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의 동기와 배경
2021년 2월 1일, 미얀마 군부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작년 11월 총선 결과에 만족하지 못한 군부는 몇차례에 걸쳐 정부와 여당 관계자를 만났고, 1월 28일에 있은 최종 회동에서 합의점을 찾는 데 실패했다. 국민 여론을 의식해서였는지 군부는 1월 30일 국민통합을 위해 정치적 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성명을 발표했으나 국회 개원일 새벽에 쿠데타를 자행함으로써 이틀 전 약속을 스스로 깨트렸다.
군부는 연방선거위원회 위원을 모두 교체했고, 신임 위원들은 선거인 명부를 다시 조사해 국영 신문에 발표했다. 그러나 최근 기표소 총책임자라는 인물1)이 군부의 주장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문서를 발표했다.2) 그는 선거인 명부의 부정확성을 인정하면서도 군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광범위한 선거부정의 근거는 없다고 반박한다. 일례로 이번 총선에서 합당한 중거로 선거부정을 신고한 건수는 287건(유권자 94건, 출마자 193건)에 불과했다. 또한 그는 전자정부(e-government) 체계가 구축되지 않은 미얀마의 행정환경에서 향후 어떤 선거에서도 선거인 명부는 시빗거리가 될 것이라고 보았다. 군사정부의 연방선거위원회 위원장도 선거인 명부의 정확도는 30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쿠데타는 왜 발생한 것인가? 두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군부의 누적된 불만과 기득권 축소의 두려움이다. 2015년 총선에서 승리한 뒤 아웅산수찌 (Aung San Suu Kyi) 당시 국민민주주의연합(NLD) 당 대표는 대통령, 군사령관과 회동한 뒤 안정적인 정권 이양에 합의했다. 그러나 아웅산수찌와 군부의 협력은 거기까지였다. 2016년 정부 출범 이후 아웅산수찌 국가고문은 군부를 국정 운영의 동반자로 인정하지 않는 듯했다.
결정적으로 NLD는 정치권에서 군부를 배제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가동했으니 그 첫번째 시도는 개헌이었다. 2020년 3월, NLD는 상·하원 의석 25퍼센트에 할당된 군부 의석수를 향후 15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줄이는 개헌안을 발의했다. 헌법 436조에 따르면, 개헌을 위해서는 상·하원 정족수의 75퍼센트가 동의해야 하므로 사실상 개헌은 불가능하고, 실제로 개헌안 투표에서도 찬성표(404표)보다 반대표(633표)가 더 많았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군부에 압박을 주는 동시에 국민에게는 군부의 정치참여가 명분이 없음을 확인시키는 것이었다. 향후 정부에서의 지속적인 개헌 시도를 암시하는 것이기도 했다.
작년 총선에서 NLD의 승리는 기정사실화됐으나 2017년과 2018년 보궐선거에서 NLD가 연거푸 패배했고, 특히 소수종족 지역에서 NLD의 민심은 이반했다. 하지만 선거 일주일 전 군부가 선거 결과를 인정할 수 없을 것이라는 엄포를 놓자 위기감을 느낀 국민은 NLD를 선택했고, 이에 따라 NLD는 2015년 총선보다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할 수 있었다.3) 이로써NLD는 차기 정부(2021~25년)에서 군부를 더욱 압박할 동력을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았다. NLD의 지난 5년이 시행착오의 시기였다면, 향후 5년은 군부와 불안한 동거를 청산할 절호의 기회인 셈이었다.
