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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세상을 보다 9월 2째주] 실종

찾아도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의 빈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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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생
은밀한 생
파스칼 키냐르
은밀한 생파스칼 키냐르 · 2000

2024년이 끝나갈 무렵, 누군가는 숫자를 세고 있을 것이다. 49,624명. 올해 실종신고가 접수된 사람들의 수다. 그중 121명은 여전히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 숫자들이 품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단순히 찾는 사람과 찾아지는 사람의 산술적 차이일까.

한 해에 5만 명 가까이 사라진다는 것. 매일 136명이 어딘가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대부분은 다시 돌아온다. 가출했던 청소년이, 길을 잃었던 치매 노인이, 잠시 연락이 끊겼던 가족이. 하지만 121명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은 어디에 있을까.

실종이라는 단어가 품은 무게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죽음은 명확하다. 애도할 수 있고, 장례를 치를 수 있고, 무덤 앞에서 울 수 있다. 하지만 실종은 다르다. 끝나지 않는 기다림,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가는 시간, 매일 밤 문 앞을 바라보는 시선.

파스칼 키냐르는 『은밀한 생』에서 부재의 흔적에 대해 이야기한다. 없는 것이 남기는 자국, 빈자리가 만들어내는 존재감. 실종자의 빈 의자, 신발장에 남은 구두 한 켤레, 책상 위의 안경. 이 물건들은 부재를 증명하는 동시에 존재했던 시간을 기억하게 한다.

통계는 때로 잔인하다. 실종아동 중 24시간 내 발견률이 84.3%라고 한다. 48시간이 지나면 61.2%로 떨어진다. 72시간 후에는 46.8%. 시간이 흐를수록 희망의 크기는 반으로, 또 반으로 줄어든다. 하지만 기다리는 사람에게 이 숫자는 아무 의미가 없다. 내 아이가 그 46.8%에 속할지, 53.2%에 속할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키냐르가 말하는 '은밀한 생'은 보이지 않는 삶, 기록되지 않는 존재들의 이야기다. 실종자들도 어쩌면 그런 은밀한 생을 살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가 아는 세계의 바깥에서, 다른 이름으로, 다른 모습으로. 아니면 정말로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것일지도.

실종자 가족들은 이중의 상실을 경험한다. 먼저는 사람을 잃는 것. 그다음은 슬퍼할 권리를 잃는 것. 주변 사람들은 위로하다가 지친다. '이제 그만 잊으라'고, '새 출발을 하라'고. 하지만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죽음이 확인되지 않은 상실을, 끝이 없는 이별을.

121명. 이들은 통계 속 숫자가 아니라 누군가의 자녀이고, 부모이고, 형제였다. 그들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오늘도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한다. 혹시 연락이 올까봐, 목격자가 나타날까봐. 희망은 때로 가장 잔인한 형벌이 되기도 한다.

2024년이 끝나면 또 다른 숫자가 발표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잊을 것이다. 실종이라는 단어가 품은 무게를, 빈자리가 만드는 고통을. 하지만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시간은 멈춰 있다. 사라진 그날, 그 순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기억하는 것, 잊지 않는 것. 그리고 가끔은 주변을 둘러보는 것. 혹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없는지, 길을 잃은 사람은 없는지. 작은 관심이 때로는 기적을 만들기도 하니까.

실종아동 발견 시간대별 비율
출처: 경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