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일흔세해 너머의 기억
제주도는 73년의 기억 너머에 있다. 단 한발의 총에 맞아 죽는 사람들은 차라리 행복했다고 기억되는 사람들의 땅. 이유도 모르고 죽어가야 했던 사람들의 땅. 검붉은 기억의 섬이다. 해방공간 분단을 원치 않았던 죄로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 사람 3만여명이 희생됐다. 4-3으로 잃어버린 제주의 마을 130곳 4·3의 가장 가혹한 시간이었던 1948년 11월 중순부터 1949년 3월까지 중산간마을 사람들은 자신의 키보다 높은 눈더미를 짐승처럼 넘어야 했다. 한라산 곳곳엔 이름도 지어주지 못한 채 떠나보낸 아이들과 굶주려 죽거나, 행방불명되거나, 함께 죽어간 혈육들의 비애가 떠다닌다.
섬은 까맣게 타버렸다. 화산재의 황량한 섬은 폐허의 전장처럼 검은 핏자국이 스며든 얼음땅이 됐다. 기억도 재가 되면 사라져야 마땅한 줄 알았다. 사람씨, 풀씨마저 절멸한 대지 위로 다시는 꼼지락거리는 것들이 없을 줄 알았다. 허나 직접 4·3의 불바다를 건넌 제주 사람들에게 4·3의 기억은 끝내 타지 않았다. 차마 인간의 눈으로 보아선 안 될 것들을 봐버린 사람들과 살아남은 자들은 그날들을 어떻게 견디고 살아냈는지 몸소 보여준다. 이처연과 황홀의 모순된 땅, 제주도는 그런 섬이다.
그럼에도 어느 귀퉁이에선 여전히 인간의 흔적을 품은 대숲이 쉬이익 소리를 낸다. 박쥐가 서식하는 한라산 기슭 피난지의 크고 작은 동굴에도 그 생존의 옹기 파편들이 아직도 남은 온기로 웅크리고 있다.
1948년 11월, 그날 이미 인간들이 낸 화염에 죽은 줄 알았던 선흘마을 후박나무에도 연두가 펄럭이고 있었다. 더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저 불에 타다 만 나무는 몸에 동굴을 파놓은 채 성성했다. 바닥까지 기생하는 생명들이 긁히고 옹이진 몸을 위로하는가. 248명의 무덤이 된 서귀포 정방폭포는 비통의 당사자임에도 오늘도 아무렇지도 않게 하얀 포말을 긁고 있다. 2021년 제주도는 그런 섬이다.
행불인 묘역에서 '무죄'를 고하다
“살은 녹고 뼈는 삭아버린 세월입니다. 이제나 올 건가 저제나 올 건가. 올레 어귀 바람소리에도 문 열고 바라보던 칭원한 세월이었습니다. ‘웃샤쓰(윗셔츠) 두벌만 보내줍서 얼마성 나가짐직 허우다(얼마 안 있어 나갈 수 있을것 같습니다).’ 형무소 우편엽서가 마지막으로 영영 이별이 될 줄 누가 알았습니까 그보다 더 억울한 것은 영령님들에게 덧씌워진 범죄자 낙인이었고, 저희들 유족 역시 연좌제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얼마나 발버둥을 쳐야 했겠습니까. 이제 4·3특별법 개정이란 단비가 내리고 '수형인 무죄'라는 판결을 이뤄냈습니다."
제주4·3평화공원 행방불명인 묘역의 4월, 굵고 떨리는 목소리의 문장이 묘역 사이를 지나 푸른 하늘을 향하고 있다. 호남지역 여러 형무소에서 국가폭력의 희생양이 됐던 망자들을 향해 유족들이 고유제를 올리고 있다. 하늘에서라도 자유로운 영혼이길 바라는 산 자들의 마음이 그곳에 닿았을까. 얼굴조차 아득하다는 혈육들이 울먹였다.