그러나 아웅산수찌와 NLD는 군부가 사활적 이익집단이라는 사실을 순간 망각한 듯하다. 선거부정이라는 군부의 주장은 허울에 불과할 뿐 정작 군부는 그들 불만을 정부에 토로하면서 정부가 자신들을 예우해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쿠데타 이전 군부와의 회담 중 타협이나 포섭의 미학을 끌어내지 못한 아웅산수찌의 정치적 기술이 아쉽다. 아웅산수찌의 참모와 측근은 군부가 언제든지 정치에 개입할 수 있으며, 퇴로를 열어놓지 않고 이들을 압박만 하면 역효과가 발생할 것을 진즉 우려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성역(聖域)에 있는 성인(聖人)인 아웅산수찌에게 직언을 할 참모는 없었다. 아웅산수찌는 자신을 지지한 국민에게 군부가 불순한 의도를 갖고 있다고 호소함으로써 국민의 일상을 잃어버리게 한 쿠데타만큼은 막았어야 했다. 이번 선거에서도 드러났듯이 국민의 80퍼센트 이상이 NLD를 지지하기 때문에 군부의 행동 이전에 이들을 제어할 방법은 있었을 것이다.
둘째, 이번 쿠데타는 미얀마 군부, 즉 땃마도(Tatmadaw)의 집단행동이아니라 민아웅 흘라잉(Min Aung Hlaing) 군사령관의 개인적 야욕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다.4) 민아웅흘라잉을 만난 몇몇 외교관에 따르면, 그는 아웅산수찌를 신뢰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았으며, 민간정부와의 조화에 관심이 없는 인물이다.5) 이런 이유로 이미 그는 두차례에 걸쳐 군부의 정치개입, 즉 쿠데타를 언급한 적이 있다. 먼저 2016년 11월, 그는 국방대학(NDC) 연설에서 정부가 법치를 존중하지 않고 무장단체를 제어하지 않는다며 국가비상사태를 언급했다.6) 2017년 8월에는 로힝자족(Rohingya) 문제 해결을 위한 국가진상조사위원회에 외국인 참여를 반대하며 다시 쿠데타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는 분명히 권력욕이 있는 것 같다. 작년 6월 러시아 방문 당시 러시아국영방송에서 헌법에 따라 지금보다 더 높은 직위(authorities)에 오를 수 있다는 인터뷰 진행자의 언급에 "항상 그러한 야망이 있다"고 화답했다.7)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작년 총선에서 NLD가 전체 의석의 50퍼센트를 확보하지 못하고, 군부 자동할당 의석을 포함해 군부 후원 정당인 연방단결발전당(USDP)-소수종족 정당 간 연합을 통해 반NLD 전선을 구축한다. 이 전선은 군부 몫으로 할당된 대통령 후보로서 자천(自薦)한 민아웅흘라잉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킨다.8) 작년 의회 내 개헌 투표 표결 수, NLD의국민적 인기 저하, 소수종족 지도자의 민아웅흘라잉의 포섭 등 상황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NLD의 예상 밖 승리로 인해 그의 시나리오는 휴지조각이 됐다.
한편, 복무규정에 예외를 두어 임기(5년)를 연장한 그는 오는 7월 퇴역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이루지 못한 권력욕만큼이나 그에게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가족의 막대한 부 축적뿐 아니라 신변을 지켜야 한다.9) 군부 수장으로 자리매김해온 지난 10년 동안 그를 제어할 인물은 없었다. 그러나 그의 선배들의 말로는 행복하지 않았다. 그의 전임인 딴쉐(Than Shwe)장군은 자신을 성장시켜준 네윈(Ne Win)과 그의 족벌을 무참히 다뤘다. 현재 딴쉐의 족벌은 안전해 보이지만 그 미래는 알 수 없고, 그가 후원한 기업들은 더는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권력은 영원할 수 없어 보인다. 민아웅흘라잉의 후임으로 거론되는 쏘윈(Soe Win) 부사령관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군부는 스스로의 계보를 아버지와 자식 관계라고 떠들어왔는데, 그것은 주종관계가 확고할 때나 적용 가능한 것이다. 손에 쥔 권력을 어떠한 보상도 없이 내려놓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탱천天)한 노욕(老慾)과 안전한 노후를 보장받을 출구전략은 서로 갈등한다.
정책과 규제는 기업 비용 구조와 시장 접근성을 단번에 바꿀 수 있다.
규제 변화는 실적보다 늦게 반영되는 경우가 많아 선제적으로 읽을 필요가 있다.
같은 정책이라도 업종별 영향이 크게 다르기 때문에 세부 내용을 확인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