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포르마시옹

헤르마프로디테는 샛별과 개밥바라기 사이에서 베누스를 불렀는가?

차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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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琥珀) 안에 매장된 것이 죽음인지 삶인지, 장례인지 영생인지 구별하는 일은 애매와 모호를 구별하기 못지않게 애매모호한데, 확실한 사실 하나는 양자는 샛별과 개밥바라기처럼 긴밀하게 이어져 있다는 점이다. 모든 이야기는 이 애매모호함에서 연유한다.

나는 독학자이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열 번 읽었던 고등학생 때부터 그래왔다. 단국대학교에서 독일어를 전공하고 철학을 복수전공해서 요아네스 둔스 스코투스의 철학을 주제로 졸업논문을 쓸 때까지 나를 인도해준 스승이라고 할 만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라티움어 문법을 11주만에 터득할 수 있도록 도와준 Y 선생님, 여름방학 동안 희랍어 문법책을 끝마칠 수 있도록 도와준 다른 Y 선생님 이외에는 물론 대학에서 배운 게 없지는 않았다. 대학에서 공부한 덕에 나는 독일어를 지금처럼 구사할 수 있게 되었고(물론 독학의 덕을 훨씬 크게 보기는 했지만), 내가 연구하는 서양 고대철학과 중세철학 이외에 철학사 전반에 대해 어느 정도 수준 있는 이해를 함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독학자라는 낱말은 애매모호하다. 어디서부터 자력이고 어디서부터 타인의 도움인지 쉽사리 단언할 수 없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이 낱말에 함축된 어떤 필연성 때문에 우리는 불분명한 외연에도 불구하고 이 낱말을 표방하는 것 자체를 어느 정도는 수긍할 수 있다.

철학도로서 나는 서양 고중세철학, 중세 아랍철학을 연구하는데, 구체적으로는 이슬람 철학자인 이븐 시나의 <신학>이라는 책을 번역하고 있고, 서양 중세 철학자인 요아네스 둔스 스코투스의 철학을 주제로 논문을 쓰고 그의 저서를 단편적으로 번역한 적이 있다. 둔스 스코투스라는 철학자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그는 매우 중요한 철학자이다. 어느 정도냐면 데카르트가 활동하던 시대인 17세기에도 "다른 모든 학파들의 수를 합친 것보다 둔스 스코투스학파의 구성원이 더 많았다"는 발언도 전승되고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둔스 스코투스의 철학을 내게 설명해줄 수 있는 선생님을 찾지 못했고, 사실상 3년간의 독학을 통해 비로소 논문 한 편을 작성할 수 있게 되었다. 논문의 주제는 <둔스 스코투스의 일의적 존재개념의 증명과 그 구조>였으며, 왜 둔스 스코투스가 그의 핵심적인 학설인 존재자 개념의 일의성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의 증명을 제시했는지 해명하는 것을 논문의 과제로 삼았다. 둔스 스코투스의 존재하는 것의 일의성 개념을 연구하는 까닭은 그의 이 학설이 서구 형이상학의 역사를 관통하는 핵심 개념이 되기 때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지금 연구하고 있는 이븐 시나의 철학 역시 독학으로 힘들게 나아가는 건 마찬가지이다. 둔스 스코투스를 독학으로 공부하면서 둔스 스코투스에 대한 그의 영향력이 막대했음을 깨닫고 이븐 시나를 연구하게 되었다. 이븐 시나는 단순히 둔스 스코투스에게만 큰 영향력을 행사한 철학자가 아니다. 11세기 최고의 철학자이자 의학자였고, 철학적으로 중세 서유럽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물론이요 그가 쓴 <의학 정전>이라는 책은 유럽에서 5세기 동안 의학의 교과서로 사용된 저술이다. 또한 그는 의학자로서 오늘날까지 통용되는 몇 가지 발견과 아이디어를 제시했는데, 이를테면 흑사병과 같은 대규모 감염병이 창궐하는 상황에서 시민들로 하여금 예배당에 모이지 말고 집에서 예배를 볼 것을 권고하였고, 감염병 예방을 위해 외국에서 온 배를 40일 동안 격리하는 자가격리의 개념을 처음 도입하였다. 또한 알코올을 소독제로 사용하게 된 것도 그의 의학적 공로이다. 이렇듯 박학다식하고 다재다능한 이븐 시나였지만, 그도 그의 명성이 오늘날까지 통용되리라고는 또 그중에서도 한국이라는 머나먼 동쪽 땅의 어느 나라에서도 연구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 같다. 공교롭게도 국내에는 이븐 철학에 정통하다고 할 수 있는 연구자가 없기 때문에 거진 독학으로 이븐 시나의 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독학으로 아랍어를 공부해서, 이븐 시나의 저서를 읽을 수 있게 되었고, 튀르키예어나 독일어, 영어와 같은 외국어로 된 2차 문헌을 참고하여 연구를 진행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독학인지라 갈피를 찾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나의 아랍어 실력 역시 뛰어난 편이 아니라서 착착 진행되고 있지는 않다. 문제는 대개 지도교수의 부재에 기인한다. 아마 독일로 유학을 가면 지도교수를 찾을 수 있어 상황이 지금보다 개선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문제가 있다면, 졸업 이후 유학 자금이 부족해서 현재 학업을 거진 쉬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까닭에 내 또 다른 자아인 사업가로서의 자아가 눈을 뜨기 시작했다. 시작은 처참했다. 국내에서는 수요가 다소 낮은 알렉산드라이트라는 보석을 주로 취급했는데, 일본이나 미국과는 달리 이 보석의 수요가 국내에서는 별로 없고, 높은 가격대 때문에 잘 팔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노선을 변경해 국내를 포함해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보석인 다이아몬드를 취급하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다이아몬드를 모든 보석 중에서 가장 가격 거품이 심한 보석이라 생각하고 있지만, 거꾸로 말하면 다이아몬드는 적정가에 내놓으면 날개 돋친 듯 팔리기 때문에, 판매자 입장에서는 수익성이 좋은 보석이라 평할 수 있을 것이다. 확실한 건 다이아몬드를 잘 팔아야 내가 독일에 유학을 가서 아랍 철학을 제대로 공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만약 사업이 크게 성공한다면, 내 이름으로 재단을 설립하고, 서양 중세철학과 이슬람 철학을 연구하는 이들을 위한 대안 연구 공간을 마련할 것이다.

