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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보다 10월 둘째주] 전산망 블랙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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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부가 국가 전산망 복구율 33.6%를 공식 발표했다. 오늘 우리는 행정의 심장이 멈춘 뒤 되살리는 과정이 어떻게 공공 신뢰를 만들거나 무너뜨리는지, 눈앞의 복구율 숫자가 무엇을 가리고 보여주는지 따져본다.

사태의 발단은 9월 26일 20시 15분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전산실에서 시작된 무정전전원장치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였다. 불길은 약 10시간 만에 잡혔지만, 업무시스템 647개가 동시에 멈췄다. 위기경보는 심각 단계로 격상됐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가동됐다. 숫자는 담담했지만 파장은 일상으로 번졌다. 주민센터, 법원 전자소송, 각종 온라인 민원이 잇달아 비상 운영으로 전환됐다.

이후 열흘이 지나 10월 5일 기준 복구율은 20.4%였고, 1등급 핵심업무 22개를 포함해 132개 시스템이 먼저 살아났다. 8일에는 복구율 25.8%가 공표됐고, 11일에는 33.6%로 올라섰다. 혼선도 있었다. 전체 장애 시스템 수가 647개에서 709개로 재산정되며 관리 체계의 빈틈이 드러났다. 복구의 속도와 순서는 합리적이었지만, 경로와 현황을 공개하는 방식은 여전히 설명이 부족했다.

현장의 과정은 기술과 행정의 경계에서 지연과 압박이 교차하는 풍경이었다. 행안부는 등급제에 따라 국민 안전과 재산에 직결되는 시스템을 최우선 복구했지만, 한편으로는 배터리 교체 권고 미이행, 백업·이중화 미흡, 공정 관리의 취약성 등 전자정부의 낡은 관성이 동시에 노출됐다. 불이 꺼진 뒤에야 보이는 관리의 구멍이 시민의 대기 시간과 발품, 그리고 불신의 총량으로 환산됐다.

이 사건의 시대적 의미는 전자정부의 편의 뒤에 숨어 있던 위험의 얼굴을 제도적 언어로 끌어낸 데 있다. 정부는 디지털 인프라 구조 개선과 고도화를 약속하며 다음 단계로의 전환을 말했지만, 그러나 전환은 선언이 아니라 설계다. 기술을 중층화하고 백업을 강화하는 일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책임의 맵과 점검의 주기를 법제화하고, 위험이 현실이 됐을 때의 소통 프로토콜을 표준화해야 한다. 그래야 복구율이라는 숫자가 공감의 단위가 된다.

 

제5의 위험 마이클 루이스(2018). 저자는 미국 연방 행정의 보이지 않는 업무가 어떻게 리스크를 흡수하고, 정권 변화와 예산 삭감 속에서 어떤 취약성이 증식하는지 추적한다. 핵심은 화려한 전면이 아니라 창고, 데이터, 매뉴얼을 움직이는 사람과 절차의 지속성이다. 보이지 않는 곳이 국가. 이 짧은 문장은 이번 사태의 교훈과 겹친다. 배터리의 수명표, 이중화의 스위치, 위기보고의 루트 같은 비가시적 관리가 곧 시민의 시간과 권리라는 사실, 그리고 그 연결을 지키는 사람의 숙련이 제도 그 자체라는 자명함이다.

오늘 우리에게 남는 질문은 세 가지 축으로 모인다. 재난대응은 시스템의 복원력만이 아니라 투명한 설명 책임까지 포함하는가, 데이터주권은 외주와 하도급의 고리를 어떻게 관리하는가, 행정신뢰는 숫자와 함께 시민의 체감 불편을 어떻게 줄이는가. 복구율 33.6%라는 수치가 다음 주 80%가 되더라도, 절차와 기록, 점검과 공개의 표준이 바뀌지 않으면 신뢰는 회복되지 않는다.

사건의 상징은 이렇다. 불씨는 장비에서 났지만 불신은 설명의 결핍에서 번졌다. 우리는 다음 정전이 아니라 다음 설명을 준비하고 있는가. 안전은 기술이 아니라 습관에서 완성된다.

국가 주요 전산시설 장애 발생 건수
출처: 행정안전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