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의 한 고등학교 교실. 4월이면 새로운 담임 선생님과 만나는 학생들이 올해도 어김없이 자기소개를 듣는다. 그런데 이 선생님은 1년 계약직이다. 내년 이맘때쯤이면 또 다른 학교로 떠나야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집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에는 이런 비정규직 교사가 등장한다. 지진으로 무너진 도시만큼이나 불안정한 그의 일자리. 학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치면서도 정작 자신의 미래는 한 줄도 쓸 수 없는 처지다.
한국의 교실도 다르지 않았다. 지난 10월 25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기간제교사의 성과상여금 차별 폐지를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전체 담임교사 6명 중 1명이 기간제교사라는 통계가 나왔다. 같은 아이들을 가르치고, 같은 책임을 지면서도 신분은 '임시'인 채로 머물러 있다.
무라카미는 비정규직 교사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매년 다른 학교를 떠도는 자신에게는 졸업앨범조차 남지 않는다고. 학생들의 성장을 지켜볼 권리도, 그들에게 기억될 자격도 주어지지 않는다고. 소설 속 인물이 느끼는 소외감은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다. 교육이라는 가장 지속적이어야 할 관계가 1년 단위로 끊어지는 현실. 그것이 일본 사회가 앓고 있는 병의 한 증상이었다.
우리 교실은 어떤가. 기간제교사들은 정규직 교사와 똑같이 수업을 준비하고, 학생들을 상담하고, 부모와 소통한다. 때로는 담임을 맡기도 하고, 부장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그런데 성과상여금에서는 차별받는다. 노동의 가치는 같은데 보상의 기준은 다르다는 것. 이 모순이 교실 안에서 매일같이 재생산되고 있었다.
교육부는 비정규직 교사 비율을 줄이겠다고 수차례 약속했다. 하지만 학령인구 감소를 이유로, 예산 절감을 명분으로, 그 약속은 번번이 미뤄졌다. 정규직 전환은 요원하고, 차별은 고착화되었다. 학생 수가 줄어든다고 해서 교육의 질까지 임시적이어도 된다는 것인가.
무라카미의 소설에서 기간제교사는 결국 학교를 떠난다. 하지만 떠나기 전 마지막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묻는다. 너희가 배운 것은 무엇이냐고. 교과서에 적힌 지식인가, 아니면 불안정한 어른들의 삶인가. 학생들은 대답하지 못한다. 질문 자체가 너무 무거웠기 때문이다.
한국의 기간제교사들도 비슷한 질문을 품고 있을 것이다. 자신들이 가르치는 것이 무엇인지, 학생들이 배우는 것이 무엇인지. 안정적인 미래를 꿈꾸라고 가르치면서 정작 자신은 불안정한 현재를 살아가는 모순. 이것이 오늘날 한국 교육이 직면한 현실이다.
성과상여금 차별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진짜 문제는 교육을 비용으로만 계산하는 시각이다. 교사를 언제든 교체 가능한 부품으로 보는 인식이다. 그런 시각과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우리 아이들은 계속해서 '임시 선생님'에게 '정규 교육'을 받는 아이러니 속에서 자라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