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의도 금융가 어느 빌딩 23층. 회의실 유리창 너머로 한강이 내려다보인다. 테이블 위엔 투자설명서가 수북이 쌓여있다. '연 수익률 20%', '유니콘 기업 투자 기회'. 화려한 숫자들이 춤을 춘다. 이곳은 벤처캐피털 사무실. 그동안 소수의 기관투자자와 고액자산가들만 출입할 수 있던 공간이다.
9월 말, 국회는 BDC(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 도입 법안을 통과시켰다. 내년 3월부터 일반 개인투자자도 비상장 벤처기업에 투자할 수 있게 된다. 투자의 문턱이 낮아진다. 누구나 벤처투자자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열린다.
1930년대 미국. 대공황의 상흔이 채 아물지 않은 때, 투자은행가 출신 변호사 루이스 브랜다이스는 금융자본의 문제를 파고들었다. 그가 쓴 『타인의 돈』은 월가의 금융 과두제를 해부한다. 소수의 은행가들이 거대 기업의 이사회를 장악하고, 그들끼리 자본을 돌려막기하며 부를 축적하는 구조. 브랜다이스는 이를 '돈의 트러스트'라 불렀다.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는 정반대 방향으로 간다. 투자의 대중화. 모두가 자본가가 되는 꿈. 하지만 브랜다이스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누가 정보를 통제하는가? 위험은 누가 지는가?
벤처투자 시장의 정보 비대칭은 주식시장보다 훨씬 심하다. 상장기업은 공시 의무가 있다. 비상장기업은 그렇지 않다. 실사 능력이 없는 개인투자자가 어떻게 옥석을 가릴 것인가. 전문 벤처캐피털리스트도 10개 중 7개는 실패한다는 시장에서.
23층 회의실을 나와 1층 로비로 내려온다. 출입증 없이는 엘리베이터를 탈 수 없던 이 건물. 이제 누구나 들어올 수 있게 되는 걸까. 아니면 출입은 자유지만 정작 중요한 정보는 여전히 23층에만 머무는 걸까.
브랜다이스는 금융 민주화의 핵심을 '공개'라고 봤다. 햇빛이 최고의 소독제라는 그의 말은 유명하다. 정보가 공개되면 시장이 스스로 정화된다는 믿음. 하지만 정보 공개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정보를 해석할 능력, 위험을 감당할 여력이 있어야 한다.
BDC는 펀드 형태다. 전문 운용사가 투자를 대행한다. 개인은 돈만 맡기면 된다. 언뜻 합리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를 떠올려보라. 복잡한 금융상품에 돈을 맡긴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중간 구조가 많아질수록 책임은 희미해진다.
다시 1층 로비. 회전문을 통해 거리로 나온다. 점심시간 직장인들이 바쁘게 오간다. 이들 중 상당수가 주식투자를 한다. 이제 벤처투자도 할 것이다. 노후자금을, 자녀 학자금을 걸고. 투자의 민주화가 가져올 것은 기회일까, 또 다른 양극화일까.
브랜다이스가 『타인의 돈』에서 던진 마지막 질문. 금융이 실물경제를 위해 존재하는가, 아니면 실물경제가 금융을 위해 존재하는가. 벤처투자가 혁신기업을 키우는 마중물이 될지, 또 다른 투기판이 될지. 그 답은 아직 23층 유리창 너머 어딘가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