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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세상을 보다 11월 4째주] AI 양극화

바둑판에서 시작된 균열이 일터로 번져가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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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 사회학
빅데이터 사회학
에블린 루페르트 외
빅데이터 사회학에블린 루페르트 외 · 2013

이세돌이 은퇴한 지 5년이 흘렀다. 그가 최근 던진 경고는 묵직했다. AI가 만드는 양극화는 바둑계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그는 말했다.

당시 그의 은퇴 이유를 기억하는가. AI를 쓸 수 있는 프로기사와 그렇지 못한 아마추어의 격차가 극복할 수 없을 만큼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최고수조차 AI 앞에서는 아마추어가 되어버리는 현실. 그 무력감이 그를 바둑판에서 물러나게 했다.

영국의 기술사회학자 에블린 루페르트는 『빅데이터 사회학』에서 흥미로운 관찰을 제시한다. 기술은 중립적이지 않다는 것. 데이터를 다룰 수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에 새로운 계급이 형성된다는 분석이다. 2013년에 쓰인 이 책이 10년 후의 현실을 정확히 예견했다는 점이 섬뜩하다.

루페르트가 주목한 건 '데이터 리터러시'라는 개념이었다. 단순히 기술을 쓸 줄 아는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이 생산하는 데이터를 해석하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 이것이 새로운 권력이 된다는 통찰이었다. 바둑 AI가 수를 추천해줘도, 그 수의 의미를 읽어낼 수 있는 기사와 그렇지 못한 기사의 차이는 결정적이다.

흥미로운 통계가 있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이 발표한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AI 활용 능력 격차는 소득 수준에 따라 극명하게 갈린다. 상위 20%와 하위 20%의 AI 활용도 차이는 2020년 35%에서 2023년 52%로 벌어졌다. 불과 3년 만에 1.5배가 된 것이다.

이세돌의 경고가 현실이 되고 있는 셈이다. AI를 활용할 수 있는 직업군과 그렇지 못한 직업군의 임금 격차도 빠르게 벌어지고 있다. 같은 회사, 같은 부서에서도 AI 도구를 다룰 수 있느냐 없느냐로 연봉 협상력이 달라진다. 바둑판 위의 불평등이 사무실로, 공장으로, 학교로 확산되고 있다.

루페르트는 이런 상황을 '데이터 자본주의'라고 명명했다. 전통적인 자본 대신 데이터와 그것을 다루는 능력이 새로운 자본이 되는 체제. 여기서 소외된 이들은 점점 더 주변부로 밀려난다. 이세돌이 느꼈던 그 무력감을, 이제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루페르트는 '비판적 데이터 연구'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기술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내는 권력관계를 직시하고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 AI가 추천하는 최선의 수가 정말 최선인가? 그 판단 기준은 누가 정했는가?

이세돌은 은퇴 후에도 바둑을 둔다고 한다. AI와 겨루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마주 앉아 한 수 한 수 놓으면서. 그가 찾고 있는 것은 어쩌면 기술 이전의 가치, 효율성 너머의 의미일지도 모른다.

격차는 계속 벌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 격차가 만들어내는 구조를 읽어내는 눈을 기른다면, 적어도 무력하게 주저앉지는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이세돌이 AI에게 졌지만 끝까지 돌을 놓았듯이.

소득수준별 AI 활용도 격차
출처: 한국정보화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