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 4대 강국을 선포한 날, 격납고 밖에 남은 사람들
지난 10월 20일 오전 경기 고양시 일산 킨텍스. 유리 천장 아래 회색 전투기와 무인기가 줄지어 서 있고, 그 사이를 양복 차림 외교 사절단과 군 장성이 느린 속도로 걸어갔다. 한쪽에서는 초등학생들이 K-방산 무기 모형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고, 다른 쪽에서는 해외 바이어들이 자주포와 드론 설명을 들으며 수첩에 숫자를 적었다. 서울 국제항공우주·방위산업 전시회 ‘서울 ADEX 2025’ 개막식 현장이었다.
이 자리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글로벌 4대 방위산업, 항공우주 강국으로 도약시키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2030년까지 국방과 항공우주 연구·개발에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고, 세계 상위권 방산 수출국으로 올라서겠다고 강조했다. 방위산업과 우주항공을 더 이상 부수적인 산업이 아니라 국가 성장축이자 일자리 엔진으로 삼겠다는 메시지였다.
서울 ADEX 2025는 그 선언을 보여 주기 위한 거대한 전시장처럼 꾸며졌다. 주최 측 설명에 따르면 30여 개국에서 수백 개 기업이 참가했고, 역대 최대 규모의 무인·인공지능 무기 체계가 전시됐다. 활주로에서는 국산 KF-21 전투기가 곡예 비행을 선보였고, 실내 전시장에서는 자동화된 자주포, 자율주행 기능을 갖춘 무인수색 차량, 인공지능 표적 탐지 드론이 관람객의 발길을 붙잡았다. 한국이 더 이상 무기를 사오는 나라에만 머무르지 않고, 파는 나라가 됐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시키는 장면이었다.
이날 발언은 전혀 갑작스러운 구호가 아니다. 취임 이후 정부는 국방비 증액과 방산 수출 확대 계획을 잇달아 내놓았다. 내년도 국방 예산은 60조원을 훌쩍 넘는 규모로 편성됐고, 국내총생산 대비 비율도 꾸준히 높아지는 중이다. 예산 설명 자료에는 첨단 미사일 방어 체계, 우주 감시 자산, 인공지능·로봇 기반 전력 증강 같은 항목이 빼곡히 들어간다.
수출 실적도 빠르게 불어났다. 국제 평화 연구기관 통계를 보면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은 세계 무기 수출 상위 10개국 안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시장 점유율도 조금씩 높이는 중이다. 폴란드와 체결한 K2 전차·K9 자주포 대형 계약, 호주·루마니아·사우디아라비아와의 협상 확대는 이런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방산 수출액은 한때 10억달러 수준에 머물렀지만, 이제는 100억달러를 훨씬 넘는 규모가 거론된다.
숫자만 바뀐 것이 아니다. 정부와 연구기관이 내놓은 분석을 보면, 방산 수출 확대 덕분에 군수·부품·소재 산업 전반에서 수십만 개 일자리가 생기거나 유지된 것으로 추산된다. 대형 방산 기업의 시가총액과 수주 잔고는 몇 년 사이 급격히 늘었고, 지방자치단체는 항공·우주·방산 클러스터 유치를 지역 경제 회생책으로 내세운다. ‘수출 효자 산업’이라는 표현이 무겁지 않게 들리는 이유다.
10월 20일 킨텍스 격납고는 그런 기대가 한데 모인 공간이었다. 대통령, 군 수뇌부, 대기업 총수, 해외 바이어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었다. 실내에는 화려한 전광판과 설명 패널, 각국 국기가 걸려 있었고, 국산 무기는 정교하게 세팅된 조명 아래에서 하나의 산업 전시품이자 국가 브랜드 상품처럼 서 있었다.
