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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세상을 보다 10월 1째주] 여성파업

멈춤이 만드는 움직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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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번과 마녀
캘리번과 마녀
실비아 페데리치
캘리번과 마녀실비아 페데리치 · 2011

출근길 지하철에서 한 여성이 통화를 한다. 아이 도시락 챙겼냐고 묻고, 학원비 입금했냐고 확인하고, 저녁엔 뭘 먹을지 고민한다. 옆자리 남성은 이어폰을 끼고 눈을 감았다. 같은 칸, 다른 아침.

10월 24일은 아일랜드 여성들이 처음으로 파업을 선언한 날이다. 1975년의 일이다. 그날 여성들은 일터에서도, 집에서도 일손을 놓았다. 돌봄도 멈췄다. 도시 전체가 흔들렸다고 한다. 평소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비로소 드러났다.

파업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가 멈추는 장면? 의사들이 가운을 벗는 모습? 우리는 파업을 '보이는 노동'의 중단으로만 생각한다. 월급명세서에 찍히는 노동, 계약서에 적힌 노동만을 떠올린다.

그런데 돌봄은 어떤가. 새벽에 도시락을 싸는 손길은? 밤늦게 아이의 열을 재는 시간은? 이 노동들은 파업이라는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멈출 수 없는 것, 멈춰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여긴다.

실비아 페데리치는 『캘리번과 마녀』에서 자본주의가 여성의 노동을 어떻게 '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들었는지 추적한다. 중세 말, 자본의 원시적 축적 과정에서 여성들은 임금노동에서 배제되고 가정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그 노동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됐다.

사랑이라 불리면 임금을 요구할 수 없다. 사랑이라 불리면 그만둘 수도 없다. 페데리치의 표현을 빌리면, 여성의 몸은 새로운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기계가 되었고 그 기계는 24시간 멈추지 않아야 했다.

하지만 1975년 아일랜드 여성들은 그 기계를 멈췄다. 이후 세계 곳곳에서 비슷한 시도들이 이어졌다. 한국에서도 3월 8일이면 여성파업의 목소리가 들린다. 멈춤으로써 존재를 드러내는 역설. 부재를 통해 필수를 증명하는 전략.

지하철에서 통화하던 그 여성을 다시 떠올린다. 만약 그가 내일 아침 그 모든 걸 멈춘다면? 도시락도, 학원비도, 저녁 메뉴 고민도. 그때 비로소 옆자리 남성은 이어폰을 빼고 주위를 둘러볼까?

파업은 결국 질문이다. 당신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정말 당연한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멈춰봐야 비로소 아는 것들이 있다. 때로는 멈춤이 가장 큰 움직임이 된다.

페데리치가 묻는다. 임금은 노동의 댓가인가, 아니면 노동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장치인가? 우리도 물어야 한다. 일상은 누구의 노동으로 굴러가는가? 그 노동이 멈춘다면 무엇이 무너질까?

한국 여성의 무급 가사노동 시간
출처: 통계청 생활시간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