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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세상을 보다 4월 1째주] 청년주거

빈 방이 늘어가는 도시, 집 없는 청년들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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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요약
청년안심주택의 공실이 증가하면서 청년 주거 문제의 근본적 원인을 묻는다. 기사는 리처드 세넷의 도시론을 통해 표준화된 조건으로 청년을 재단하는 정책 한계와 주택을 상품으로 보는 도시 구조의 문제를 지적한다.

청년안심주택에 공실이 늘고 있다. 청년들은 여전히 월세방을 전전한다.

무주택 청년의 주거 안정을 위해 공급한 청년안심주택. 시세보다 저렴하고 거주 기간도 보장된다. 그런데 왜 비어가는가. 정책 담당자들은 홍보 부족을 탓한다. 신청 절차가 복잡해서라고도 한다. 정말 그뿐일까.

리처드 세넷은 『살과 돌』에서 도시 공간과 인간 신체의 관계를 추적한다. 고대 아테네부터 현대 뉴욕까지, 도시는 늘 특정한 신체를 전제로 설계되었다. 광장은 시민의 몸을 위해, 게토는 추방된 자들의 몸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도시는 누구의 몸을 상상하며 지어지는가.

청년안심주택의 입주 조건을 보자. 소득 기준, 자산 기준, 연령 기준. 숫자로 재단된 청년만이 들어갈 수 있다. 그 기준에서 벗어난 이들은? 소득이 조금 높으면 탈락이다. 자산이 조금 적어도 증명이 어렵다. 비정규직은 서류가 복잡하다. 프리랜서는 더하다.

세넷이 말하는 도시의 역설이 여기 있다. 도시는 다양성을 품는다고 하면서도 끊임없이 표준화를 추구한다. 청년안심주택도 마찬가지다. 표준적인 청년, 서류로 증명 가능한 청년만을 위한 공간. 나머지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더 근본적인 질문이 있다.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저렴한 임대주택인가, 아니면 자신의 집인가. 대출 한도를 늘려주는 것인가, 집값을 낮추는 것인가. 정책은 전자만 바라본다. 청년들은 후자를 원한다.

세넷은 중세 베네치아의 게토를 분석하며 이렇게 쓴다. 격리된 공간도 나름의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스스로 선택한 격리일 때뿐이다. 강요된 격리는 결국 썩어간다. 청년안심주택의 공실도 같은 맥락 아닐까. 선택이 아닌 배정, 거주가 아닌 수용.

청년월세 지원 정책이 확대된다고 한다. 더 많은 청년에게 월세를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월세를 지원받는다고 청년의 주거가 안정될까. 오히려 임대료 상승만 부추기는 건 아닐까.

도시는 누구를 위한 공간인가. 세넷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청년안심주택의 빈 방들이 묻고 있다. 당신들이 상상한 청년은 누구였는가. 실제 청년들은 어디에 있는가.

『살과 돌』이 포착하는 주거 문제의 핵심은 집이 삶의 공간이 아닌 투자 자산으로 전락한 현실이다. 부동산 시장의 논리가 주거권을 압도하면서, 안정적인 거처를 마련하는 일이 생존의 문제가 됐다.

한국의 주거 불평등은 세대 간 격차와 겹쳐 더욱 심화되고 있다. 부모 세대의 자산이 자녀 세대의 주거 환경을 결정하는 구조가 고착화되면서, 자력으로 내 집을 마련하겠다는 꿈은 점점 더 비현실적인 것이 되고 있다.

전세 제도라는 한국 고유의 주거 형태도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저금리 시대의 종언과 함께 전세의 경제적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전세사기 피해가 사회적 문제로 부상한 것은 이 구조적 변화의 한 징후다.

주거 정책이 공급 중심에서 수요 관리로, 소유 중심에서 거주 중심으로 전환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부동산이 가계 자산의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한국에서 이런 전환은 기존 자산 보유자들의 저항에 부딪힌다.

리처드 세넷이 묻는 것은 결국 이것이다. 집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투자자를 위한 상품인가, 시민을 위한 권리인가.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하느냐가 한국 주거 정책의 방향을 결정한다.

결국 문제는 집이 상품이 된 도시다. 청년은 그 도시에서 가장 약한 소비자일 뿐이다. 정책이 아무리 정교해져도, 이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청년의 방황은 계속될 것이다. 빈 방은 늘어가고, 청년들은 여전히 떠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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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무주택자 수
2023년 국토교통부 주거실태조사

리처드 세넷은 『살과 돌』에서 도시 공간과 인간 신체의 관계를 추적한다. 고대 아테네부터 현대 뉴욕까지, 도시는 늘 특정한 신체를 전제로 설계됐다. 광장은 시민의 몸을 위해, 게토는 추방된 자들의 몸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도시는 누구의 몸을 상상하며 지어지는가.

청년안심주택의 입주 조건을 보자. 소득 기준, 자산 기준, 연령 기준. 숫자로 재단된 청년만이 들어갈 수 있다. 그 기준에서 벗어난 이들은? 소득이 조금 높으면 탈락이다. 자산이 조금 적어도 증명이 어렵다. 비정규직은 서류가 복잡하다. 프리랜서는 더하다.

세넷이 말하는 도시의 역설이 여기 있다. 도시는 다양성을 품는다고 하면서도 끊임없이 표준화를 추구한다. 청년안심주택도 마찬가지다. 표준적인 청년, 서류로 증명 가능한 청년만을 위한 공간. 나머지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이 기사를 주목해야하는 이유
1
정책의 맹점 노출

저렴한 주택 공급만으로는 부족하며, 표준화된 조건으로 실제 청년들을 배제하는 정책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

2
도시 구조를 향한 질문

주택을 상품화하는 도시에서 청년이 가장 약한 소비자로 전락하는 현실을 비판하며 근본적 해결책을 촉구한다.

3
세대 간 주거 격차

청년층의 지속적인 월세 전전 현상이 심화되는 가운데 임차료 상승만 초래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지적한다.

전국 청년가구 월세 거주 비율
출처: 통계청 주거실태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