하지만 격납고 밖으로 시야를 넓히면 전혀 다른 질문들이 떠오른다. 무엇보다 세금의 방향이다. 국방비는 한 번 올리면 다시 줄이기 어렵고, 무기 체계는 한 번 도입하면 수십 년 동안 운영비와 정비비를 계속 요구한다. 같은 기간 노인 빈곤, 청년 주거, 돌봄, 기후위기 대응에 투입할 수 있는 재원은 한정돼 있다. ‘방산 4대 강국’이라는 목표가 실제 삶의 안전과 복지를 어느 정도 끌어올리는지, 혹은 다른 영역을 얼마나 잠식하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한국 무기가 향하는 목적지도 쟁점이다. 최근 한국산 무기는 동유럽, 중동, 동남아 여러 나라로 수출되고 있다. 이들 국가 가운데는 민주주의 지수가 낮거나 인권 침해 논란이 반복되는 곳도 적지 않다. 한국 정부와 기업은 “동맹과 파트너 국가의 방어 능력을 돕는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실제로 그 무기가 국경 분쟁, 내전, 시위 진압에 동원될지 여부는 한국이 통제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판매 순간부터 무기 사용 책임은 수입국 군과 정치 지도자에게 넘어간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피해와 정치적 후과가 누구의 얼굴을 통해 한국과 연결될지까지 고려해야 한다.
노동과 지역 경제의 측면에서도 구조적 위험이 존재한다. 방산 산업은 특성상 대형 사업 몇 개에 의존하기 쉽고, 한 번 수주에 성공하면 장기간 고용과 매출을 보장하지만, 계약이 끊기면 구조조정이 급격하게 진행된다. 공장 주변 도시는 자연스럽게 군수 수주에 의존하게 되고, 시간이 갈수록 “일자리를 위해서라면 어떤 계약도 받아야 한다”는 압력이 커진다. 안전 규제, 노동권, 환경 기준이 하향 경쟁으로 흘러갈 여지가 생기는 지점이다.
이해관계 구조를 다시 그려 보면 전시장의 장면이 달리 보인다. 격납고 안에서 방산기업과 정부, 군은 투자와 수출, 안보 이익을 공유한다. 금융기관과 투자자는 안정적인 주문과 이익을 기대한다. 반면 세금을 내는 시민, 복지와 교육 예산을 집행해야 하는 지방정부, 전쟁과 무력 충돌의 현장에 살고 있는 해외 주민은 의사결정 테이블에서 한 걸음씩 멀어진 자리로 밀려난다. 전시장의 밝은 조명 안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문제는 방산 확대가 단순히 찬성·반대 구도로 정리되는 사안이 아니라는 점이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과 주변국 군비 경쟁, 미·중 갈등이 현실인 상황에서 국방력 강화를 완전히 부정하기 어렵다. 동시에, 안보를 이유로 거의 모든 결정이 비공개로 진행되고, 국회와 시민사회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좁아질수록 민주적 통제는 약해진다. ‘안보’라는 말이 정치적 책임 회피에 쓰일 위험도 커진다.
그래서 필요한 질문은 조금 더 구체적이어야 한다.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무기 수출 상대국을 골라야 할까. 군비 확대와 복지·기후·돌봄 예산 사이에서 어떤 우선순위를 세울 수 있을까. 방산 기업이 축적한 기술을 민간 제조업과 녹색 산업으로 옮겨 가도록 유도하는 장치는 충분한가. 국방비와 방산 수출 정책에 관한 정보 공개 수준을 어디까지 넓힐 수 있을까.
여기서부터는 방향보다 절차와 장치의 문제로 이어진다. 정부는 대형 방산 수출 계약에 인권·분쟁 위험 평가를 의무화하고, 일정 기준 이상 거래는 국회 보고와 공개 심사를 거치게 할 수 있다. 국방 연구·개발 예산 증가분과 기후·돌봄·주거 예산을 연동하는 재정 원칙도 검토할 수 있다. 군수 기업에는 수익의 일정 비율을 민수·녹색 기술 개발에 투자하도록 유도해, 방산 호황이 그대로 사회 전반의 전환 능력으로 이어지게 할 수 있다.
시민의 역할도 작지 않다. 국회 예산 심의, 국정감사, 지방의회 논의에서 국방·방산 항목을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거대 사업의 경제적 효과뿐 아니라 복지·환경·노동에 미치는 영향을 함께 묻는 것이 필요하다. 지역 사회 역시 방산 클러스터 유치 여부를 논의할 때 단기 고용 효과만 보지 말고, 장기적인 산업 구조와 위험 분산 방안을 함께 검토할 수 있어야 한다.
10월 20일 킨텍스 격납고 천장에는 전투기와 미사일, 드론이 촘촘히 매달려 있었다. 그 아래에서 정부와 기업, 군은 “4대 방산 강국”을 향한 미래 지도를 펼쳤다. 이제 그 격납고 바깥에서, 시민이 그 지도 위에 어떤 질문과 조건을 덧그릴 것인지가 한국 사회의 다음 과제가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