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일랜드의 여성들이 일손을 놓았던 날, 나라 전체가 멈췄다. 1975년 10월 24일, 평범한 목요일이었지만 버스는 운행을 중단했고 은행 창구는 텅 비었으며 학교 급식은 제공되지 않았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흐른 2024년 10월, 한국에서도 여성들이 파업을 선언했다. 3·8 여성의날을 맞아 일과 가사, 돌봄을 거부하겠다는 목소리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이 나라는 멈추지 않았다. 버스는 여전히 달렸고, 마트 계산대는 돌아갔으며, 병원 간호사들은 환자를 돌봤다.
미국의 역사학자 신시아 엔로는 『바나나 해변 그리고 군사기지』에서 묻는다. 왜 어떤 노동은 보이고 어떤 노동은 보이지 않는가. 그는 군사기지 주변의 세탁소, 기지촌의 클럽, 바나나 농장의 포장 공장을 돌며 발견한다. 국제정치의 거대한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곳마다 여성들의 손이 있었다는 것을.
엔로가 주목한 것은 이들의 노동이 아니라 침묵이었다. 미군 병사들의 군복을 다리는 한국 여성들, 필리핀 농장에서 바나나를 포장하는 노동자들, 중동 건설 현장의 식당에서 일하는 이주 여성들. 이들이 하루만 일을 멈춰도 세계 경제의 한 축이 흔들릴 텐데, 정작 그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아일랜드 여성들이 증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들이 거리로 나선 날, 남자들은 비로소 깨달았다. 아내가 매일 다림질해준 셔츠가 얼마나 당연한 것이었는지, 점심시간에 먹던 샌드위치가 누구의 손을 거쳐 만들어졌는지, 은행 창구에서 돈을 건네던 그 손이 집에서는 또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있었는지.
하지만 2024년 한국의 풍경은 달랐다. 여성들이 파업을 외쳤지만 세상은 평소처럼 돌아갔다. 아니, 정확히는 멈출 수 없었다. 병원의 간호사가 자리를 비우면 환자가 위험해지고, 어린이집 교사가 출근하지 않으면 부모들이 일터로 갈 수 없다. 돌봄의 공백은 곧바로 또 다른 여성의 부담이 된다.
엔로는 이런 딜레마를 '구조화된 침묵'이라 불렀다. 여성의 노동이 너무나 필수적이어서 오히려 저항할 수 없게 만드는 체계. 파업권조차 행사할 수 없을 만큼 그들의 일이 중요하다는 역설. 마치 심장이 자신의 중요성을 증명하려고 잠시 멈출 수 없는 것처럼.
기간제 교사의 성과상여금 차별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도 같은 시기였다. 전체 담임교사 6명 중 1명이 기간제라는 통계가 보여주는 것은 무엇인가. 학교라는 공간도 이미 '보이지 않는 노동'에 기대어 돌아가고 있다는 현실 아닌가.
의사들의 파업을 막기 위한 법안이 발의되는 것을 보며 떠오른 것도 엔로의 통찰이었다. 필수 노동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이들은 어떻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것인가. 멈출 수 없는 자들은 어떻게 변화를 만들 것인가.
1975년 아일랜드와 2024년 한국 사이에는 50년의 간격이 있다. 그 사이 많은 것이 변했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은 질문들이 있다. 누군가의 멈춤이 세상을 흔들 때, 누군가는 멈출 수조차 없다면, 우리는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