내 지정성별은 남성인데, 어렸을 때부터 자주 여자아이로 오해를 받곤 하였다. 투블럭으로만 머리를 깎던 학창시절이 지나고 성인이 되고나서 다시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고, 그 이후로 종종 여자로 간주되곤 하였다. 화장을 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는 화장을 진하게 하는 편이 아니고, 파운데이션을 도포한 후에 아이셰도우를 살짝 바르는 정도로 그친다. 그럼에도 화장을 한 날이면, 대중목욕탕에서 여탕 키를 잘못 받는 날도 있었다. 여자로 오해받는 건 기분이 나쁘지 않다. 오히려 화장이 잘 먹었다는 의미로 다가와 뿌듯함을 느끼곤 한다. 그럼에도 나는 여자가 되고 싶어서 화장을 하는 건 아니다. 그저 아름다워지고 싶기 때문에 화장을 한다. 아름다워진다는 것과 여자가 되는 것은 거리가 있다. 하지만, 진정으로 아름답다면, 남성이라는 관점에서도 여성이라는 관점에서도, 또는 성별과 무관하게 아름답다고 느껴져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것이 헤르마프로디테적인 아름다움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크로스드레서가 아니다. 비록 짧지 않은 시간동안 크로스드레서 커뮤니티에서 활동해온 바가 있지만, 나는 크로스드레서 커뮤니티의 성향과는 대조적으로 가냘픈 여자아이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나는 그저 특정 성별로 인식되지 않는 인간이 되고 싶었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내가 일상을 영위하게 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이를테면, 나는 수 차례 집에서 쫓겨난 경험이 있는데, 그 중 한 번은 겨울이었고, 밖에 머물 곳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천안에 월세 20만 원짜리 방을 구했는데, 침대도 없고, 난방도 없이 바닥에서 자야 했다. 기온은 영하였고, 실내 기온 역시 실외와 큰 차이가 없었다. 내일 아침 일어날 수 있으면 기적이리라 생각하고 얼어 죽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방안으로 두꺼운 사전들을 쌓아서 침대 대신으로 그 위에 눕고, 다리는 백팩 안에 집어넣고 잠에 들었다. 그러고 다음날 아침 살아남았다는 자의식과 함께 대학에 강의를 들으러 갈 수 있었다. 또 언젠가는 앓고 있던 조울증의 증세가 심해져 여러 번 목숨을 끊으려고 하던 끝에 폐쇄병동에 입원했을 때도 있었다. 폐쇄병동에서 입원하면서 아카드어 문법 공부를 마치려고 했지만, 독학하기에는 여러모로 복잡한 언어적 특징 때문에 중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퇴원 후에는 동거인의 집에서 얹혀 살고 있고, 가족과 같은 공간에서 살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기 때문에 훨씬 정서적으로 안정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해와 달, 그리고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다섯 행성인 화성, 수성, 목성, 금성, 토성을 바탕으로 역법이 확립된 이후, 우리는 날짜를 7일 단위로 계산하는 역법에 익숙해져 있다. 마치 손가락의 개수가 10개라는 이유로 10진법으로 숫자를 셈하는 체계가 확립된 것처럼. 그래서 우리는 매일 천구의 이름에 우리의 일과를 덧칠하곤 한다. 이를테면 수요일에는 라티움어 텍스트를 읽고, 목요일에는 희랍어 텍스트를 읽고, 금요일과 토요일 일요일에는 이븐 시나의 책을 번역하고 월요일에는 꾸란을 읽고 화요일에는 독일어 공부를 한다. 꾸란을 읽는 이유는 종교 때문이 아니라, 꾸란이야말로 푸스(표준 문어체 아랍어)의 전범이라 일컬을 수 있는 텍스트이며, 일반적으로 아랍어 텍스트에 모음 기호가 표기되지 않는 것과 대조적으로 꾸란에는 모음기호가 표기되어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독일어는 C1 단계를 공부하고 있다. 