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30년 어느 날, 누군가 2024년의 주거 통계를 펼쳐볼 것이다. 전세가 사라지고 월세가 일반화된 전환점을 찾는다면 아마 이즈음일 거다. 전세 공포라는 단어가 일상어가 된 시점. 청년들이 보증금 떼일까 두려워 아예 월세를 택하기 시작한 시점.
서울의 원룸 월세는 이미 100만원을 넘어섰다.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80만원이 평균이 되어간다. 월급의 절반이 방값으로 사라진다. 저축은 불가능하다. 미래는 준비할 수 없다. 오직 이번 달을 버티는 일만 남았다.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능력주의 사회는 승자에게는 오만을, 패자에게는 굴욕을 안긴다. 주거 시장도 마찬가지다. 집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전세를 구할 수 있는 자와 월세로 밀려난 자. 이 구분은 단순한 경제적 차이가 아니다.
전세는 한국만의 독특한 제도였다. 목돈을 맡기고 이자 대신 거주권을 얻는 방식. 집주인과 세입자가 서로 의존하는 구조였다. 그런데 금리가 오르고 집값이 흔들리면서 이 균형이 깨졌다. 깡통전세, 전세사기라는 단어들이 뉴스를 채운다.
청년들은 학습했다. 전세는 위험하다고. 차라리 매달 돈을 내는 게 안전하다고. 하지만 월세는 축적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매달 80만원을 10년간 낸다면 9600만원이다. 그 돈이면 지방 소도시엔 작은 집을 살 수도 있었을 텐데.
샌델은 묻는다. 재능과 노력만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정말 정의로운가. 태어난 시대와 부모의 자산이 결정하는 삶에서 개인의 노력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주거 문제는 이 질문을 가장 날카롭게 드러낸다.
정부는 공급을 늘리겠다고 한다. 규제를 풀겠다고 한다. 하지만 청년들이 원하는 건 더 많은 월세 물량이 아니다.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공간이다.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주거 안정성이다.
전세의 소멸은 단순한 주거 형태의 변화가 아니다. 한국 사회가 만들어온 독특한 상호부조 시스템의 붕괴다. 그 자리를 시장 논리가 차지한다. 매달 돈을 내야만 머물 수 있는 공간. 축적 없는 소비만 가능한 삶.
10년 후, 20년 후를 상상해본다. 평생 월세를 내며 사는 세대가 노년에 이르렀을 때 무엇이 남을까. 집 한 채 없이 은퇴하는 사람들이 대다수가 된다면 그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지금 청년들이 월세로 내는 돈은 단순한 주거비가 아니다. 미래의 가능성을 현재에 저당 잡힌 대가다. 전세가 사라진 시대, 우리는 무엇을 잃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