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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세상을 보다 2월 3째주] 청년주택

우리는 왜 집을 갖고 싶어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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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요약
서울시가 개봉역 근처에 추진 중인 청년주택 사업을 통해 청년 주거 문제를 살펴본 기사다. 저자는 현대의 집이 거주 공간이 아닌 투자 자산으로 변모했으며, 청년들이 실질적인 주거 안정을 누리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개봉역 3번 출구를 나온 김민수는 걸음을 멈췄다. 공사 중인 건물을 올려다봤다. 역세권 청년주택. 그는 신청서류를 가방에서 꺼내 다시 넣었다. 세 번째였다. 서류를 꺼냈다가 넣는 것이.

2024년 상반기 입주 예정. 청년주택이 청년주거안정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것이라고 서울시는 말한다. 김민수는 고시원 월세 35만 원을 떠올렸다. 창문 없는 방. 공용 화장실. 그래도 역세권이라 이 가격이었다.

독일의 사회학자 하르트무트 로자는 『가속하는 삶』에서 현대인의 시간 경험을 분석했다. 기술 가속, 사회 변화의 가속, 삶의 속도 가속. 이 세 가지가 맞물려 돌아간다고 그는 썼다. 흥미로운 건 주거의 문제였다. 집은 느림의 공간이어야 하는데, 현대의 집은 오히려 가속의 도구가 되었다는 지적.

김민수의 하루는 가속으로 가득했다. 첫 전철을 타고 판교로. 스타트업 개발자. 야근. 막전철로 귀가. 고시원 복도의 형광등 아래서 그는 가끔 멈춰 섰다. 이게 삶일까. 생존일까.

로자가 말하는 공명의 경험이란 무엇일까. 세계와 나 사이에 진동이 일어나는 순간. 서로가 서로에게 응답하는 관계. 그런데 가속 사회에서 공명은 사라진다.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다. 관계 맺을 여유가 없어서다.

서울시 청년 1인 가구는 2020년 기준 73만 6천 가구. 2015년 58만 가구에서 5년 만에 26.8% 증가했다. 이들 중 월세 거주 비율은 77.3%다. 보증금 평균 3,218만 원. 월세 평균 52만 원. 숫자가 말해주지 않는 것들이 있다. 좁은 공간. 높은 층간소음. 혼자 견디는 불안.

김민수는 청년주택 신청 자격을 다시 확인했다. 만 19세 이상 39세 이하. 무주택자. 소득 기준 충족. 그는 모든 조건에 해당했다. 그런데도 망설였다. 당첨될 확률이 낮아서가 아니었다.

로자의 책에서 인상적인 대목이 있다. 늦은 근대의 역설. 선택지는 늘어나는데 선택 능력은 줄어든다. 가능성은 확대되는데 실현 가능성은 축소된다. 청년주택도 그런 것일까. 또 하나의 선택지. 하지만 근본적 해결은 아닌.

개봉역 일대가 어둠에 잠겼다. 김민수는 고시원으로 향했다. 계단을 오르며 그는 생각했다. 집이란 무엇인가. 단순히 잠자는 공간인가. 아니면 삶이 뿌리내리는 곳인가.

『건축을 향해』이 청년주택을 바라보는 시선은 표면적 현상 너머의 구조를 향한다. 르코르뷔지에은 개별 사건의 원인을 개인에게 돌리는 대신, 그 사건을 가능하게 만든 사회적 조건을 추적한다. 이런 관점은 반복되는 문제의 근본 원인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청년주택 문제의 핵심은 제도와 현실 사이의 괴리에 있다. 법과 정책은 존재하지만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거나, 작동하더라도 의도와 다른 결과를 낳는 경우가 빈번하다. 르코르뷔지에이 주목하는 것도 바로 이 간극이다. 설계된 세계와 살아가는 세계 사이의 거리.

한국 사회에서 청년주택은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경제 구조, 인구 변화, 기술 발전, 세대 갈등 등 복합적인 요인과 얽혀 있다. 한 가지 변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성이 정책 입안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든다.

한국의 압축적 근대화는 청년주택 분야에서도 독특한 양상을 만들어냈다. 선진국이 수십 년에 걸쳐 겪은 변화를 불과 한 세대 만에 경험하면서, 제도적 성숙 없이 양적 팽창만 이뤄진 측면이 있다.

신청 마감일이 다가왔다. 김민수는 결국 서류를 제출했다. 기대 없이. 하지만 포기하지도 않고. 청년주택 당첨자 발표일, 그는 여전히 고시원 좁은 방에서 노트북을 켜고 있을 것이다. 가속하는 삶 속에서 잠시 멈춤을 꿈꾸며.

📊 숫자로 보는 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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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1인가구 자가 비율 (2018년)
2018년 국토교통부 주거실태조사
보증금 평균 3,218만 원. 월세 평균 52만 원. 숫자가 말해주지 않는 것들이 있다.

르코르뷔지에는 1923년 『건축을 향해』에서 집을 살기 위한 기계라고 정의했다. 백 년이 지난 지금, 한국의 집은 무엇을 위한 기계가 됐을까. 살기 위한 기계? 투자를 위한 기계? 아니면 불안을 달래기 위한 기계?

강남의 130억 건물이 70억에 나왔다는 뉴스도 같은 시기에 떴다. 경매시장의 이야기다. 절반 가격이라는 숫자가 주는 충격. 하지만 70억도 누군가에겐 평생 만질 수 없는 돈이다. 청년주택에 입주할 이들에겐 더욱 그렇다.

르코르뷔지에가 꿈꾼 건 효율적이고 기능적인 주거였다. 최소한의 공간에서 최대한의 삶을 담아내는 것. 그런데 우리는 어느새 최대한의 공간에서 최소한의 삶을 사는 게 아닐까. 집값에 짓눌려, 대출에 묶여, 그렇게.

이 기사를 주목해야하는 이유
1
청년 주거 위기

30대 1인가구의 자가 비율이 2018년 16.4%에서 2022년 13.8%로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청년들이 집을 소유할 수 없는 현실을 수치로 보여준다.

2
주거의 의미 변화

집이 거주 공간에서 투자 자산으로 변모하면서, 청년들은 거주조차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 있다. 기본적 주거권의 문제로까지 확대된다.

3
청년주택의 한계

역세권 청년주택 같은 단기 정책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나가야 하는 '시한부 위안'에 불과하며, 근본적인 주거안정을 담보하지 못한다.

30대 1인가구 자가 거주 비율
출처: 통계청 인구총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