여기선 '강군옥의 자(子)1' '이(李)명미상' 등으로 새겨진 태어나던 순간모든 것을 잃고 사라진 존재들도 만난다. 어디서 죽었는지 알 도리가 없다는 사람들. 어느 날, 어느 곳이 마지막이었는지 돌아올 수 없던 그날을 모르기에 여기선 대부분 생일이 제삿날이다. 아버지 나이의 갑절을 넘긴 혈육들이, 평생 트라우마에 젖은 눈동자들이 여기로 온다. 스물에 떠난 당신을 기다린다는 아흔셋 백발 아내도 만난다. 잿빛 표석 위로 붉음이 터진다. 가녘으로 피어난 붉은 동백이 노란 목젖을 드러내며 묻는다. 무엇으로 진실을 정의할 것인가, 어디에서 당신들의 행방을 찾을 것인가.
어느 표석에 엎드린 일흔세살의 아들은 말을 삼킨다. 젖은 눈이다. 농사만 짓던 아버지가 무슨 죄명이 있었겠냐며 4·3특별법 개정안으로 수월해진 재심을 청구하지 않겠다고 했다. 너무나 사무치는 이름 아버지, 평생 눈 닫고 귀로만 들어온 아버지, 아들의 출생을 알 리 없는 아버지라 했다. 사진 한장 남겨놓지 못하고 형무소로 떠났던 아버지의 얼굴을 보려면 네 얼굴을 들여다보라고 했던 이웃 삼촌들의 말씀을 어려서부터 달고 살았다. 그에게 아버지는 환상 속의 이름일 뿐이다.
73년 만의 재심 판결, "피고인 무죄"
4.3 73주년인 2021년은 제주 사람들에게 역사적인 해다. 희생자 배·보상과 특별재심, 추가 진상조사 등을 담은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하 4·3특별법) 개정안이 2월 26일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했다. 이어서 3월 16일 제주지방법원은 역사적인 판결을 내렸다. 이날 하루 종일 판사는 불법 군사재판으로 육지 형무소로 끌려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 수형 행불인1) 등 335명의 무죄판결을 내렸다. "피고인 각 무죄!" 빨간색을 없애는 데 73년의 시간이 걸렸다.
"기막히죠?" 법정의 판사가 말했다. 피고인은 이미 하늘에 있고, 지상의 법정에는 피고인들을 대리한 혈육들이 나와 앉았다. 법정엔 사상도 없었다. 오로지 어떻게 그 야만의 시대가 있었는가를 말하고 있을 뿐, 판사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아, 얼마나 추웠을까요?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이제는 조금 편안하셨으면 좋겠어요." 장찬수 부장판사의 따뜻한 위로가 더 서러웠다. 그 한마디에 끝내 여든여섯살 딸의 비애가 터졌다. 법정은 그야말로 산 자와 죽은 자의 장이었다. 백발의 혈육들은 이미 그 광기의 시대, 어린 눈으로 목격했던 그날을, 평생 떠나지 않는 잔혹했던 그날들을 증언했다.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만나러 죽을 때까지 바다로 갔다던 해녀 어머니는 정말 거기서 아들을 만났던 걸까.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깊은 말들은 뒤엉키고, 꺾어지고, 넘어가지 못해 속으로만 흐르는 파도처럼 법정을 흔들었다. 그 말들은 어떤 상상도 뛰어넘는 현실이었다. 4·3은 일생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린 치명적인 부호다.
한 여인의 말이 꽂힌다. "글쎄, 무죄라 하면 막 기쁠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네. 명예회복만 되면 좋을 줄 알았는데 왜 이리 가슴이 아리는지……” 기분은 풀렸으나 뭐라 할 수 없이 헛헛한 가슴, 그것이 4·3의 현재다.
그날 이후, 산 자의 조각들
이 기사는 글로벌 경제 관련 흐름이 어디로 향하는지 보여준다. 시장 참여자들이 다음 변화를 읽는 기준점이 될 수 있다.
기사요약 제주4·3사건 73주년을 맞아 해방공간 분단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1947년부터 1954년까지 약 3만명이 희생된 역사적 비극을 조명한 기사이다. 기사는 제주도의 폐허와 상흔 속에서도 살아남은 생명들의 기억과 유족들이 쟁취한 '수형인 무죄' 판. 관련 이슈가 기업 실적, 투자심리, 정책 기대에 미치는 영향을 함께 볼 필요가 있다.
단기 뉴스로 끝날 사안인지, 아니면 중장기 추세의 시작인지 가르는 데 도움이 된다. 투자자와 업계 모두 후속 지표를 점검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