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만 8천 명. 2024년 상반기 기준 전국 요양시설에서 일하는 돌봄 노동자의 수다. 매일 아침 이들은 누군가의 얼굴을 씻기고, 밥을 먹이고, 대소변을 처리한다. 손목이 시큰거리고 허리가 아파도 멈출 수 없다. 누군가의 생존이 이들의 손끝에 달려 있으니까.
보건복지부는 이달 초 돌봄 시설에 인공지능 기술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센서가 노인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로봇이 물건을 나르며, AI가 건강 상태를 모니터링한다는 계획이다. 돌봄 노동자의 부담을 줄이고 서비스의 질을 높이겠다는 취지란다. 기술이 인간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을까?
에바 일루즈는 『감정 자본주의』에서 현대 사회가 감정마저 상품화하는 과정을 추적한다. 돌봄도 예외가 아니다. 따뜻한 손길은 시급으로 계산되고, 위로의 말은 서비스 항목이 된다. 그런데 정작 돌봄을 주는 이들의 감정은 어디로 가는가. 매일 타인의 죽음을 마주하는 이들의 슬픔은 누가 돌보는가.
한 요양보호사는 말했다. 어르신이 밥을 거부할 때가 가장 힘들다고. 억지로 먹일 수도, 그냥 둘 수도 없는 그 순간. 매뉴얼은 영양 섭취량을 기록하라고 하지만, 정작 필요한 건 기다림이다. 어르신이 입을 열 때까지, 마음을 열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 그 시간은 어떤 기술로도 단축할 수 없다.
일루즈가 지적하듯, 자본주의는 감정 노동을 끊임없이 표준화하려 든다. 미소는 서비스의 일부가 되고, 공감은 역량이 된다. 하지만 진짜 돌봄은 표준화될 수 없는 영역에서 일어난다. 예측할 수 없는 순간들, 매뉴얼에 없는 대응들, 그리고 침묵 속에서 나누는 교감들.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의 19.2%에 달한다. 곧 다섯 명 중 한 명이 노인인 사회가 된다. 이들을 돌볼 손은 점점 부족해지고, 그 손들은 점점 지쳐간다. 기술이 이 간극을 메울 수 있을까? 아니면 우리는 돌봄의 의미 자체를 다시 물어야 할까?
20여 년간 저소득층 아동에게 도시락을 배달해온 사회적기업 '즐거운밥상'이 최근 운영난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매일 따뜻한 밥 한 끼를 전하던 이들의 손길이 멈출 위기라고 한다. 그 도시락엔 단순히 음식만 담긴 게 아니었을 텐데. 문을 두드리는 소리, 안부를 묻는 목소리, 그리고 누군가 나를 기억한다는 증거.
일루즈는 묻는다. 감정이 자본이 될 때, 우리는 무엇을 잃는가. 어쩌면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대체할 수 없는 것들. 손을 잡아주는 온기, 눈을 마주치는 순간, 그리고 '괜찮아요?'라고 묻는 진심 어린 목소리.
23만 8천 명.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매일 누군가의 마지막을 함께하는 사람들. 이들이 견디는 무게를 기술이 덜어줄 순 있어도, 그들이 전하는 온기까지 대신할 순 없다. 우리가 정말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이 아닐까. 돌봄의 효율을 높이는 게 아니라, 돌봄의 가치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