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오후 두 시쯤이면 벤치마다 사람들이 앉아 있다. 바둑을 두는 이들, 신문을 펼쳐든 이들, 그저 햇볕을 쬐는 이들. 이 공원의 풍경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숫자는 말한다. 2024년 12월, 한국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퍼센트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고.
숫자가 품은 무게를 우리는 얼마나 실감하고 있을까. 다섯 명 중 한 명이 노인인 사회.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 일상에서 노인은 여전히 '타자'로 머문다. 지하철 경로석에서, 병원 대기실에서, 동네 경로당에서 그들을 마주치지만, 그들의 삶이 우리의 미래라는 사실은 잘 보이지 않는다.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외과의사이자 작가인 저자가 현대 의학의 한계와 노년의 삶을 성찰한 책이다. 2014년에 출간된 이 책은 의학이 죽음을 '실패'로 규정하면서 정작 삶의 마지막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라는 질문을 놓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가완디는 묻는다. 우리는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삶을 지속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가.
그의 물음은 한국의 초고령사회 진입이라는 사실 앞에서 더욱 묵직하다. 통합돌봄, 지역사회 안전망, 노후 대비. 정책 용어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정작 우리는 나이 듦이 무엇인지, 좋은 노년이 무엇인지 제대로 물어본 적이 있던가. 가완디가 말하듯, 현대사회는 노인을 '관리'할 방법은 고민하지만 그들이 '존재'하는 방식에는 무관심하다.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저자가 자신의 아버지를 돌보는 장면이다. 척수종양으로 쓰러진 아버지는 의사인 아들에게 묻는다. 앞으로 얼마나 살 수 있느냐고. 가완디는 답한다. 그것보다 중요한 질문이 있다고.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아버지는 대답한다.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는 것, 친구들과 대화하는 것,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
이 단순한 대답 속에 삶의 본질이 담겨 있다. 우리가 나이 들어서도 지키고 싶은 것은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다. 일상의 작은 기쁨들, 관계의 따뜻함, 자율성의 보존. 그런데 한국의 노인들은 이런 것들을 누리고 있을까. 독거노인의 증가, 노인 빈곤율 OECD 최고, 세대 간 단절. 이런 지표들이 말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한국의 65세 이상 1인 가구는 2000년 54만 명에서 2023년 197만 명으로 증가했다. 20년 사이 거의 4배가 늘었다. 혼자 사는 노인이 늘어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단순히 가족 형태의 변화일까, 아니면 우리 사회가 노년을 대하는 방식의 근본적 전환을 요구하는 신호일까.
가완디는 자율성과 안전 사이의 긴장을 이야기한다. 노인들은 자율성을 원하지만 사회는 안전을 우선시한다. 요양원, 실버타운, 각종 돌봄 시설들. 이곳들은 안전하지만 삶답지 않다. 반면 자신의 집은 위험하지만 삶이 있다. 이 딜레마를 어떻게 풀 것인가. 한국의 통합돌봄 정책이 시작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살던 곳에서 계속 살 수 있도록, 지역사회가 함께 돌보는 시스템.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다시 탑골공원으로 돌아가 보자. 이곳의 노인들은 왜 매일 여기로 오는가. 집이 불편해서? 아니면 사람이 그리워서? 혹은 그저 갈 곳이 없어서? 초고령사회의 풍경은 이렇게 질문으로 가득하다. 우리는 이 질문들 앞에서 너무 쉽게 답을 내리려 하지 않았나. 정책과 제도와 시설로 해결하려 하지 않았나.
가완디의 책은 우리에게 속도를 늦추라고 말한다. 삶의 마지막을 준비한다는 것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살아있음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한국이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병상이나 시설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나이 듦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 노년을 대하는 다른 언어일지도 모른다.
