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검사가 퇴근길에 멈춰 섰다. 법무연수원 동기가 정치권 행사에서 연설하는 모습이 휴대폰 화면에 떴다. 같은 선서를 했던 사람이었다.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그런데 이제 그는 특정 정당의 깃발 아래 서 있었다. 검사가 정치를 하면 안 되는 건 아니다. 다만 그 전환이 이토록 매끄러운 게 당연한가.
2024년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현직 검사들의 정치권 진출 소식이 연이어 들려왔다. 중립을 지켜야 할 검찰이 스스로 그 가면을 벗어던진 셈이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검찰개혁이 왜 필요한지 보여주는 사례'라는 평가가 나왔다. 권력기관이 정치적 중립성을 포기할 때,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간다.
미국의 정치학자 브루스 액커먼은 『우리 헌법의 살아있는 이야기』에서 권력분립이 실패하는 순간들을 추적했다. 그가 주목한 건 제도 자체가 아니라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선택이었다. 법관이든 검사든, 그들이 자신의 역할 경계를 스스로 무너뜨릴 때 민주주의는 위태로워진다고 했다.
한국 검찰의 정치화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최근처럼 노골적으로 드러난 적도 드물다. 검사들이 중립적으로 보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어쩌면 그들에게 중립은 애초부터 가면이었을지도 모른다. 권력의 도구가 되기를 거부하지 않는 검찰을 과연 믿을 수 있을까.
액커먼은 이런 상황에서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묻는다. 그의 대답은 단순하다. 감시하고, 기록하고, 잊지 않는 것. 민주주의는 완성된 체제가 아니라 끊임없이 만들어가는 과정이니까. 검찰개혁도 마찬가지다. 단번에 이뤄질 수 없다. 시민들이 계속해서 묻고 요구해야 한다.
2022년부터 2024년까지 검사 출신 국회의원 수는 꾸준히 늘었다. 21대 국회에만 20명이 넘는다. 이들 중 상당수가 현직에서 바로 정계로 넘어왔다. 법복을 벗자마자 정치인이 되는 게 자연스러운 수순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게 정상일까.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은 왜 중요한가. 그들이 다루는 사건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삶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기소 여부, 구속 여부, 수사 방향. 이 모든 결정에 정치적 계산이 개입한다면 정의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 법 앞의 평등은 구호로만 남게 된다.
조국혁신당이 내놓은 검찰개혁 4법도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 검찰의 권한을 분산시키고 견제 장치를 강화하자는 것이다. 물론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제도를 바꾸는 것보다 중요한 건 문화를 바꾸는 일이다. 검찰 스스로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 검사는 여전히 화면을 보고 있었다. 동기의 연설은 계속됐다. 국민을 위해, 정의를 위해. 같은 단어들이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었다. 그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다시 걸었다. 내일도 법정에 서야 했다. 누군가는 여전히 중립을 지키려 애쓰고 있었다. 그것만이 희망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