점을 깨닫게 됐다"고 인권의 보편성에 대한 시각이 넓어졌음을 설명했다. 이 씨는 저상버스의 여러 지역별 현황 등에 대해 설명하고, 중앙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관련 제도의 미비점을 지적했다. 이 씨는 "서울은 도입률 50% 정도 되지만 전국적으로는 28% 정도에 불과하며, 저상버스 이동 현황 등을 담은 저장버스 운영정보시스템 앱 개발·보급 등도 부족하다."면서 "대중교통 수단으로서 저상버스를 보편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저상버스를 중심으로 보편적 이동권을 높이고 장애인 콜택시로 보완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 씨를 포함해 세 명의 활동가가 있는 인권 단체 '숨'은 휴식의 권리,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월~목 주 4일제로 근무하고 있다. "쉬는 날에는 집에서 영화도 보고, 책도 보고, 친구들 만나 술 한잔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월 530시간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아 단체 활동 및 개인 생활을 한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개인의 무능함 정도를 정부로부터 검증받아서 부여받는 활동 지원 시간”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장애등급제는 폐지됐다고 하지만 활동지원 서비스를 받기 위해 사실상 심사를 받아야 하는 현실에 대한 비판이었다.

어릴 적부터 천주교 공동체에서 생활하며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선교사로서 살던 그의 삶의 방향은 인권의 가치를 놓고 급전환했다. 하지만 그는 그 변화에 의미를 크게 부여하지는 않았다. 실제 그의 얘기를 들으면 인권활동가로 나서게 된 특별한 각성의 순간이 따로 필요하지는 않은 듯했다. 어찌 보면 삶의 매 순간이 특별했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태어난 직후부터 유소년 시절을 천주교 수도원에서 공동체 생활을 했고, 학교를 다니지 않고 검정고시를 치르고서 대학에 간 특별한 이력을 가졌다. 2014년 방한한 프란체스코 교황을 따로 만나 얘기 나누는 특별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이 씨는 “대학에 가기 전까지는 어떤 것도 스스로 선택한 삶이 없이 엄격한 규칙 속에서 종교적 생활을 해야 했다."면서 "비록 원했던 역사학과가 아닌 신학과를 가야 했지만 대학에서 선후배들과 어울리며 비로소 자유로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2016년부터 본격적인 자립 생활을 시작했고,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하며 자신만의 삶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하며 돈을 벌고, 인권 운동 단체에서 일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도 그 이후의 일들이다. 그는 "코로나19가 유행할 때 혹시라도 확진 판정을 받아 돌봄(활동지원 서비스)을 받지 못할까 봐 걱정이 많았는데 잘 넘어와서 다행"이라며 배시시 웃었다. 서른두 살 청년으로서 이씨는 별 바람이 없다지만 슬며시 풀어내는 꿈은 크다. '저상버스 타고 쏘댕기기'를 비롯해 인권 운동 분야에서 자신의 책임성을 더욱 높이는 활동을 하고 싶다는 바람을 얘기하면서 "함께 노력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우리 사회에서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싶다."고 말했다. "인권을 포함해서 계속 활동하겠지만 계획이나 목표를 정교하게 설정해서 사는 것은 제 스타일이 아닌 것 같아요. 얼핏 보면 낙천적인 것 같기도 하지만 내성적 점도 많다 보니 현실에 안주하려고 할 때도 있어요. 아무튼 나이 먹어도 꼰대는 되지 말아야죠. 그러려면 계속 공부해야 하고요. 세상 떠나는 마지막 순간에 후회를 덜 남기는 삶을 살고 싶네요.”

다시 우영우 얘기다. 모든 이가 한창 열광하는 드라마이니 이 씨 역시 장애인이자 인권활동가로서 어떻게 보고 있을지 궁금했다. 이 씨는 "기존과 달리 섬세하게 잘 만든 드라마 같고 아주 재미있게 잘 보고 있다.”면서 “우영우를 장애인이라는 고정된 정체성에 가두기보다 한 사람의 고민과 삶, 장애로 인한 차별을 포함한 다양한 경험들을 잘 담으려 한 노력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에서 고민해야 할 주제들을 드라마 내 사건들을 동해 다양하게 던지는 것도 꽤 신선하고 매력적이에요."

칭찬 일색인 듯하지만 아쉬운 부분 및 근본적 한계에 대한 지적도 잊지않았다. 그의 지적이 향하는 궁극적 지점은 우리 사회가 여전히 탈피하지 못하는 '능력주의'에 대한 치우침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드라마에서 나오는 우영우 주위 환경이 참 훈훈하고 아름답지만 우리의 현실과는 다른 판타지에 가깝다."고 잘라 말했다.

"능력주의에 입각해 소수의 재능이 뛰어난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삼은 점, 우영우란 캐릭터 역시 지나치게 무해하고 선량한 장애인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한 점도 아쉽긴 해요. 또 지적 장애인의 성과 사랑을 다룬 에피소드 부분에서는 작가의 의도와 다르게 비장애인의 시선에서 왜곡되게 해석될 지점도 있는 것 같고요."

현실 속의 우영우들은 드라마 속 우영우를 보며 여느 사람들처럼 흐뭇해하다가도 여전히 사회적 편견과 차별에서 구원받지 못한 처지의 자신을 발견하고 씁쓸한 웃음을 지을지도 모를 일이다. 남다른 재능을 갖지 않아도 법이 보장하는 최소한의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세상은 굳이 구원의 영역이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우영우들은 여전히 구원을 위해 싸우고 있다.

때로는 목숨을 걸고, 때로는 욕설을 들어가면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현실 속 거리에서, 지하철역에서, 버스정류장에서, 영화관에서 우리가 맞닥뜨리는 장애인의 존재는 '우영우'가 아닌 '이구원'이다. 드라마 속 우영우가 아닌, ‘이구원들’과 공존하기 위한 비장애인의 지혜와 노력이 간절하다.

 

박록삼, 서울신문 논설위원


이 기사는 공공 데이터와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재구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