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포르마시옹

소리 없는 위기: 점자도서관의 침묵

조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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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펙셀
사진= 펙셀

 

서울 노원구의 한 조용한 거리, 31년 동안 시각장애인들의 '눈' 역할을 해 온 서울점자도서관이 지난해 말 문을 닫았다. 책장 넘기는 소리, 점자 정보단말기의 기계음, 시각장애인들의 활기찬 대화로 가득했던 이곳은 이제 적막만이 감돈다.

"여기가 우리의 세상이었어요. 책을 읽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친구들과 소통하는... 그런데 이제 그런 곳이 하나 줄어들었죠." 서울점자도서관을 자주 찾던 김민수(가명, 45세) 씨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서울점자도서관의 폐관은 단순히 하나의 도서관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이는 시각장애인의 교육권과 정보 접근성, 나아가 사회적 포용성이라는 중요한 문제와 맞닿아 있다.

줄어드는 예산, 커지는 고민

서울시는 장애인도서관 지원 예산이 꾸준히 증가했다고 주장한다. 2022년 5억9000만원, 2023년 5억9500만원, 2024년 6억1600만원으로 최근 3년간 예산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상황은 다르다.

2018년과 2019년 평균 지원금(7억5000만원)과 2022년부터 2024년까지의 평균 지원금(5억9800만원)을 비교해보면, 연간 1억5200만원이나 줄어든 셈이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실질적으로는 더 큰 폭의 감소다.

"예산이 줄어든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예산 배분 방식입니다." 윤소희 한국시각장애인도서관협의회 사무국장의 말이다. 서울시는 전체 지원 예산 중 70%를 균등 배분하고, 30%는 실적에 따라 차등 배분하고 있다. 이 방식은 점자도서관들 간의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윤 사무국장은 "장애인도서관들이 서로 협력하기보단 사업을 숨기며 출혈 경쟁을 벌이곤 합니다. 지원 예산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서죠"라고 설명했다. 이는 결국 시각장애인들에게 제공되는 서비스의 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이용률 저조의 숨은 원인

서울점자도서관 폐관의 주요 이유 중 하나로 '이용률 저조'가 꼽혔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인 현상일 뿐, 그 이면에는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국립국어원의 '2021년 점자 출판물 실태 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우리나라 등록 시각장애인 25만2703명 중 점자 사용이 가능한 비율은 고작 9.6%에 불과하다. 10명 중 9명이 점자를 읽지 못한다는 뜻이다.

"전국적으로 점자 교육 활성화가 시급합니다." 류영태 경기도시각장애인복지관 점역교정사는 "충청도,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 지역은 점자 교육이 활성화돼 있지 않아요. 전주에 사는 시각장애인분이 점자 시험을 보고 싶다고 찾아왔지만, 수업을 몇 번 받다 거리 문제로 중도 포기했어요"라고 설명했다.

현재 전국에 맹학교는 12개, 시각장애인복지관은 15개에 불과하다. 특히 지방의 경우 점자를 가르칠 인력마저 부족한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점자도서관 이용률이 높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사진= 펙셀
사진= 펙셀

점자도서관, 단순한 도서관 이상의 존재

점자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빌려주는 공간이 아니다. 시각장애인들의 소통 창구이자 교육의 장이며, 세상과 만나는 '창'인 것이다.

서울점자도서관은 폐관 전까지 작가와의 만남, 점자 악보를 활용한 음악회 등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점자를 해독하지 못하는 점맹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교실도 꾸준히 열었다. 또한 비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점역·교정사 교육 프로그램 '훈맹정음'도 매년 무료로 진행했다.

중도 시각장애인 정상민(63) 씨는 올해 초부터 노원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일주일에 두 번 점자 교육을 받고 있다. "시각을 잃은 후 처음에는 우울증이 와서 집에만 있었어요"라며 "지금은 힘들지만, 한 글자 한 글자 읽고 써 나갈 때 기분 좋고 뿌듯합니다"라고 말했다.

김두현 노원시각장애인학습지원센터 센터장은 "점자 교육은 실명한 시각장애인의 인생에 엄청난 긍정적 영향을 미칩니다"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점자도서관은 단순한 도서관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전문가들의 제언: 해결책을 찾아서

전지혜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역 내 점자도서관 등 점자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은 수요와 공급을 고려해야 합니다"라며 "공급량과 접근성에 문제가 있다면 대안을 찾아야 합니다. 정부와 기업, 시민이 힘을 합쳐야 해요"라고 강조했다.

김종인 한국사회복지정책연구원 원장은 "시각장애인의 교육을 위한 공간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라며 정부와 지자체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점자도서관은 시각장애인의 사회 참여를 돕는 중요한 거점입니다. 이를 위한 정책적 지원이 시급합니다."

새로운 대안: 디지털 기술의 활용

최근 인공지능(AI)과 음성인식 기술의 발전으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AI 점자 교육 전문가 이태양 박사는 "음성 기반 점자 학습 앱이나 AI 점자 번역기를 개발하면 시각장애인의 점자 학습과 정보 접근성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 어디서나 점자를 배우고 연습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습니다. 또한 AI가 일반 텍스트를 실시간으로 점자로 변환해주는 기술도 개발 중입니다. 이런 기술들이 상용화되면 점자도서관의 역할을 보완하고 확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크라우드소싱을 활용한 온라인 점자 교육 플랫폼 구축도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를 통해 전국의 점자 교육 전문가들과 시각장애인들을 연결하여 지역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사회적 인식 개선의 필요성

점자도서관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사회적 인식 개선이 필수적이다. 시각장애인 박민우(가명, 38세) 씨는 "점자는 우리의 눈이자 세상과 소통하는 도구"라며 "점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필요합니다"라고 호소했다.

"점자는 단순한 문자가 아니라 세상과 소통하고 지식을 얻으며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점자의 중요성을 모르고 있습니다. 점자도서관이 줄어드는 것도 이런 인식 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침묵 속의 외침: 시각장애인들의 목소리

서울점자도서관 폐관 이후, 많은 시각장애인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기적으로 서울점자도서관을 이용해 온 이영희(가명, 52세) 씨는 "도서관이 없어진 후, 책을 읽거나 새로운 정보를 얻기가 훨씬 어려워졌어요"라고 말했다.

"예전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도서관에 가서 새 책도 빌리고, 다른 시각장애인 친구들과 이야기도 나누곤 했어요. 그게 제 삶의 큰 낙이었죠. 지금은 그런 기회가 없어져 많이 아쉽습니다."

또 다른 시각장애인 최재호(가명, 29세) 씨는 취업 준비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저는 점자도서관에서 취업 정보도 얻고, 면접 준비도 했어요. 점자로 된 이력서 작성법도 배웠고요. 이제 그런 지원을 받을 곳이 줄어들어 걱정입니다."

결론: 점자도서관의 위기, 우리의 선택은?

점자도서관의 위기는 단순히 한 시설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포용적이고 소수자의 권리를 존중하는지를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다.

정부와 지자체, 기업, 시민사회가 힘을 모아 점자 교육의 확대와 점자도서관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는 시각장애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포용성과 다양성을 높이는 길이기도 하다.


이 기사는 공공 데이터와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재구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