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기준 한국의 노인요양시설은 총 6,153개소다. 이 중 월 이용료 500만원 이상인 고급 실버타운은 전체의 0.8%에 불과하다. 나머지 99.2%는 대부분 월 100만원 미만의 일반 요양원이다. 그 사이, 월 200만원에서 400만원 사이의 중간급 시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신종현 케어랩스 대표가 지적한 시니어케어 시장의 양극화는 단순히 노인 주거의 문제만은 아니다. 한국 사회가 만들어낸 계층 구조가 노년에 이르러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이다. 젊은 시절 쌓아온 자산의 격차가 노후의 삶의 질을 완전히 다른 궤도에 올려놓는다.
리처드 윌킨슨과 케이트 피킷이 쓴 『평등이 답이다』는 불평등이 단순히 경제적 격차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소득 불평등이 심한 사회일수록 구성원들의 신뢰도가 떨어지고, 정신건강 문제가 증가하며, 기대수명마저 줄어든다. 저자들은 23개 선진국의 데이터를 분석해 이를 증명했다.
불평등은 부유층에게도 해롭다. 책은 이렇게 말한다. 소득 격차가 큰 사회에서는 부자들도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자녀들의 학업 성취도가 떨어지며, 범죄에 노출될 위험이 높아진다. 양극화된 사회는 모두를 불행하게 만드는 구조다.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다. 2022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의 상대빈곤율은 38.1%에 달한다. OECD 평균인 13.5%의 거의 3배에 가까운 수치다. 이들 중 상당수는 월 100만원도 되지 않는 기초연금에 의존해 살아간다.
반면 상위 10% 노인층의 평균 자산은 13억원을 넘는다. 이들은 월 500만원이 넘는 고급 실버타운에서 골프와 문화생활을 즐기며 노후를 보낸다. 같은 연령대, 같은 한국인이지만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왜 중간이 사라졌을까? 한국 사회가 만들어온 승자독식 구조가 노년에까지 그대로 투영된 결과다. 평생 동안 벌어진 격차는 노후에 이르러 더욱 벌어진다. 중산층이 무너지면서 중간 수준의 노인 주거 시설을 찾는 수요 자체가 사라진 것이다.
『평등이 답이다』의 저자들은 북유럽 국가들의 사례를 들어 대안을 제시한다. 스웨덴이나 덴마크는 누진세와 보편적 복지를 통해 소득 격차를 줄였고, 그 결과 노인들도 비교적 균등한 수준의 삶의 질을 누린다. 계층에 관계없이 품위 있는 노후를 보장하는 것이다.
물론 한국의 현실은 다르다. 이미 벌어진 격차를 단시간에 좁히기는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노후만큼은 최소한의 존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적 장치가 필요하지 않을까? 월 500만원짜리 실버타운과 월 50만원짜리 요양원 사이, 그 거대한 공백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결국 다시 처음의 숫자로 돌아온다. 0.8%와 99.2%. 이 극단적인 양분화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불평등한 구조 위에 서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적나라한 지표다. 노년은 거울이다. 우리가 만들어온 사회의 민낯이 가장 솔직하게 드러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