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월 3일 새벽,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의 적막은 미군 헬기의 굉음에 찢겨 나갔다. 미군은 기습 작전을 통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부부를 체포했고, 그들을 결박해 국외로 이송했다. 한 나라의 권력이 물리력에 의해 강제로 삭제되는 순간이었다.
작전은 군사적 효율성의 극치였다. 보도에 따르면 미군은 미 동부 시간 1월 2일 밤 10시 46분 명령을 하달받자마자 서반구 20여 개 기지에서 항공기 150대를 출격시켰다. 헬기는 3일 새벽 1시 1분 목표 지점을 타격했고, 오전 3시 29분 베네수엘라 영공을 벗어나 강습상륙함 이오지마함으로 복귀했다. 불과 2시간 30분 만에 한 국가의 통치권자가 ‘마약 밀매 및 돈세탁 혐의자’로 전락해 뉴욕 브루클린 구치소 독방에 갇혔다.
미국이 내세운 명분은 ‘민주주의의 회복’이다. 베네수엘라는 오랜 기간 미국의 제재와 내부 정치의 교착, 경제 기반 붕괴가 맞물려 국가 기능이 마비 상태였다. 국경을 등진 난민과 이주민이 전 세계적으로 790만 명에 이른다는 국제기구의 집계는 정권의 정당성 논쟁이 이미 생존의 문제로 치환됐음을 증명한다.
그러나 ‘단 한 명의 미군 사망자도 없었다’는 미국의 발표 뒤에는 서늘한 긴장이 흐른다. 쿠바 정부는 이번 공습 과정에서 자국 군인 32명이 전사했다고 공식 발표하며 애도를 표했다. 이는 이번 사태가 단순한 체포 작전을 넘어, 라틴아메리카 역내의 군사적 충돌로 비화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한국 외교부가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역내 긴장 완화를 촉구한다”며 원론적인 입장을 내놓은 배경에도 이러한 복잡한 셈법이 깔려 있다.
이번 사건은 국제사회에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인권’과 ‘독재 청산’을 명분으로 타국이 주권 국가의 정권 교체에 직접 개입하는 것이 정당한가. 권위주의 체제의 견고함이 내부 저항만으로는 무너지지 않는다는 현실을 인정하더라도, 외부의 무력이 개입하는 순간 ‘주권’의 경계는 허물어진다. 그렇게 세워진 다음 정권은 ‘국민의 선택’이 아닌 ‘힘의 균형’ 위에 서 있다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출발해야 한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소설 <염소의 축제>
(2000)는 이 지점에서 유효한 시사점을 준다. 도미니카공화국의 독재자 트루히요의 암살을 다룬 이 소설은, 독재의 몰락이 곧바로 공동체의 치유로 이어지지 않음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지도자를 국가와 동일시하던 우상화, 체제에 기생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침묵과 공모, 그리고 독재자가 사라진 뒤 남겨진 사람들이 겪는 혼란은 소설 속 이야기만이 아니다. “공포는 습관이 된다”는 요사의 통찰처럼, 마두로가 사라진 베네수엘라에 남은 것은 승리의 환호가 아니라, 폭력적인 통치의 관성을 어떻게 끊어낼 것인가 하는 난제다.
주권, 정당성, 책임이라는 단어는 카라카스의 새벽 위에서 서로 충돌한다. 타국 군대가 ‘민주주의’를 배달하는 순간 주권은 손상된다. 그렇다고 자국민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체제를 방치하는 것이 정당성을 담보하지도 않는다. 결국 남는 것은 책임의 몫이다. 체포 이후의 질서가 선거와 사법, 언론과 시민의 일상으로 환원되지 못한다면, 미국의 ‘구출’은 역사책에 ‘점령’으로 기록될 것이며, ‘해방’은 강대국에 의한 ‘관리’로 변질될 것이다.
정의는 승리의 결과가 아니라 절차의 과정에서 자란다. 이제 세계의 시선은 마두로가 갇힌 철창이 아니라, 베네수엘라의 텅 빈 광장을 향해야 한다. 무너진 주권을 다시 세우는 펜은 과연 누구의 손에 쥐어질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