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1월 1일. 현직 검사들이 정치권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잦아졌다. 중립적으로 보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은 늘 화두였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한 권력기관이 특정 정치 세력과 결탁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의 몫이다. 법 앞의 평등은 구호로만 남는다.
미셸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근대 사법 체계의 본질을 해부했다. 권력은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규율화한다. 검찰이라는 장치도 마찬가지다. 수사하고 기소하는 과정 자체가 사회를 통제하는 메커니즘이다. 문제는 이 메커니즘을 작동시키는 주체가 정치적 욕망을 품을 때 발생한다.
한국 검찰의 정치화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군사정권 시절엔 정권의 하수인이었고, 민주화 이후엔 때로는 개혁의 대상이 되었다가 때로는 정치의 주체가 되기를 자처했다. 검찰총장 출신이 대통령이 된 지금, 그 경계는 더욱 모호해졌다.
푸코가 말한 권력의 미시물리학이 여기서 작동한다. 검찰이 움직일 때마다 사회 전체가 긴장한다. 누가 수사 대상이 될지, 어떤 사건이 기소될지. 이 불확실성 자체가 통치의 도구가 된다. 시민들은 법 앞에 평등하기보다는 검찰 앞에 무력하다.
2022년 검찰 수사 개시 건수는 약 180만 건에 달했다. 이 중 기소된 건은 절반도 안 된다. 나머지는 불기소 처분. 검찰이 판단하기에 죄가 없거나 증거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판단의 기준은 무엇인가. 누가 그 기준을 정하는가.
검찰개혁 논의가 반복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한다는 오래된 명제.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쥔 검찰이 정치적 중립을 지킨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하지만 개혁의 방향을 둘러싼 논란도 만만치 않다. 수사권을 분리하자는 주장, 기소권을 제한하자는 주장, 인사권을 독립시키자는 주장. 각각의 대안마다 또 다른 문제를 안고 있다. 완벽한 제도란 없다. 중요한 것은 권력을 어떻게 분산시키고 견제할 것인가의 문제다.
푸코는 권력이 단순히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한다고 했다. 검찰 권력도 마찬가지다. 정의를 생산하기도 하고 불의를 생산하기도 한다. 그 생산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시민의 감시와 견제다.
권력기관의 중립성. 민주주의가 풀어야 할 영원한 숙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