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 r>g라는 단순한 부등식으로 세계를 흔들었다.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넘어서는 순간, 부는 스스로를 증식시킨다. 노동은 자본을 따라잡을 수 없다. 이 책이 나온 지 10년, 한국의 재정적자가 31조 2천억 원에 달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감세의 영향은 언급되지 않고 추경만 탓하는 목소리들 사이에서, 피케티의 경고는 점점 더 선명해진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윤석명 연구위원은 고령층의 문제가 전반적 빈곤이 아니라 극심한 양극화라고 지적했다. 월 소득 202만 원을 기준으로 기초연금을 받는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 사이의 간극. 이는 단순히 노년의 문제가 아니다. 청년기의 불평등이 중년을 거쳐 노년까지 이어지는, 생애주기 전반의 양극화다.
피케티가 말하는 세습자본주의는 단지 재산의 대물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교육, 문화자본, 사회적 네트워크까지 모든 것이 세습된다. 조귀동이 『세습 중산층 사회』에서 지적한 '강남 좌파'라는 모순적 존재도 이 맥락에서 이해된다. 진보적 가치를 말하면서도 자녀의 특목고 진학을 위해 학원가를 전전하는 이들. 그들은 양극화를 비판하면서도 그 구조의 수혜자다.
자본수익률과 경제성장률의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벌어진다. 2024년 4월의 재정적자 31조 2천억 원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국가의 재정 여력이 줄어든다는 것은 불평등을 완화할 정책 수단이 약해진다는 의미다. 감세는 부유층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고, 그 공백은 서민이 메운다.
피케티는 누진세와 글로벌 부유세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각국의 정치 현실은 정반대로 흐른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저출생, 고령화, 기후변화 같은 대전환의 과제들은 막대한 재정을 요구하는데, 정작 재원 마련을 위한 증세 논의는 금기시된다.
부의 집중은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한다고 피케티는 경고한다. 경제력이 정치력으로 전환되고, 그 정치력은 다시 경제력을 강화하는 법과 제도를 만든다. 순환은 계속되고 격차는 벌어진다. G20 브라질 회의가 가난과 기아를 의제로 삼았다는 소식이 무색하게, 각국 내부의 불평등은 깊어만 간다.
노동소득으로는 자산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피케티의 진단은 한국의 부동산 시장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월급으로는 평생 모아도 서울 아파트 한 채 사기 어려운 현실. 자산을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격차는 세대를 거듭할수록 커진다.
직장어린이집 설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기업이 20개나 된다는 소식도 같은 맥락이다. 육아는 개인이 해결할 문제로 떠넘겨지고, 그 부담을 감당할 수 있는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이 갈린다. 출산율 하락은 이런 불평등이 만든 필연적 결과다.
피케티는 책의 마지막에서 묻는다. 민주주의가 자본주의를 통제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집어삼킬 것인가. 2024년 6월의 한국은 어느 쪽을 향하고 있는가. 31조 2천억 원의 재정적자 뒤에 숨은 감세의 그림자는,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