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 쓰려면 돈 더 내세요”…8월 16일부터 바뀌는 자동차보험 부품 규정, 혜택일까 함정일까
오는 8월 16일부터 자동차 사고 차량을 보험으로 수리할 때 제조사 순정부품(OEM) 대신 국토교통부가 ‘동일 또는 유사’ 성능을 인정한 ‘품질인증부품’을 우선 적용하도록 하는 자동차보험 표준약관 개정안이 전면 시행된다. 보험사는 인증부품 가격을 기준으로 보험금을 산정하고, 차주는 정품 부품 교체를 원할 경우 차액을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 무사고 할인 등 다른 요인과 달리 ‘부품 가격’이 보험금 산정의 출발점이 되기 때문에 사실상 대체부품이 기본값이 된다. 소비자단체와 정비업계는 “사고 피해자의 선택권을 행정 편의로 박탈한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품질인증부품 제도는 범퍼·펜더·헤드램프·도어 패널 등 사고 빈도가 높은 외장 부품과 소모성 부품을 중심으로 총 127개 품목, 1 천7백여 개 제품에 적용된다. 국산·수입차를 모두 포괄하지만 인증 대상이 주로 승용차 부품이라 상용차엔 즉각 적용되기 어렵다. 가격은 순정 대비 평균 35~40 % 저렴하다. 보험개발원이 시속 56 ㎞ 정면충돌시험을 실시한 결과 인증부품 차량과 정품 차량 모두 ‘우수’ 등급을 받아 안전성 차이가 없었다. 국산차 범퍼는 22만 원(OEM) 대 14만 원, 수입차는 100만 원 대 60만 원으로 격차가 더 컸다. 국토부는 “성능이 같다면 더 싼 부품을 쓰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논리를 내세운다.
그러나 소비자 불신은 만만치 않다. 청와대 국민청원 제도와 별도로 운영되는 행정안전부 ‘청원24’에는 “품질인증부품 강제 도입을 철회해 달라”는 글이 올라온 지 나흘 만에 8 천 명 넘게 서명했다. 인증기관으로 지정된 한국자동차부품협회(KAPA)가 사실상 단일 민간단체이고, 인증과 사후 관리 인력이 6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부품 품질을 누가 책임지느냐”는 의문이 쏟아졌다.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대체부품 상당수가 중국산이라면 안전보다 비용을 택한 결정”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현장 적용 가능성도 녹록지 않다. 인증부품 보험 지급 비중은 2023년 0.5 %에 그쳤고, 시장 점유율 1 %를 넘는 품목이 손에 꼽힌다. 재고가 적어 정비업체가 수리를 거절하거나 부품을 기다리느라 렌터카 비용이 늘어나는 사례가 이미 보고됐다. 업계 관계자는 “대체부품이 없는 차종은 결국 정품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 보험금은 인증부품 가격을 기준으로 깎이고 차주는 추가 부담을 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저가 부품을 강제하다 오히려 사회적 비용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경고다. KBS News
정부·금융당국은 “품질인증부품 활용률이 30 %만 돼도 연간 부품비 1 조 원 이상을 줄여 자동차보험료를 평균 3 %가량 낮출 수 있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제시한다. 하지만 산식은 비공개다. 학계와 소비자단체는 “부품비가 전체 수리비의 절반 수준인데, 공임·도장·전자부품 원가 상승 요인을 고려하지 않으면 보험료 인하 폭은 1 %도 안 될 수 있다”고 반박한다. 대한금융신문은 “현행 구조로는 ‘싼 부품=보험료 하락’ 공식이 성립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손해보험사들은 제도 시행을 반색한다. 올해 상반기 5대 손보사의 자동차보험 누적 손해율은 82.6 %로 손익분기점(80 %)을 웃돌았고, 집중호우 피해까지 반영되면 더 나빠질 전망이다. 업계는 “부품비만 절감돼도 손해율이 1~2 %포인트 내려갈 것”이라며 제도화를 건의해 왔다. 소비자들은 “3 % 보험료 인하를 약속하고 2 % 손해율 개선을 노리는 것이라면, 결국 보험사 몫이 더 크다”고 꼬집는다.
해외 사례는 상반된 방식으로 균형을 맞춘다. 미국 캘리포니아·뉴욕 등은 비‑OEM 부품 사용 시 견적서에 붉은 글씨로 고지하고 차주 서명을 받아야 한다. 유럽연합은 디자인권 ‘리페어 클로즈’를 통해 대체부품 시장을 육성하면서도 최종 선택은 소비자에게 돌린다. 전문가들은 “원가 절감과 소비자 권리 보호를 동시에 추구하는 모델을 참고해, 동의 절차·품질보증·책임 분담을 제도에 녹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결국 관건은 투명한 데이터와 책임 구조다. 정부가 약속한 보험료 3 % 인하 근거, 품질 시험 결과, 공급망 확충 계획을 공개하지 않는 한 ‘보험사 배만 불린다’는 불신은 계속될 공산이 크다. 소비자 동의 절차, 하자 발생 시 책임 소재, 인증기관 다원화 같은 보완책이 함께 마련돼야 이번 개정이 ‘비용 절감’이 아닌 ‘부품 폭탄’으로 기록되지 않을 것이다.
한편 국토교통부와 금융감독원은 “소비자 설명 의무를 강화하고, 하자 발생 시 부품 제조사·보험사가 공동 책임을 지도록 하는 방안을 약관 유권해석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구속력 있는 법령이 아닌 ‘운영지침’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커 소비자 보호 장치가 실효성을 갖출지는 미지수다. 제도 시행까지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소비자·정비업계·보험사 간 이해 충돌이 좁혀지지 않으면, 시행 첫날부터 소송과 분쟁이 쏟아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보험료 인하가 현실이 되려면 ‘3 %’라는 숫자를 근거로 입증하고, 부품 선택권·품질보증·분쟁조정 절차를 법령에 박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개정안은 보험사 손해율만 낮추고 국민에게는 가격·안전·가치 세 가지 폭탄을 돌리는 결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