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은 오늘도 AI가 생성한 콘텐츠를 몇 개나 접했을까. 뉴스 요약, 검색 결과, 심지어 누군가의 SNS 게시물까지. 이미 일상 곳곳에 스며든 AI를 이제 와서 규제한다는 말이 공허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경기도가 전국 최초로 'AI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딥페이크 범죄가 급증하고, AI 음성 사기가 기승을 부리는 상황에서 나온 대응책이다. 하지만 기술은 이미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 규제가 만들어질 때쯤이면 또 다른 형태의 AI가 등장해 있을 것이다.
20세기 초, 자동차가 막 등장했을 때를 떠올려보자. 영국은 1865년 '적기조례'를 만들어 자동차 앞에 붉은 깃발을 든 사람이 걸어가도록 했다. 시속 6.4킬로미터를 넘지 못하게 한 것이다. 마차를 보호하려던 이 법은 결국 영국 자동차 산업의 발전을 30년이나 늦췄다.
오늘날 AI 규제 논의가 당시와 다른 점이 있을까? 일론 머스크와 마크 저커버그 같은 기술 거물들조차 AI 규제의 필요성에 공감한다고 한다. 그들이 진정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통제 불가능한 기술일까, 아니면 그 기술을 먼저 손에 넣을 경쟁자일까.
미래학자 케빈 켈리는 『통제 불능』에서 기술 시스템이 일정 규모를 넘어서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다고 했다. 복잡계는 예측할 수 없는 창발적 특성을 보인다. 개미 한 마리의 행동은 단순하지만, 군집은 놀라운 지능을 보여준다. AI도 마찬가지다. 개별 알고리즘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들이 연결되고 학습하면서 만들어내는 결과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다.
켈리는 묻는다. 우리가 정말로 통제해야 하는 것은 기술일까, 아니면 기술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일까? 규제는 늘 사후적이다. 문제가 터진 다음에야 움직인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방식, 그것에 부여하는 권력에 있지 않을까.
한국의 AI 규제 움직임을 보면 묘한 기시감이 든다. 게임 셧다운제를 만들었다가 폐지했고, 암호화폐를 막았다가 다시 허용했다. 그때마다 우리는 무엇을 놓쳤는가. 기술의 위험을 막으려다 기회까지 함께 잃어버린 건 아니었나.
당신의 일터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AI 도입을 두고 벌어지는 갑론을박. 효율성과 일자리, 혁신과 안전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경영진. 하지만 논의하는 사이에도 AI는 이미 당신의 업무 곳곳에 스며들고 있다.
통제의 욕망은 불안에서 나온다. 하지만 켈리가 말했듯이, 진정한 통제는 놓아주는 데서 시작된다. 물론 이것이 무책임한 방임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다만 우리가 정말로 물어야 할 질문은 'AI를 어떻게 막을까'가 아니라 'AI와 어떻게 함께 살아갈까'가 아닐까.
경기도의 가이드라인이 첫걸음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진짜 답은 규제 조항에 있지 않다. 기술과 인간, 통제와 자유 사이의 균형점을 찾아가는 지난한 과정에 있다. 당신은 그 과정에서 어디쯤 서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