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은 길을 걷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를 받는다. 상담원이 묻는다. 임신했나요.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당신은 아니라고 답하고 전화를 끊는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계속 맴돈다.
보건복지부가 위기임신보호출산제 시행 1년을 맞아 성과를 발표했다. 2023년 7월 시작된 이 제도로 1,200여 명의 여성이 상담을 받았고, 그중 일부는 가명으로 출산했다. 신분을 숨긴 채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됐다는 설명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엘리자베트 바댕테르는 『만들어진 모성』에서 모성애가 본능이 아니라 17세기 이후 만들어진 관념임을 밝혔다. 중세 프랑스에서는 영아 유기가 일상이었고, 부유층은 아이를 유모에게 맡겼다. 모성은 시대가 요구하는 역할이었을 뿐이다.
위기임신보호출산제는 무엇을 보호하는가. 여성의 신분인가, 아이의 생명인가. 아니면 사회가 정한 정상가족의 틀인가. 가명 출산이 가능해졌지만 여성들은 여전히 고립된다. 상담 전화를 거는 손은 떨린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23년 혼외출산 비율은 전체 출생의 4.5%다. OECD 평균 40%와 비교하면 극히 낮다. 한국에서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는다는 것. 그것은 여전히 위기로 규정된다.
바댕테르는 18세기 계몽주의가 어머니의 의무를 강조하며 모성 신화를 만들었다고 썼다. 국가는 인구를 관리하기 위해 어머니 역할을 신성시했다. 여성은 그 틀 안에 갇혔다. 벗어나면 비정상이 됐다.
제도는 생겼지만 시선은 바뀌지 않았다. 위기임산부라는 명칭 자체가 낙인이다. 왜 임신이 위기가 되어야 하는가. 결혼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준비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1년 동안 1,200명이 상담했다. 그중 몇 명이 실제로 출산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더 많은 여성들은 상담 전화조차 걸지 못했을 것이다. 침묵 속에서 혼자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당신이 받았던 그 전화. 잘못 걸린 전화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그 순간 간절히 목소리를 듣고 싶었을지도. 하지만 당신은 아니라고 답했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답한다. 위기는 남의 일이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