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후 집중 읽기 모드로 전환됩니다

[책으로 세상을 보다 3월 1째주] 최저임금

노동의 대가가 기업의 무게가 될 때

기사 듣기
불쉿 잡
불쉿 잡
데이비드 그레이버
불쉿 잡데이비드 그레이버 · 2018

런던 외곽의 한 파운드랜드 매장. 형광등 아래 진열대엔 1파운드짜리 생활용품들이 빼곡하다. 계산대 앞엔 퇴근길 장을 보러 온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다.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대부분 시간당 11.44파운드, 올해 오른 영국 최저임금을 받는다. 30년 역사의 이 기업이 매각을 결정했다. 최저임금 10퍼센트 인상과 국민보험료 상승이 직접적 이유였다.

우리에겐 익숙한 풍경이다. 최저임금 인상 때마다 반복되는 논란, 그리고 문 닫는 가게들. 하지만 정작 우리가 놓치는 것은 무엇일까. 임금이 오르면 기업이 망한다는 단순한 인과관계일까, 아니면 더 깊은 곳에 숨은 경제 구조의 문제일까.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불쉿 잡』은 현대 노동의 역설을 파고든다. 그는 묻는다. 왜 가장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적게 받는가. 청소부, 간호사, 배달 노동자 없이는 사회가 돌아가지 않는다. 그런데 이들의 임금은 늘 최저선에 머문다. 반면 없어도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일들은 높은 연봉을 받는다.

파운드랜드의 직원들도 그랬을 것이다. 매일 물건을 정리하고, 계산하고, 고객을 응대한다. 이들이 없으면 매장은 돌아가지 않는다. 그런데 이들의 임금이 10퍼센트 올랐다고 회사가 팔려야 할까. 30년간 쌓아온 사업이 최저임금 인상으로 무너진다면, 그동안의 수익은 어디로 갔을까.

그레이버는 지적한다. 현대 자본주의는 가치의 전도를 만들어냈다고. 실제로 필요한 일은 천대받고, 불필요한 일은 과대평가된다. 최저임금 논란도 이 맥락에서 봐야 한다. 문제는 임금 인상이 아니라, 애초에 그 일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은 구조다.

영국의 최저임금은 2024년 기준 시간당 11.44파운드다. 한화로 약 2만원이다. 한국은 9,860원이다. 단순 비교는 무의미하다. 물가도 다르고 사회 안전망도 다르다. 그러나 양국 모두에서 최저임금 인상이 기업 부담으로 직결되는 현상은 같다. 왜 그럴까.

답은 의외로 단순할지 모른다. 많은 기업이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낮은 임금에 기대어 수익을 내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파운드랜드도 마찬가지다. 1파운드 상품을 팔아 이익을 내려면 어디선가 비용을 줄여야 한다. 가장 쉬운 곳이 인건비다.

그레이버의 표현을 빌리면, 이들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매장 직원이 없으면 물건을 살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노동을 당연하게 여긴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비로소 그 존재가 비용으로 인식된다.

파운드랜드 매각 소식은 단순한 기업 뉴스가 아니다. 노동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던진다. 최저임금을 받는 이들이 없으면 우리의 일상은 멈춘다. 그런데도 왜 그들의 임금 인상은 늘 논란이 될까.

런던의 그 매장은 여전히 열려있다. 직원들은 오늘도 물건을 정리하고 계산대에 선다. 매각이 완료되어도 그들의 일은 계속될 것이다. 다만 주인이 바뀔 뿐이다. 그들에게 최저임금 인상은 작은 숨통이었을까, 아니면 또 다른 불안의 시작이었을까.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한국 최저임금 인상률
출처: 최저임금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