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후 집중 읽기 모드로 전환됩니다

[책으로 세상을 보다 2월 3째주] 청년주택

우리는 왜 집을 갖고 싶어하는가

기사 듣기
건축을 향하여
건축을 향하여
르코르뷔지에
건축을 향하여르코르뷔지에 · 1923

당신의 첫 집은 몇 평이었나. 아니, 그 전에 물어야 할 게 있다. 당신은 지금 자신의 집에 살고 있는가.

개봉역 근처에 청년주택이 들어선다고 한다. 역세권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2024년 상반기 입주 예정. 청년주거안정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거라는 서울시의 설명이 따라붙는다. 그런데 청년들은 정말 안정을 원하는 걸까. 아니면 우리가 그들에게 안정을 강요하는 걸까.

르코르뷔지에는 1923년 『건축을 향하여』에서 집을 살기 위한 기계라고 정의했다. 백 년이 지난 지금, 한국의 집은 무엇을 위한 기계가 되었을까. 살기 위한 기계? 투자를 위한 기계? 아니면 불안을 달래기 위한 기계?

강남의 130억 건물이 70억에 나왔다는 뉴스도 같은 시기에 떴다. 경매시장의 이야기다. 절반 가격이라는 숫자가 주는 충격. 하지만 70억도 누군가에겐 평생 만질 수 없는 돈이다. 청년주택에 입주할 이들에겐 더욱 그렇다.

르코르뷔지에가 꿈꾼 건 효율적이고 기능적인 주거였다. 최소한의 공간에서 최대한의 삶을 담아내는 것. 그런데 우리는 어느새 최대한의 공간에서 최소한의 삶을 사는 게 아닐까. 집값에 짓눌려, 대출에 묶여, 그렇게.

청년주택이라는 이름도 묘하다. 청년이 아니면 살 수 없는 집. 나이가 들면 나가야 하는 집. 잠시 머무는 곳이라는 걸 이름부터 못 박아둔다. 안정이라는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통계청에 따르면 30대 1인가구 주거점유 형태에서 자가 비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2018년 16.4퍼센트에서 2022년 13.8퍼센트로. 매년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내려간다. 이들은 정말 집을 사고 싶지 않은 걸까. 아니면 살 수 없는 걸까.

르코르뷔지에는 빛이 가득한 집을 그렸다. 넓은 창, 옥상정원, 자유로운 평면. 하지만 지금 청년들이 사는 원룸엔 창문 하나 제대로 없는 곳도 많다.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 기계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공간들.

집은 거주하는 기계가 아니라 소유해야 할 자산이 되었다. 그 변화 속에서 청년들은 자산은커녕 거주조차 위태롭다. 역세권 청년주택이 그나마 위안이라면 위안일까. 하지만 언젠가는 나가야 한다는 시한부 위안이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살고 있는가. 그곳을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우리는 언제부터 집을 소유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게 되었을까. 그리고 그 시선은 과연 바뀔 수 있을까.

30대 1인가구 자가 거주 비율
출처: 통계청 인구총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