사실 C1자격증 시험은 필기영역에서 통과했지만, 구술 영역에서 잇따라 탈락하는 바람에 아직 자격증은 보유하고 있지 않다. 수요일에는 동거인과 함께 키케로의 연설문을 라티움어로 읽고 있다. 나로서는 대학 3학년 때 이미 읽은 텍스트이지만, 동거인과 함께 라티움어를 공부하면서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키케로의 연설문을 한 편 다 읽은 후에는 베르길라스의 아이네이스를 동거인과 함께 읽어 볼 계획이다. 목요일에는 희랍어 공부를 한다. 사실 예전에 플라톤의 <크리톤>을 희랍어로 읽었던 적이 있어서 준비가 끝나면,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희랍어로 읽어 볼 생각만 몇 주 동한 아시나의 아랍어에서 한국어로 번역하는 일은 어렵다. 표준 아불만을 포기해서는 알 수 없는 특유의 어법과 단어사용 때문이다. 이러한 어리를 보여 일주일에 또 한 페이지 정도를 번역하는 데 그치고 있다. 일주일의 일과는 이를 하면, 정말로 해야 할 일은 이것보다 더 많을 것이다. 이를테면 예전에 공부했지만 잊어버린 언어를 튀르키예어, 이태리어, 프랑스어 등을 다시 공부해야 할 사건을 파면해야 할 것이다. 특히 2주만에 문법 공부를 마쳤던 튀로키는 자들은 거의 잊어버렸기 때문에 튀르키에어권에서 발간되는 이븐 시나도 활약 관련 문헌들을 읽기 위해서라도 다시 공부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모든 상황과 현실의 조건이 내가 지금처럼 일상을 학업에 바치는 방식과 맞아떨어진다고는 할 수 없을뿐더러, 아직 나에게 미숙한 점이는 사실이 나를 괴롭게 한다는 철 역시 간과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유화를 가기 위해 자금을 마련해야 하고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아마도 전적으로 학업에 집중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나에게는 해야 했지만, 아직 하지 또한 공부들이 많다. 이를테면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희랍어로 읽는 것 아카드와 문법 공부를 마쳐 <에누마 엘리쉬>를 쐐기문자로 써가면서 낭독하는 것

둔스 스코투스의 주저인 <신학 명제집 주해>의 편역한 부분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읽어보는 것 등등. 학문적으로 결벽증적이고 강건하던 학부 2학년 또는 3학년 시절의 나라면, 지금의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다시 시를 쓰면서 둔스 스코투스의 책을 번역하는 걸 마치고 그의 존재론을 주제로 논문을 썼고, 더 나아가 아랍어를 공부하고 이븐 시나를 연구하는 나를 다재다능하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공부했던 프랑스어와 이태리어를 까먹고 제대로 이룬 것 하나 없다는 점을 이유로 비난할까? 지금의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찌되었든 나는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길의 방향은 여럿이고 나에게는 지도만 있지 나아가야 할 길 뒤에 뭐가 있을지는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나아가야 한다. 나아가지 않는다면, 나 스스로 내 목숨을 거두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모든 방향으로 나 있는 길을 찾아 헤매는 것은 필경 애매모호한 일이다. 그리고 이 애매모호함을 감내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일이다.

 

배하나

무덤이 되어 쏟아진 당신의 말 아래, 이름을 지우고 저를 썼습니다.


이 기사는 공공 데이터와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재구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