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9월 26일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본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정부 전산 647개 시스템이 멈췄다. 오늘 우리는 행정의 디지털화가 편의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 인프라라는 사실을 어떤 기준과 예산, 어떤 책임 구조로 감당할지 자문해야 한다.
발단은 무정전전원장치실의 리튬배터리 폭발로 추정되는 발화였다. 불길은 5층 전산실을 중심으로 번졌고 전산장비 740대와 배터리 384대가 전소했다.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해 화재 직격탄을 맞지 않은 서버까지 일시 셧다운하면서 대전 본원이 맡는 647개 업무시스템이 일제히 중단됐다. 국민신문고, 인터넷우체국, 복지로, 정부24, 나라장터 등 생활·산업 서비스가 동시다발로 멈춘 장면은 전자정부의 단일 실패 지점을 드러냈다.
진화는 9월 27일에 끝났지만 여파는 길었다. 정부는 네트워크·보안 장비를 세우며 복구에 착수했고, 9월 28일 기준 551개 시스템이 재가동, 직접 손상된 96개는 장기전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여권, 우편·금융, 복지, 민원 발급 같은 기본 기능이 흔들리자 비상 창구 개방과 수동 처리 지침이 병행됐다. 대통령은 컨틴전시 플랜의 부재를 공개적으로 질타했고, 각 부처에 예산·대응계획 보완을 지시했다.
사건은 곧 제도와 기술의 좌표를 흔들었다. 2022년 ‘카카오 먹통’ 이후 이중화·보고 의무를 강화하는 법제 보완이 있었지만, 이번 사태는 공공 인프라의 실제 이원화·재해복구 체계가 설계와 운영 모두에서 미달이라는 사실을 노출했다. 민간 플랫폼 규율을 넘어, 국가 핵심 데이터센터의 이중화·지리적 분산·상호 대체성, 그리고 정례 모의훈련의 의무화가 정책 테이블의 정중앙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공공·민간·지역센터 간 표준 불일치와 예산·책임의 분절은 여전히 발목을 잡는다.
전문가들은 복잡계-긴밀결합 시스템의 상호작용 실패를 지적한다. 전력·냉각·소방·네트워크가 얽힌 데이터센터는 작은 결함이 대규모 장애로 증폭되기 쉽다. 화재가 배터리 단위에서 시작돼도, 냉각과 전력 보호장치, 화재·연기 대응, 자동 셧다운 로직이 ‘연쇄 안전망’처럼 작동해야 한다. 이번 중단은 안전망의 각 고리가 충분히 느슨하게 설계되지 못했음을 시사한다.
이 맥락에서 떠올릴 책은 찰스 페로의 '노말 액시던트'(1984)다. 고위험 기술 시스템에서 복잡한 상호작용과 긴밀한 결합이 우연이 아닌 ‘정상 사고’를 낳는다는 논지로, 대형 사고를 조직·설계의 산물로 읽어낸다. 첫째, 단일 실패 지점 제거보다 결함의 확산 경로를 분리하는 구조가 중요하다는 점, 둘째, 인간 운영자의 즉흥 대응만으로는 시스템적 취약을 상쇄할 수 없다는 점, 셋째, 훈련된 상호견제와 독립적 점검의 제도화 없이는 복구도 위험하다는 점을 일깨운다. 이번 화재는 이 '긴밀결합의 역설'과 함께, 공공 클라우드 전환과 이원화, 실전형 재해복구 훈련이 선택이 아니라 의무임을 상기시킨다.
오늘 우리에게 남은 질문은 디지털 주권, 이중화, 책임 소재다. 국정 전산의 지리적 분산과 상호 대체성은 어느 수준까지 의무화할 것인가, 표준과 예산은 중앙과 지자체, 공공과 민간 사이에서 어떻게 매칭할 것인가, 배터리·전력·냉각·방재·망 운영의 다중 공급망을 어떤 인증·감사 체계로 묶을 것인가, 장애 시 민원 중단을 최소화하는 ‘아날로그 백업’과 재난 커뮤니케이션은 어디까지 준비돼 있는가. 개별 기관의 선의가 아니라 법·예산·감사의 촘촘한 설계가 답이다.
이번 주의 뉴스는 기술의 문제가 곧 행정의 문제임을 확인시켰다. 대국민 서비스는 중단의 순간부터 국가 신뢰의 시험대로 변한다. 우리는 이제 묻는다. 데이터센터는 누구의 책임이며, 어떤 실패를 미리 가정해 어떻게 나눠질 것인가. 백업은 사치가 아니라 의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