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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째 주 역사로 보는 세상] 원고는 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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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요약
1991년 8월 소련의 실패한 쿠데타 사건을 미하일 불가코프의 소설 『거장과 마르가리타』와 비교하며, 권력이 정보 통제로 현실을 지배하려 해도 진실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복제되고 확산된다는 메시지를 분석한다.

1991년 8월 19일, 모스크바. 탱크가 시내로 진입했다. 소련 보수파가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크림반도 별장에 가두고 쿠데타를 선언한 날이었다. 그들은 전화선을 끊고, 방송국을 장악하고, 신문사를 폐쇄했다. 정보를 차단하면 현실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72시간 만에 쿠데타는 실패했다. 시민들이 팩스와 전화로 진실을 퍼뜨렸기 때문이었다.

미하일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1930년대 스탈린 시대에 쓰였다. 검열관들이 원고를 압수하고 불태웠다. 불가코프는 기억에 의지해 다시 썼다. 소설 속 악마 볼란드는 말한다. 원고는 타지 않는다고. 이 문장은 소련 체제 전체에 대한 도전이었다. 권력이 진실을 태워도, 진실은 재에서 다시 살아난다는 선언이었다.

쿠데타 당일 옐친은 탱크 위에 올라서서 시민들에게 저항을 호소했다. 국영방송은 이 장면을 내보내지 않았다. 하지만 외신 기자들의 카메라가 있었고, 팩스기가 있었고, 단파 라디오가 있었다. 정보는 통제되지 않았다. 원고는 타지 않았다. 30년이 지난 지금, 러시아에서는 VPN 없이 구글에 접속하기 어렵다. 텔레그램 차단 시도가 반복된다. 그러나 불가코프의 명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디지털 시대의 검열은 불가코프 시대보다 정교해졌다. 삭제된 게시물은 아카이브에 남고, 차단된 사이트는 미러로 복제된다. 원고는 이제 종이 위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클라우드 서버에, 블록체인에, 수백만 개의 스크린샷에 존재한다. 권력은 여전히 불을 지르려 하지만, 재가 되기 전에 원고는 이미 수천 곳으로 퍼져 있다.

소련이 붕괴한 뒤 불가코프의 소설은 러시아 문학의 정전이 되었다. 금지된 책이 교과서가 된 것이다. 이 역설이야말로 불가코프가 남긴 가장 강력한 메시지다. 태운 자는 잊혀지고, 태워진 원고는 살아남는다. 오늘날 인터넷이 차단되고 언론이 통제되는 곳마다, 이 명제는 시험대에 오른다. 그리고 매번, 원고는 타지 않는다.

권력이 정보를 통제하려는 시도는 동서고금을 막론한다. 진시황의 분서갱유부터 나치의 도서 소각, 냉전 시대의 검열에 이르기까지 지배자들은 문자를 두려워했다. 그러나 불가코프의 명제가 증명하듯, 억압된 텍스트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지하로 스며들어 더 강력한 형태로 되살아난다. 소련 시대의 사미즈다트 지하출판물이 결국 체제 붕괴의 씨앗이 된 것처럼 말이다.

오늘날 정보 통제의 양상은 더욱 정교해졌다. 차단이 아니라 과잉으로, 검열이 아니라 혼란으로 진실을 묻는다. 가짜뉴스와 딥페이크가 범람하는 시대에 원고는 타지 않지만 수백만 개의 가짜 원고 속에 파묻힐 수 있다. 진실이 사라지지 않는 것과 진실을 찾아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사실을, 불가코프는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4년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뉴스 신뢰도는 28.7%로 조사 대상 46개국 중 40위에 머물렀다. 온라인 허위 정보 접촉 경험률은 82.4%에 달했다. 디지털 시대에 원고는 타지 않지만, 진위를 구별하는 능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진 셈이다.

이 기사를 주목해야하는 이유
1
정보 통제와 진실

권력의 정보 통제에도 진실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확산된다는 역사적 교훈을 보여준다.

2
디지털 시대의 검열

현대의 검열이 과거보다 정교해졌지만, 정보 복제와 확산의 속도도 빨라졌음을 조명한다.

3
문학의 저항

불가코프의 소설이 검열을 뚫고 정전이 된 과정은 예술과 진실의 힘을 상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