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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세상을 보다 8월 3째주] 현장의 임금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계속되는 차별의 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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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배신
노동의 배신
바바라 에런라이크
노동의 배신바바라 에런라이크 · 2001

책 속에서 한 노동자가 말한다. 같은 현장에서 일하는데 왜 우리만 다른 사람인가요. 바바라 에런라이크가 『노동의 배신』에서 만난 청소 노동자의 목소리다. 2001년 미국에서 쓰인 이 문장이 2024년 한국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도 똑같이 울리고 있다.

한국도로공사가 대법원 판결을 받고도 현장지원직 노동자들의 임금 차별을 계속하고 있다. 2023년 4월과 2024년 1월, 두 차례에 걸쳐 법원은 명확히 판결했다. 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에게 다른 임금체계를 적용하는 것은 차별이라고. 그런데 공사는 여전히 최저임금 수준의 별도 임금체계를 고수한다.

에런라이크는 직접 월마트와 청소회사, 요양원에서 일하며 최저임금 노동의 현실을 기록했다. 그가 발견한 것은 단순했다. 저임금 노동자들이 게으른 게 아니라 시스템이 그들을 가난하게 만든다는 것. 일을 해도 집세를 낼 수 없고,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는 구조 말이다.

한국도로공사의 현장지원직이 바로 그런 자리다. 휴게소 청소, 시설 관리, 요금 징수. 공사의 핵심 업무를 담당하면서도 정규직과는 다른 임금체계에 묶여 있다. 어디서 많이 본 풍경 아닌가. 같은 일터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나누고, 직접고용과 간접고용을 구분하며, 이제는 현장지원직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차별을 정당화한다.

책에서 에런라이크는 묻는다. 왜 가장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적게 받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그들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새벽에 청소하고, 밤에 경비 서고, 손님이 없을 때 정리하는 사람들. 우리 일상을 떠받치지만 눈에 띄지 않는 노동.

한국의 저임금 노동자 비율은 2022년 기준 15.4퍼센트다. OECD 평균 12.2퍼센트보다 높다. 이들 중 상당수가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일한다. 다만 정규직이 아닐 뿐이다. 현장지원직, 무기계약직, 기간제. 이름은 계속 바뀌지만 본질은 같다.

법원 판결이 나와도 바뀌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에런라이크의 표현을 빌리면 이들은 언제든 교체 가능한 사람으로 취급받기 때문이다. 기술이 없고, 경력이 인정되지 않으며, 조직에서 발언권이 없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휴게소 화장실이 더러우면, 톨게이트가 고장 나면, 시설물이 방치되면 고속도로는 제 기능을 할 수 없다.

2024년의 한국도로공사 사건은 우리 사회가 노동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보여준다. 대법원이 차별이라고 판결해도, 공기업이 그 판결을 무시할 수 있는 현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우리가 현장의 노동을 너무 쉽게 생각하기 때문 아닐까.

에런라이크는 책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저임금 노동자들이 파업하면 세상이 멈춘다고. 그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 게 아니라고. 2024년 한국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보이지 않는 노동이 우리의 일상을 떠받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노동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부당한 일인지를.

한국 저임금 노동자 비율
출처: OEC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