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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세상을 보다 6월 3째주] 청년 주거

전셋집을 구할 수 없는 사회에서 집의 의미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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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를 드릴게요
목소리를 드릴게요
정세랑
목소리를 드릴게요정세랑 · 2020

서울 마포구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20대 후반의 청년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중개인이 묻는다. 전세요, 월세요? 청년이 대답한다. 전세로 알아보려고 하는데요. 중개인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한다. 요즘 전세는 거의 없어요. 있어도 금액이...

6월 둘째 주, 서울신문이 보도한 '청년부채 리포트'는 전세 공포가 확산되면서 월세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세 사기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집주인들이 전세를 월세로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감정원 통계를 보면 2022년 대비 2024년 서울의 월세 거래 비중은 15%포인트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세 비중은 그만큼 줄었다.

청년들에게 전세는 무엇이었을까. 목돈을 맡기고 2년간 주거를 보장받는 제도였을까. 아니면 언젠가 내 집을 마련하기 위한 디딤돌이었을까. 정세랑의 소설집 『목소리를 드릴게요』(2020)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전세 계약서에 도장을 찍으면서도 이 집이 내 집이 아니라는 걸 아는 순간의 쓸쓸함.

소설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불안정한 주거 상황에 놓여 있다. 재개발로 쫓겨나고, 월세가 올라 이사하고, 계약 기간이 끝나면 떠나야 한다. 그들에게 집은 잠시 머무는 곳일 뿐이다. 소유하지 못한 공간에서 뿌리를 내릴 수 있을까. 작가가 던지는 질문이다.

전세가 사라진다는 것은 단순히 주거 형태의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청년들이 자산을 형성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가 막히고 있다는 신호다. 월세는 매달 나가는 돈이지만, 전세금은 언젠가 돌려받을 돈이었다. 그 차이가 만드는 심리적 간극은 크다.

한국은행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보면 20대 가구주의 평균 부채는 2019년 3,210만원에서 2023년 5,680만원으로 급증했다. 4년 만에 77% 늘어난 수치다. 이들 부채의 상당 부분은 주거 마련을 위한 것이다. 전세 대출, 월세 보증금 대출, 생활비 대출이 뒤엉켜 있다.

정세랑의 인물들은 집을 잃을 때마다 목소리도 함께 잃는다. 이사를 갈 때마다 친구들과의 연결이 끊어지고, 동네 가게 주인과 나누던 인사가 사라진다. 공간의 상실이 관계의 상실로 이어지는 과정을 작가는 담담하게 그려낸다. 목소리를 드릴게요라는 제목은 그래서 역설적이다. 잃어버린 것들을 대신 전하겠다는 의미일까.

전세가 사라지는 시대, 청년들은 어떤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매달 월세를 내느라 허덕이면서도 미래를 꿈꿀 수 있을까. 부동산 중개업소를 나서는 청년의 뒷모습이 소설 속 인물과 겹쳐 보인다. 전세는 없다는 중개인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집은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니다. 삶의 안정성을 담보하는 토대다. 그 토대가 흔들릴 때 우리는 무엇을 붙잡고 살아갈 수 있을까. 정세랑은 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흔들리는 삶들을 가만히 응시할 뿐이다. 그 응시 속에서 독자는 자신의 불안과 마주하게 된다.

20대 가구주 평균 부채 추이
출처: 한국은행 가계금융복지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