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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세상을 보다 4월 1째주] 청년의 집

월세지원금이 아닌 삶의 터전을 원하는 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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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겨난 사람들
쫓겨난 사람들
매튜 데스몬드
쫓겨난 사람들매튜 데스몬드 · 2015

스물여덟 살 김지원 씨는 어제도 부동산 앱을 열었다가 닫았다.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45만 원. 그의 월급 절반이 사라지는 방 하나를 보며 손가락이 멈췄다. 정부가 청년월세를 지원한다는 소식에도 표정은 밝아지지 않았다. 월 20만 원을 받는다 해도 25만 원은 여전히 그의 몫이었다. 그가 원하는 건 대출이 아니라 집이었다.

청년안심주택에 공실이 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무주택 청년을 위해 공급했다는데 왜 비어있을까. 입지가 문제라고들 한다. 출퇴근에 왕복 3시간이 걸리는 곳에 누가 살고 싶겠는가. 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지 않을까. 우리는 청년들에게 무엇을 주고 있는가. 잠시 머물 공간인가, 아니면 뿌리내릴 터전인가.

2015년 출간된 매튜 데스몬드의 『쫓겨난 사람들』은 미국 밀워키의 빈민가를 8년간 관찰한 기록이다. 저자는 퇴거 위기에 놓인 여덟 가족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삶을 기록했다. 책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집은 단순한 주거공간이 아니라 안정과 정체성의 기반이다. 한국의 청년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원하는 건 임시 거처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설계할 수 있는 안정적인 기반이다.

데스몬드가 만난 한 여성은 아이 둘을 키우며 월세의 80퍼센트를 집주인에게 냈다. 남은 돈으로는 끼니조차 해결하기 어려웠다. 그녀는 결국 쫓겨났고, 아이들은 학교를 옮겨야 했다. 퇴거는 단순히 집을 잃는 것이 아니었다. 일자리를 잃고, 아이들의 교육이 중단되고, 지역사회와의 연결이 끊어지는 연쇄적인 붕괴였다.

한국의 청년들은 어떤가. 20대 1인 가구의 평균 주거비 부담률은 2022년 기준 29.8퍼센트다. 소득의 3분의 1 가까이를 월세로 내고 있다. 이들에게 월세지원금은 분명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일까. 매달 20만 원을 받아도 여전히 소득의 20퍼센트 이상을 주거비로 쓴다면, 그들의 삶은 얼마나 나아질 수 있을까.

데스몬드는 책에서 주장한다. 빈곤의 원인은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구조적 착취다. 집주인들은 가난한 세입자들로부터 더 많은 이익을 뽑아낸다. 수리는 미루고, 보증금은 돌려주지 않고, 작은 실수에도 퇴거를 명령한다. 가난한 이들일수록 더 열악한 조건에 더 많은 돈을 낸다. 이것이 빈곤의 역설이다.

우리 사회의 청년 주거 정책을 다시 돌아볼 때가 아닐까. 대출 한도를 늘리고 이자를 지원하는 것으로 충분한가. 월세를 보조하는 것으로 끝인가. 아니면 청년들이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주택을 충분히 공급해야 하는가. 청년안심주택의 공실률이 높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양적 공급에만 집중하고 실제 수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김지원 씨는 오늘도 출근길에 나섰다. 반지하 월세방에서 나와 만원 지하철을 탔다. 그의 가방엔 정부 지원금 신청서류가 들어있다. 하지만 그가 정말로 원하는 건 서류가 아니다. 언젠가는 자신의 공간에서, 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오는 방에서 아침을 맞고 싶다는 소망이다. 그 소망이 사치일까. 청년들이 원하는 건 대출이 아니라 집이다.

20대 1인가구 주거비 부담률 추이
출처: 통계청 가계동향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