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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세상을 보다 3월 3째주] 물산업

측정되지 않는 것들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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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전쟁
물 전쟁
반다나 시바
물 전쟁반다나 시바 · 2002

152조 원. 환경부가 발표한 2024년 한국 물산업 시장 규모다. 2020년 43조 원에서 4년 만에 3.5배로 뛰어올랐다. 상하수도, 먹는샘물, 정수기 제조업이 포함된 숫자다. 물을 산업으로 분류하고 통계를 내기 시작한 건 2018년부터다.

정부 청사 회의실에서 발표된 이 수치를 두고 환경부 관계자는 K-물산업의 성장 가능성을 역설했다. 중동과 동남아시아로의 수출 전망이 밝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물이 돈이 되는 시대, 물이 경쟁력이 되는 시대라는 진단이었다.

그런데 물을 산업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은 언제부터 당연해졌을까. 상품이 되기 전 물은 무엇이었나. 공기처럼 당연히 있는 것,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져야 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인도의 물 활동가 반다나 시바는 『물 전쟁』에서 물의 상품화가 가져올 미래를 경고했다. 2002년에 쓰인 이 책은 20년이 지난 지금 현실이 되고 있다. 코카콜라가 인도 케랄라 주에서 지하수를 퍼 올려 콜라를 만들고, 마을 우물은 말라갔다. 주민들은 하루 4킬로미터를 걸어 물을 길어와야 했다.

시바는 묻는다. 강물에 시장 가격을 매길 수 있는가. 빗물의 소유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그는 물을 '커먼즈(commons)'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장의 논리가 아닌 생명의 논리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제주도 용암해수가 대기업에 독점 공급되면서 주민들과 갈등이 일어났다. 강원도 산골 마을의 먹는샘물 공장은 지하수위를 낮췄다. 물산업이 성장할수록 물 불평등은 깊어진다는 역설이 여기 있다.

물은 측정하기 어렵다. 지하수맥의 흐름, 빗물이 스며드는 속도, 습지가 정화하는 오염물질의 양. 이런 것들은 시장 가격표에 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가격이 매겨지지 않는다고 해서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152조 원이라는 숫자 뒤에 가려진 것들이 있다. 마을 공동 우물에서 물을 긷던 기억, 개울물에 발을 담그던 여름날, 빗물을 받아 마시던 할머니의 항아리. 이것들의 가치는 얼마인가.

물산업 통계가 매년 갱신될 것이다. 숫자는 계속 커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물이 상품이 되어가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잃고 있는가.

국내 1인당 일평균 물 사용량
출처: 환경부 상수도통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