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는 가족이고 돼지는 식탁 위에 오른다. 고양이는 품에 안고 닭은 튀김옷을 입힌다.
8월 22일,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개식용종식법 시행 현황은 놀라울 정도로 순조로웠다. 조기폐업 신청이 쇄도하고 있다는 소식. 한때 보양식의 대명사였던 보신탕집들이 스스로 간판을 내리기 시작했다. 법 시행 6개월 만의 일이다.
피터 싱어가 1975년 『동물해방』을 썼을 때만 해도 이런 날이 올 거라 누가 상상했을까. 그는 묻는다. 지능이 낮다는 이유로 동물을 차별한다면, 갓난아이나 중증 장애인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존재라면 그 고통을 고려해야 하지 않는가.
하지만 우리의 선긋기는 여전히 자의적이다. 개는 안 되고 돼지는 된다. 그 경계는 누가, 언제, 어떻게 정한 것일까. 문화라고 답하기엔 너무 쉽다. 개를 먹던 문화도 엄연히 존재했으니까.
통계청 자료를 보면 한국의 육류 소비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1인당 연간 육류 소비량이 2018년 53.9kg에서 2023년 58.4kg으로 늘었다. 개고기가 사라지는 동안 다른 고기들이 그 자리를 메웠다. 우리는 정말 더 윤리적이 된 걸까.
싱어는 종차별주의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처럼, 종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차별하는 것. 그런데 우리는 종 안에서도 또 선을 긋는다. 애완견과 식용견. 같은 개라도 다르게 본다.
개식용 종식은 분명 진전이다. 하지만 이것이 동물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 성찰로 이어질까. 아니면 그저 개와 돼지 사이에 더 선명한 선을 그은 것일까.
보신탕집 간판이 내려가는 거리를 걷다 보면 문득 궁금해진다. 50년 후 우리 후손들은 지금의 우리를 어떻게 볼까. 개는 보호하면서 돼지는 공장에서 대량생산하던 시대를 어떻게 기억할까. 그들도 우리처럼 자신들만의 선을 그으며 살아갈까.
싱어가 말한 것처럼, 모든 고통은 동등하게 고려되어야 한다면, 우리가 그은 이 선들은 언젠가 다시 그어질 운명인지도 모른다. 개식용이 종식되는 2024년의 한국. 한 시대가 끝나고 있다. 그런데 정말로 끝난 것은 무엇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