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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보다 9월 둘째주] 비자와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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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12일 인천국제공항에서 미국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 이민 단속으로 구금됐던 한국인 근로자 약 300명이 귀국했다. 오늘 우리는 동맹의 투자 약속과 현장의 비자 제도 사이에서 사람의 존엄을 어떻게 지킬지 묻는다.

사건의 발단은 9월 4일이었다. 미국 이민세관단속국, FBI, ATF가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전기차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을 급습해 현장에서 475명을 연행했다. 수갑과 족쇄가 채워진 채 단속 차량으로 이송되는 장면은 ‘공급망 동맹’이라는 말의 이면을 한국 사회에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이후 한국 정부는 석방과 송환 협상에 착수했고, 미측과는 한국인 기술자에 대한 별도 비자 신설을 검토하는 워킹그룹 논의가 병행됐다. 사건을 둘러싸고 미국 측은 일부 ‘훈련용 잔류’ 제안을 내놨지만, 협상은 전세기 귀국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9월 12일, 가족과의 상봉이 공항에서 이루어지며 일단의 수습 국면이 열렸다.

여파는 수치로도 드러난다.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공장은 76억 달러 규모로 올해 가동을 목표로 했으나 이번 사태로 최소 2~3개월 지연이 불가피해졌다. 대규모 대미 투자·관세 감축을 둘러싼 협상은 영향을 받았고, 정부는 투자 계획의 재점검 가능성을 시사했다. 9월 14일 기준 관세 협상은 ‘평행선’이라는 보도가 이어졌다.

이 사건은 공급망 동맹이 곧 사람의 이동 보장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시켰다. 현장 숙련 인력의 회색 비자 관행, 원청·하청 구조, 외주 인력의 국적과 신분은 기업과 정부의 ‘투자안보’ 담론 바깥에 놓여 있었다. 단속의 순간, 글로벌 프로젝트는 숫자와 계약서의 문장만으로 사람을 보호하지 못했다.

그러나 제도는 협상보다 느리더라도 더 멀리 간다. 새로운 비자 범주가 만들어지더라도 현장 안전, 노동권, 책임 연쇄가 문서로 명문화되지 않으면 위험은 반복된다. 비자 한 장으로 존엄을 외주화할 수는 없다. 공항에서의 환호는 시작일 뿐, 제도 문장의 정밀도가 곧 다음 위기의 크기를 결정한다.

파친코 이민진(2017). 부산 영도의 하숙집에서 시작해 재일 조선인 4대가 1910년대부터 1989년까지 차별과 생존, 이동과 노동의 역사를 통과하는 이야기다. 타국의 규칙 속에서 일하고 가족을 부양하는 인물들의 선택이 서사의 중심을 이룬다.

공장의 규칙과 가족의 존엄이 충돌한다는 점, 제도가 삶을 늪으로 만들 때 개인이 편법과 응급처치 사이를 오간다는 점, 귀국과 잔류의 결정이 늘 불완전한 정보 위에서 내려진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과 이 소설은 맞닿아 있다. 작품의 첫 문장은 이렇게 말한다.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 문장은 배신당한 역사 탓만으로는 내일의 제도를 만들 수 없다는 냉정함을 일깨운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투자안보, 이주노동, 비자개혁을 한 테이블에 올려 ‘협상 성과’가 아니라 ‘현장 변화’로 귀결시키는 일이다. 작업장 출입증, 숙소, 안전교육, 고용계약과 책임 연쇄가 어떻게 문서로 묶이는지 점검해야 한다. 비자가 기술을 부르고, 기술이 사람을 부르고, 사람을 존엄이 지키는 가장 단순한 순서를 우리는 다시 세울 수 있는가.

인천 활주로의 환호가 사라진 뒤에도 질문은 현재형이다. 다음 비행편은 누구를 어디로 데려갈 것인가. 존엄은 협상의 부속서가 아니다.

한국인 해외 취업 비자 발급 현황
출처: 외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